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자산운용 사태를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 조상원)는 황금연휴에도 구속된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을 소환하는 등 수사력을 집중했다. 잇따라 나오고 있는 진술 덕분에 수사팀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고 한다. 사진=임준선 기자
#복잡해진 사건 구조 “파악 자체가 의미”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검찰이 라임자산운용 사건에서 규명해야 할 의혹은 상당하다. 라임 펀드 환매가 중단된 상황에는 △기업사냥꾼과의 결탁에 따른 무자본 M&A(인수·합병) △관련 투자기업 자금 횡령 △투자 대가에 따른 뇌물 수수 △펀드 수익률 조작 △은행 등 판매사의 판매 사기 △정·관계 로비 의혹 등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미 체포한 이종필 전 부사장,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외에 다른 ‘회장님’들의 존재도 포착했다. 특히 라임으로부터 약 3000억 원을 투자받은 부동산 건설업체 메트로폴리탄의 김 아무개 회장과 2500억 원가량의 라임 자금을 투자 받은 연예기획사 대표 출신 이 아무개 에스모 회장 등이 눈길을 끌고 있다. 현재 이들은 모두 잠적해 있는 상황. 검찰은 2주일 넘도록 이들의 신병 확보에 집중하고 있는데, 검찰 안팎에서는 “복잡한 구조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일단 큰 의미”라는 평이 나온다.
사건에 정통한 법조계 관계자는 “라임 사건은 2019년 하반기부터 이슈가 됐는데, 사모펀드 형식으로 투자자들이 모두 숨어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누가 몇%의 지분을 가진 투자자인지를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라임과 얽혀 있는 에스모의 실질적인 최대 주주가 김봉현이 아니라, 이 회장이라는 것도 최근에서 알려진 것”이라고 털어놨다.
라임의 자금이 흘러들어간 코스닥 상장사 리드 실소유주 김 아무개 회장도 검찰 수사 대상인데, 김 회장은 라임 자금을 투자 받는 대신 이 전 부사장에게 거액의 금품을 건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범죄 정황들은, 모두 ‘공범’들로부터 나왔다.
#궁지 몰리자 나오기 시작한 진술들
최근 리드 사건과 관련해서 검찰은 유의미한 진술들을 확보했다고 한다. 지난해 리드 경영진은 회사 돈 834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최근 1심에서 징역 3∼8년을 선고받았다. 이때 김 회장은 수사 대상이 아니었다. 기소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라임 사건 검찰 수사가 탄력이 붙자 이미 수사를 받았던 인물들로부터 새로운 진술이 나왔다. “김 회장이 주도했다”는 것이다.
이는 리드 사건에서 비롯된 움직임은 아니다. 역시 라임의 자금이 들어간 D 사의 실소유주인 한 아무개 씨가 최근 검찰에 구속됐는데 그는 검찰에 “모두 털어놓겠다”고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씨가 이처럼 검찰 수사 협조를 선택한 것은 구속 등 엄벌을 피하기 위함이었는데 검찰은 한 씨에게 별다른 선처를 해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한 씨는 관련 진술은 모두 털어놨지만 구속을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회장 존재가 드러난 것 역시 김봉현 전 회장 등이 구속되면서 에스모 투자 관련 참고인들이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모 관련 CB(전환사채) 투자업계 관계자는 “결국 라임 자본에 기댄, 기업사냥꾼의 M&A였고 이를 통한 주가조작으로 돈을 벌려 한 설계자를 파악하는 것은 이를 잘 아는 4~5명의 핵심 공범들 가운데 누군가의 진술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며 “이 회장 외에 실질적 투자자들도 검찰이 다 추적 중”이라고 귀띔했다.
주가조작을 다룬 영화 ‘작전’의 한 장면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살겠다고 털어놓으면 다시는 이 바닥 못 돌아와”
사실 이 같은 검찰 수사 협조는 주가조작 업계에서는 불문율과 같은 행동이다. 공범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수사에 협조할 경우 낮은 처벌을 받아낼 수 있지만, 형을 마치고 다시 나왔을 때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어낼 수가 없다. 처벌보다 더 두려운 것이 더 이상 투자를 받아 주가조작 업계에서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이 바닥에서 20년 가까이 몸담아온 한 CB투자업계 큰손은 “지금 잠적한 인물들은 본인을 믿고 투자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숨어든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미 검거돼 다 진술을 했다고 들었다”며 “과거 DJ(김대중) 정부 등에서 잇따라 터진 게이트 때 인물들이 왜 그 뒤로 시장에서 은퇴하듯 사라졌겠나. 검찰에 수사를 받으면서 진술을 했다는 얘기가 나오면 감옥에서 나와서 다시 움직이려고 해도 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최근 10년 사이 가장 강도 높은 주가조작 관련 검찰 수사라는 라임 사건에서 그런 불문율이 깨졌다. 국민적 공분과 함께 높은 양형을 우려한 피의자들이 ‘선처’를 노리고 수사에 협조하는 분위기가 이미 조성됐다는 게 공공연한 후문이다. 앞선 CB업계 큰손은 “지금 수사를 피해 숨어 있다고 언론에 거론된 회장님들도 아마 검거되면 검찰에게 선처를 받으려고 공범들 가운데 일부를 내놓는 진술을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부 잠적한 회장들의 경우 변호인을 통해 검찰과 소통하며 ‘수사 범위’ 등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의지에 달린 수사 전선 확대
검찰의 수사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전선이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앞선 CB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재 검찰에서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 기업은 라임의 자금이 들어간 에스모와 리드 정도지만, 사실 라임의 자금이 에스모와 리드를 거쳐 들어간 곳만 해도 적게 잡아 10곳이 넘는다”며 “이들과 관련된 ‘회장님’으로 볼 만한 사람들이 10명은 넘고, 각각이 정·관계에 로비를 했다고 보면 된다. 결국 검찰이 어디까지 수사할 의지가 있는가에 달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일보는 김봉현 전 회장이 동향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K 국회의원에게 고급 양복을 선물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관계 로비 의혹은 K 의원뿐이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관련 사건의 변호인은 “벌써부터 이 아무개 회장 등 몇몇 회장님들은 정치권에 로비 리스트가 있다는 소문이 나온다”며 “동향 출신이라는 이유로 함께 강남 룸살롱, 텐프로 등에서 술 접대를 받았다는 정치인들이 한둘이 아니라더라”고 털어놨다.
잠적하거나 수사에 협조한 피의자들이 살기 위해 검찰이 원하는 것을 내놓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앞선 변호인은 “2주 전까지만 해도 이런 구체적인 정치인 로비 얘기는 없었는데 슬슬 이런 풍문들이 도는 것을 보면 궁지에 몰린 회장님들이 진술을 하기 위해 정리를 하는 게 아닌가 싶다”며 “술이라도 한 번 얻어먹었던 정치인들은 불안해하고 있지 않겠느냐”고 귀띔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