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이 지난 4월 28일 공시를 통해 이스타항공 인수를 연기한다고 밝혔다. 서울 강서구 이스타항공 본사. 사진=박은숙 기자
직접적인 이유는 해외 기업결합심사지만 이스타항공의 혼란스러운 내부 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현재 이스타항공은 직원의 22%를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전체 직원 1671명 중 345명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계약직 근로자 전원인 186명과 정규직 중 159명을 구조조정할 예정이다. 현재 159명의 정규직 구조조정 인원 중 60명 이상이 희망퇴직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스타항공 조종사노동조합(이스타항공 노조·위원장 박이삼)은 연일 구조조정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면서 맞서고 있다.
현 상황에서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강행하면 재무적으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이스타항공의 자본은 마이너스(-) 632억 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또 코로나19 사태로 올해 상반기 실적도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주항공도 2019년 331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부채비율은 2018년 말 169.76%에서 2019년 말 351.38%로 늘었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적어도 2분기까지는 국제선 노선 운항 정상화가 어려울 전망이고, 성수기인 3분기에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개학 연기에 따른 방학일수 감소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사상 최악의 항공업황에서 이스타항공 인수는 제주항공의 차입금 증가 및 재무구조 악화로 연결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스타항공 노조는 재무적 부담을 줄이고자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의 구조조정을 종용했다고 주장한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구조조정 이유에 대해 “업황이 어려워서 회사를 매각하고, 사업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스타항공 노조는 “근로기준법이 노사 협의를 통해 정리해고를 피하기 위한 방법을 우선 논의하라고 정하고 있음에도 이를 무시했고, 고용유지지원금 신청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며 “지난 4월 24일에는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이스타항공 노조와 노사협의 위원들을 배제하기 위해 당일 회의 일정을 3번이나 바꿔 정상적인 논의조차 불가능하게 했다”고 반박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이스타항공 인수 선행조건에 구조조정은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인수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스타항공 경영에 법적으로 관여할 수 없기에 현재로서는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결합심사 완료 후 구조조정과 상관없이 인수가 진행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세부적인 내용은 서로 맞춰가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스타항공 노조 측은 이번 구조조정의 배후로 제주항공과 함께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를 꼽는다. 김포국제공항의 저비용항공사 국내선 출국장. 사진=임준선 기자
이스타항공 노조 측은 이번 구조조정의 배후로 제주항공과 함께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를 꼽는다. 이스타항공 모회사 이스타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이 당선자의 장남 이원준 씨와 장녀 이수지 이스타항공 상무다.
이스타항공 노조는 “이상직 당선자 일가는 이스타항공 매각을 성사시켜 매각대금 545억 원을 받아 챙기기 위해 정리해고를 선행한 후 회사를 넘길 궁리만 하고 있다”며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인수로 저비용항공사(LCC) 독점사업자 지위를 획득할 욕심에 이스타항공 경영진을 앞세워 뒤에서 정리해고를 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의당 노동본부도 “그간 항공산업의 활황 국면에서 (이스타항공) 오너 일가는 과실을 챙겨왔다”며 “회사 매각 계약 체결 소식이 발표될 당시 경영진은 당장의 회사 합병 없는 독자적 운영이라며 인위적 구조조정에 대해 선을 그었지만 코로나19 위기가 시작되자 말을 바꿨다”고 이상직 당선자와 이스타항공 사측을 비판했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노조 측 주장에 대해 “특별한 입장이 없다”고 전했다.
이상직 당선자는 이스타항공의 창업주이자 현 최대주주 일가임에도 이스타항공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이 당선자는 현재 이스타항공과 관련한 직책이 없는 등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재계에서는 오너의 승인 없이 구조조정을 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의 승인 없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긴 힘들다”며 “이 당선자가 이스타항공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더라도 최소한 현 경영진으로부터 보고는 받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일요신문’은 이 당선자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받지 않았고, 문자메시지에도 답변을 받지 못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