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태구민) 미래통합당 당선자와 지성호 미래한국당 당선자. 사진=박은숙 기자
1962년 평양에서 태어난 태영호 미래통합당 당선자는 주영 북한 공사 직을 수행하던 2016년 8월 한국 망명길에 올랐다. 탈북민으로선 드문 ‘북한 엘리트 출신’이다. 망명 4년 만에 21대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그는 탈북민 최초로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돼 국회 입성을 코앞에 두게 됐다. 오랜 기간 공직에 종사했던 태 당선자는 북한 관련 고급 소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물로 주목받았다.
지성호 미래한국당 당선자는 ‘꽃제비 출신 탈북민’이라는 신데렐라 스토리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특히 2006년 탈북 당시 1만km를 목발을 짚고 이동했던 이력은 지 당선자 훈장과 같았다. 2010년 북한 인권단체 나우(NAUH)를 설립해 북한이탈주민 수백 명을 구출한 점 역시 빼놓을 수 없었다. 지 당선자는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후보자 당선권인 12번에 이름을 올렸고, 4·15 총선 이후 국회 입성을 확정지었다.
미래통합당은 탈북민 출신 두 당선자가 21대 국회에서 ‘대북통’으로 맹활약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두 당선자는 ‘대북 가짜뉴스 유포자’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그 배경엔 ‘김정은 건강이상설’을 둘러싼 두 당선자의 코멘트가 있었다. 4월 21일 미국 CNN이 김정은 건강이상설을 보도한 뒤 태영호 지성호 당선자는 대북 이슈 ‘빅마우스’ 역할을 자처했다.
태 당선자는 김정은 건강이상설이 불거진 뒤 북한 후계구도에 있어 의외의 인물을 언급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4월 23일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김평일이라는 존재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북한 후계구도에서 ‘백두혈통 2세대’이자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 이복동생을 다크호스로 꼽은 것이다. 태 당선자는 4월 27일 CNN 인터뷰에서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김 위원장이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라며 김정은 건강이상설에 무게를 실었다.
지성호 당선자는 ‘김정은 사망’을 단언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5월 1일 국내 언론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사망을 99%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선 4월 21일 지 당선자는 “현재 (북한이) 공백 상태라 섭정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1월부터 세습과 관련해 보이지 않는 암투가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두 당선자들이 김정은 건강이상설과 관련한 추측성 발언들을 쏟아낸 것에 대해 북한 전문가들은 “너무 나간 것 아니냐”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 북한 전문가는 “태영호 당선자가 김평일 전 주체코 북한 대사를 북한 차기 권력구도 다크호스를 꼽았는데, 신빙성이 낮은 이야기”라면서 “아무래도 (김평일이) 자신과 같은 외교관 출신이다 보니 높은 점수를 준 것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중국 거주 북한 전문가도 “지성호 당선자는 김정은 사망 확률을 99%라고 점쳤는데, 99%라는 수치가 어디서 나왔는지 불분명하다”고 했다.
5월 1일 평안남도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나타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연합뉴스
두 당선자는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아 진퇴양난 처지에 놓였다. 그들의 말과 달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짠’ 하고 나타난 까닭이다. 김 위원장은 5월 1일 평안남도 순천 소재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여해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5월 2일 조선중앙방송,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 매체는 이 같은 사실을 일제히 보도했다. 준공식에 참여한 김 위원장은 활짝 웃는 표정으로 자신의 복귀를 알렸다. ‘백두혈통 오누이’라 불리는 김여정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은 상석에 앉아 달라진 정치적 위상을 과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태 당선자와 지 당선자를 향한 비판을 쏟아냈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월 4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둘을 비판했다. 김 의원은 “다시는 자신의 바람을 허위정보와 섞어 사실인 양 언론에 퍼뜨리지 말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이어 김 의원은 “(두 당선자는) 국방위나 정보위엔 절대 들어가지 말아 주시길 바란다”면서 “미통당 지도부에도 요구한다. 여러분이 진정한 보수 정당이라면 이번 일을 경고 삼아 두 의원(당선자)을 국방위와 정보위에서 배제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5월 2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두 탈북민 당선자의 신뢰성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이들(태영호 지성호 당선자)은 조만간 국민의 대표로 국회의원이 된다”면서 “모든 국가기관과 공공기관에 대한 정보 접근 요구가 가능하다. 어디까지 허락하고 (이들을) 얼마만큼 믿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박 의원은 “이들이 김정은 위원장에 내뱉은 말들의 근거는 무엇이고 합법적인가”라며 “소위 정보기관이 활용하는 휴민트 정보라면 그럴 권한과 자격이 있나. 아니면 단순히 추측에 불과한 선동이었느냐”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태영호 지성호 당선자는 5월 4일 입장문을 발표해 ‘김정은 건강이상설’ 관련 발언을 공식 사과했다. 태 당선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사과 말씀을 드린다”면서 “김정은 등장 이후 지난 이틀 동안 많은 질책을 받으며 제 말 한마디가 미치는 영향을 절실히 실감한다”고 했다.
태 당선자는 “국민 여러분께서 태영호를 국회의원으로 선택해주신 이유 중 하나가 북한 문제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전망에 대한 기대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 당선자도 “먼저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 말씀을 드린다”며 사과의 말을 전했다. 지 당선자는 “지난 며칠간 곰곰이 제 자신을 돌이켜봤다”면서 “제 자리에 무게를 깊이 느꼈다. 앞으로 공인으로서 신중하게 처신하겠다”고 했다.
두 당선자가 사과하자 더불어민주당은 공세 수위를 한 단계 높였다.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5월 5일 논평을 통해 태 당선자와 지 당선자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 및 징계를 촉구했다. 송 대변인은 “태영호 미래통합당 당선자와 지성호 미래한국당 당선자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망설 등 허위정보로 국민 혼란을 가중시킨 데 대해 미래통합당의 제 식구 감싸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했다.
심재철 미래통합당 당대표 권한대행. 사진=박은숙 기자
심재철 미래통합당 대표 권한대행과 원유철 미래한국당 대표는 두 당선자를 향한 여권의 화살이 빗발치자 “왜 북한의 GP 총격 도발엔 사과를 요구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반격에 나섰다. 심 권한대행은 5월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북한 정권엔 한없이 관대하면서 탈북자 출신 당선자들에게만 엄격한가”라며 “두 당선자의 발언이 결과적으로 부정확해 국민들에게 실망을 드린 것은 사실이나 여당이 (두 당선자를) 배척하는 태도는 도를 넘었다”고 말했다.
원 대표는 5월 4일 지성호 당선자의 ‘김정은 사망 99% 확신’ 발언과 관련해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은 바 있다. 이 같은 발언을 한 지 이틀 뒤인 5월 6일 원 대표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선 왜 재발 방지와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집권 여당에 날을 세운 발언이었다.
이처럼 ‘김정은 건강이상설’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탈북민 출신 당선자들의 발언을 둘러싼 책임 공방은 여전하다.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이 탈북민 출신 당선자들을 엄호하고 있는 형국이지만, 두 당선자의 ‘대북 전문성’이라는 무기엔 흠집이 남을 것으로 보인다.
한 미래통합당 당직자는 “두 당선자가 국회 입성 전 김정은 건강이상설 관련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른 것은 향후 원내 활동에 있어서도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이들의 가장 큰 무기는 ‘대북 고급 정보’의 신뢰성이었는데, 이번 논란으로 여기에 금이 갔다. 두 당선자가 ‘대북 전문가’ 타이틀에 걸맞은 신뢰성을 회복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두 당선자가 국회 입성 전부터 추진 동력을 상실한 모양새”라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