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물류창고 화재 계기 재조명…“목숨보다 비용 절감에 혈안인 사업주 강력 처벌해야”
당시 한겨레의 7월 2일 ‘이란공사장 안전 방심하다 참변’ 기사에 따르면 현장에는 거의 매일 공습 사이렌이 울리고 사고 위험이 컸지만 월 400시간 이하로 근무하면 월급이 깎이게 돼 노동자들이 실제로 대피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작업장 주변에는 울타리가 쳐 있어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돼 있었다. 사망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1년 계약직이었으며 가장 어린 사망자는 28세였다.
1988년 7월 8일 13대 국회 초선 의원 노무현은 대정부 질문에서 “사고 당시 공습경보가 울렸음에도 회사는 작업을 강요하고 평소에도 대피하면 수당의 지급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명백한 살인행위입니다. 돈이면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다는 발상. 내 나라 백성 몇 만 명이든 죽일 수 있다는 끔찍한 발상입니다. 파이를 크게 해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들 자식 데려다가 죽이란 말이야. 춥고 배고프고 힘없는 노동자들 말고 바로 당신들 자식들을 데려다가 죽이면서 이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킵시다”라고 외쳤다.
4월 29일 이천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38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매우 후진적이고 부끄러운 사고”라며 “안전 수칙이 지켜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엄중하게 규명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대통령의 지시에 노동부는 물류, 냉동창고를 포함한 전국 건설 현장 337곳을 대상으로 7일부터 5주간 긴급 감독에 들어갔다. 노동부는 이번 감독에서 산업안전법 등 법규 위반이 적발될 경우 사법 조치 등 엄중히 대응할 방침이라며 “노동자 안전을 경시하는 업체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도 건축주인 한익스프레스, 시공사인 건우, 감리업체, 설계업체 등을 압수수색하고 공사 핵심 관계자 17명에 대해서는 출국 금지 조치했다.
6일에는 경찰 과학수사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전기공사 3명, 한국가스공사, 소방당국, 산업안전관리공단으로 구성된 수사본부가 3차 합동 감식에 나서며 화재 원인을 찾는 데 분주하다.
힘없는 노동자를 그만 죽이라던 32년 전 노무현의 절규가 2020년에도 반복되고 있다. 당국은 공사업체가 기본적인 화재 예방 규정을 어기고 인화성 우레탄폼 작업과 용접 작업을 병행하다가 참사가 벌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흔히 현장에서 규정을 어기는 이유는 단순하다. 공기와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돈 때문이다.
40명이 사망한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도 이와 닮아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안전수칙을 무시한 위험한 동시 작업, 전기 소방 등 준공검사를 받았지만 사실상 엉터리였던 관청의 허술한 행정, 대부분 일용직인 인부들에 대한 안전교육 미실시,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한 조급한 공사강행이 있었다. 40명의 사망을 불러온 냉동창고 소유주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기소됐지만 처벌은 고작 벌금 2000만 원이 전부였다.
후진국형 산재를 근절하기 위해서 노동계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주장한다. 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에 강력한 형사책임을 묻는 법이다. 사망사고엔 사업주를 3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5억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는 것이 골자다. 고 노회찬 의원이 발의했지만 5월 말을 끝으로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과도한 기업인 처벌이라는 기업 측의 논리가 국회에서 주류를 이루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람 목숨 값보다 절감되는 공사비가 더 큰 상황에서 돈 대신 목숨이 희생되는 것은 필연”이라면서 “노동자 목숨보다 안전비용 절감이 더 중요한 사업자의 비양심과 인력 부족으로 산업안전을 관철해내지 못한 공적 책임이 뒤얽혀 언젠가는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재발했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안전규정 미준수와 위험방치로 인한 인명피해에 대해서는 실수익자의 엄정한 형사책임은 물론 고의적 위험방치에 대해 과할 정도의 징벌배상을 가해야 한다. 돈을 위한 위험 방치로 사람이 죽어도 실제 책임도 이익도 없는 말단 관리자만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실제 이익을 보는 사업자는 정부 지급 산재보험금 외에 몇 푼의 위로금만 더 쥐어주면 그만이니 노동자 생명 위협으로 이익을 얻는 사업자는 이 좋은 악습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며 중대 재해 기업 처벌법에 힘을 실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도 “시공사는 한국산업안전공단에서 이미 세 차례나 주의를 받았지만 소용없었다. 산업현장에서 기업의 책임이 얼마나 가벼운지 알 수 있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21대 국회에서의 또 하나의 과제”라고 거들었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시민당을 포함하면 180석의 의석을 차지할 예정이다. 개헌을 제외하면 패스트트랙을 통해 어떤 법안도 통과시킬 수 있는 의석수다. 야당이 반대해서라는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한편 이천 화재 사망자 가운데 사인이 명확하지 않은 18명의 시신은 국과수에서 부검을 진행했다. 통상 화재사고 사망자의 경우 혈액 내 일산화탄소 농도를 확인해 화재로 인한 사망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데 이들의 경우 시신에서 혈액을 채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창의 기자 ilyo2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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