지난해 ‘기생충’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후 첫 선을 보인 ‘사냥의 시간’의 개봉을 앞두고 최우식은 걱정과 긴장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기생충’에서 기생 가족의 위태로운 신분 상승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했던 ‘기우’도 그렇고, ‘사냥의 시간’에서 아웃사이더 일당들과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누면서도 실제로는 아주 살짝 발을 담갔을 뿐인 ‘기훈’도 그렇고. 최우식이 맡은 역할은 유독 ‘짠한’ 마음이 드는 캐릭터가 많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일단 따뜻한 곳에 데려가 밥부터 먹이고 싶게 만드는 그의 짠한 매력은 본인도 부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심지어 부모님조차.
“저는 그냥 있기만 해도 짠해 보이는 것 같아요. 부모님도 그걸 인정하시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짠한 역할만 들어온다, 이미지 체인지 같은 걸 생각하느냐 한다면 사실 막 욕심이 나진 않아요. 어찌 보면 그런 이미지가 씌워지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을 수도 있는데 사실 저도 그렇게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거든요(웃음). 하지만 제가 그런 연기를 하는 게 제일 잘 뽐내고, 즐기면서 하는 과정이라고도 생각해요. 물론 거친 이미지도 욕심이 나서 ‘사냥의 시간’을 선택한 것도 맞는데, 그건 이미지 체인지라기보다 그런 강한 모습을 표출하고 싶었을 시기와 (캐스팅 제안이 들어온 시기가) 맞물렸던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지금 이거 했으니까 다음엔 이미지 체인지 하자’ 하는 것보다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짠한 이미지’로 각인된 최우식. 그의 부모님에게도 인정받은 ‘짠함’이라고 말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갑자기 할리우드 배우 추천 얘기가 나오니까 심장이 왜 이렇게 뛰지(웃음). 가상 캐스팅으로 한다면 저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 나왔던 루카스 헤지스가 하면 되게 잘할 것 같아요. 너무 잘해서 원래 기우가 묻힐까봐 좀 겁나긴 하는데, 진짜 잘할 것 같아요. 그 친구도 좀 짠하게 생겼거든요(웃음).”
짠하긴 하지만 ‘사냥의 시간’ 속 ‘기훈’을 맡으며 최우식은 이제까지 해보지 못했던 과감한 도전을 원 없이 해 봤다. 머리도 밝게 물들이고, 몸에 타투도 그려 보고, 대사의 반절을 욕설로만 채우고 스스로 ‘욕 애드리브’도 자유분방하게 해냈다. 틀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은 현장이었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저희 현장에서는 애드리브가 대환영이었거든요. 저희끼리 만든 애드리브를 감독님이 좋아하셔서 다른 신에서도 한 번 해달라고 하신 것도 있고 그래요. 제가 맡은 ‘기훈’ 같은 경우도 굉장히 자유로운 영혼인데, 감독님이 제게 ‘기훈이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젊은 시절 머리를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셔서 충격 먹었어요. 그런데 진짜 그 머리를 하고 나서 제가 저를 보고 또 충격 먹었죠(웃음). 기훈이를 보면 몸에 타투가 있는데 그것도 처음엔 와 진짜 멋있겠다 하고 좋아하다가 매번 촬영 두 시간 전에 와서 분장하고 그러다 보니까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저한테 타투가 좀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해요(웃음). 실제론 타투가 없는데 이번 영화에서 해 보니까 좀 해보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지우기 전에 거울 앞에서 사진도 되게 많이 찍었어요.”
‘파수꾼’ 윤성현 감독의 9년 만의 신작 ‘사냥의 시간’에 합류한 최우식은 그 안에서 막내 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윤 감독을 비롯해 이제훈, 박정민, 안재홍은 비슷한 나이 또래 또는 ‘파수꾼’으로 인연을 맺었다는 공통점으로 뭉칠 수 있었지만 최우식은 연배로 보나 인연으로 보나 이방인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던 것은 최우식을 향한 형들의 ‘막내몰이’ 덕이었다고 했다.
‘사냥의 시간’ 현장에서 막내였던 최우식은 형들로부터 ‘몰이’를 톡톡히 당했다고 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사냥의 시간’에 출연한 주연 배우 대부분 그렇지만, 최우식은 서른의 나이가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동안 연기를 보여준다. ‘방황하는 청춘’이란 단어를 인간으로 빚어내면 최우식처럼 생기지 않았을까. 톤을 조금이라도 높이면 금방 튀어버릴 위험이 있는 ‘아웃사이더’의 연기도 최우식만의 채도로 농담을 조절한다. 덕분에 관객은 부산하게 튀어나가는 스토리 속 최우식의 연기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제가 그 나이대의 모습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마도 저 역시 그런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배우로 산다는 것 자체에는 미래 불확실성이 어마무시하잖아요. 신인 때는 오디션을 잡는 것도 불확실했고, 오디션을 통과해서 1차, 2차, 3차 올라가는 것도 불확실했고, 당장 내일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삶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도움이 됐던 것 같기도 해요. 지금은 연기가 제 일이 아니라 그저 즐겁고 하고 싶은 일이라고만 생각하면서 하고 있거든요. 이전의 시간들을 되새기면서 좋은 사람들과 같이 좋은 과정, 행복한 과정만 생각하고 그냥 해 나가고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