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대 항공기로 56개 노선을 운항하던 호주 2위 항공사 버진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해 영국 LCC(저비용항공사) 플라이비, 알래스카 항공사인 레이븐에어, 남아프리카항공, 에어모리셔스 등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등 파산 절차에 돌입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올해 항공업계 매출 피해가 세계적으로 약 14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전 세계로 세력을 확장하며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던 여행 예약 플랫폼 익스피디아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속에서 최소 8월 말까지는 전 세계 여행 시장 위축이 불가피할 것”이라 내다봤다. 미국 태생의 글로벌 공룡 OTA(Online Travel Agency) 익스피디아 역시 최근 차입과 투자 등으로 총 32억 달러(약 3조 9392억 원)의 자금 조달과 함께 경영진 교체로 비상경영에 나서며 코로나19 위기에 휘청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각국에서 입국 거부 조치가 시작된 3월부터는 대부분의 노선이 운항을 중단하면서 국내외를 막론한 전 세계 항공업계의 시름이 깊어졌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한산한 인천국제공항 모습. 사진=고성준 기자
#BNTL 적용한 선불제 항공권, 실효는?
이런 상황에서 자구책 마련을 위해 대한항공은 선불제 항공권 판매에 나섰다. 자금난에 따른 유동성 확보를 위해서다. 선불제 항공권은 말 그대로 항공권을 미리 구입해 적립해 놓고 필요할 때 차감해 쓰는 방식이다.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을 감안해 유효기간은 구매일로부터 2년으로 했다. 발권 뒤 2년 내 사용이기 때문에 최대 3년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중간에 고객이 변심해 환불을 요구해도 환불 수수료는 없다. 일부를 사용하고 남은 일부는 환불할 수도 있다. 일정 변경도 횟수제한 없이 가능하다. 한 사람 이름으로 샀어도 가족 범위 내에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고객의 불안 요소를 최대한 덜어주면서 자금을 확보하려는 조치다. 일단은 5월 말까지 판매하고 7월 1일부터 쓸 수 있다.
대한항공 선불제 항공권은 구매금액이 높을수록 높은 할인율을 적용해 구매를 유도하고 있다. 100만 원에 10%, 300만 원에 12%, 500만 원에 15% 할인율을 적용하며 구매한도에는 제한이 없다. 하지만 구매·사용은 홈페이지나 앱으로는 불가하고 전담데스크를 통해 전화로만 가능하다. 또한 법인 명의는 불가능하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일주일에서 열흘 사이 약 20억 원의 선결제 항공권이 팔렸다. 5월 운항 노선은 13개에 불과했지만 6월 운항 노선은 32개로 늘었다. 미주 노선도 5개에서 9개로 증편됐다. 7월 운항 노선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신뢰성이 확보되는 국적 항공사이니만큼 고객에게도 충분한 실효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선불제 항공권으로 도는 현금의 규모가 대한항공 운영비 대비 크다고 할 수 없지만 현금 확보를 위한 자구책이다.
항공권 선구매는 정부가 먼저 나서서 지원하는 모양새다. 국토교통부는 국외여비의 항공료 예산 가운데 85%인 15억 5000만 원을 우선 항공권 선구매에 쓰겠다고 밝혔다. 정부기관과 지자체 등에도 이를 독려하면서 향후 약 1600억 원의 항공권을 국적 항공사들로부터 고루 선구매할 예정이다. 항공업계에 지원되는 직접 지원금 외에 간접적인 방법으로도 지원책을 마련하겠다는 의미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당장 유동성 확보가 최우선인 상황에서 대한항공은 ‘BNTL(Book Now Travel Later) 마케팅’을 잘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일반인의 수요가 항공사의 재무건전성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닐 것”이라며 “결국 어떤 식으로든 정부의 추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금난에 따른 유동성 확보를 위해 대한항공에서 선불제 항공권 판매에 나섰다. 사진=대한항공 홈페이지 캡처
이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잦아들게 되더라도 최소 8~9월은 돼야 항공권 예약이 서서히 시작될 테고 그나마 요즘 가장 위험이 덜한 지역으로 인식되는 동남아 위주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은 이미 확진자의 폭이 너무 넓어졌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은 감염자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 때문에 당분간은 일반인이 여행을 감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주로 장거리 노선에서 수익을 얻는 대형 항공사들의 자금난이 한동안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단거리 중심 LCC는 선결제 항공권 판매도 어려워
그나마 단거리 노선의 저렴한 티켓 위주의 LCC는 선결제 항공권을 판매하기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항공기의 좌석이 많지 않고 원래도 할인 좌석 시스템 정착이 잘 되어 있어 고객이 LCC의 선결제 항공권에 매력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LCC들의 누적적자로 인한 자금난과 이스타항공 매각 등으로 인해 LCC 자체의 신뢰도가 떨어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LCC 관계자는 “최근 국토부가 대형 항공사 위주로 통 크게 지원하고 LCC에 대해서는 지원이 미약하다”며 “면허를 줄 때는 언제고 이제와 공급과잉이 된 LCC업계를 정부가 나서 구조조정 하려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국토부의 역할이나 지원책의 방향에 따라 LCC를 포함한 국내 항공업계가 재편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항공사 입장과는 또 다른 입장에 있는 여행사 관계자는 “저렴한 항공권이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뜨는 시대인데 가격 비교 구매를 할 수 없는 선불항공권이 과연 얼마나 실효가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선불 항공권이 10~15% 할인을 해주기는 하지만 대한항공 홈페이지에서 판매되는 정규 요금에 대한 할인이다. 따라서 해당 항공권으로는 할인석 구매를 할 수 없을 것이기에 어느 방식이 티켓을 저렴하게 사게 되는 건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여행사가 단체 티켓을 블록으로 구매해 따로 팔거나 미리 사놓은 티켓을 땡처리로 팔게 될 경우 항공료가 선결제 항공권보다 더 쌀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미 얼리버드 항공권의 인기가 예전과 달리 시들해진 까닭 역시 가격비교 플랫폼의 발달로 여러 변수에 의해 미리 사는 항공권이 꼭 싼 게 아니라는 인식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그는 또 “고객 입장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알게 됐듯 취소·환불은 물론 일정변경에 대한 약관을 꼼꼼히 따져보고 구매하는 것이 얼마나 더 할인되는가보다 중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여행업계 다른 관계자는 “항공업계의 상황이 좋지 않아서 할인항공권이 계속 나올 것 같은데 선불제 항공권에 얼마나 고객의 반응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어떤 세계적 이슈가 갑자기 생길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이라 구매 욕구를 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각종 산업군의 유·무급 휴가가 지속되고 당장 가게의 살림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래의 해외여행까지 대비할 가정이 얼마나 있을지에도 물음표가 붙는다”고 보탰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