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 대구 수성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개표 결과 당선이 확실시되자 지지자들로부터 축하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는 홍준표 당선자. 사진=연합뉴스
#그래도 베테랑? 대마불사
현대정치사에서 군사정부 시절을 제외하고는 ‘일약 스타덤’으로 대통령이 된 사례는 없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청문회 스타’로 이름을 알린 이후 청와대로 가기까지 오랜 정치 수련을 했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장기간 대권 준비를 했고, 문재인 대통령 역시 노무현 정부 국정 경험에 제1야당 당대표까지 역임했다.
통합당의 중진급 베테랑이 결국 대선에서 여당 후보와 맞붙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이른바 ‘대마불사론’이다.
가장 앞줄에 서있는 정치인은 무소속으로 당선돼 통합당으로 복귀할 것이 확실시되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다. 경남도지사 경험에, 대구에서 국회의원까지 되면서 통합당 텃밭인 영남권 맹주로 떠올랐다. 호남 맹주로서 여권의 강력한 대권주자인 이낙연 전 총리와 견줄 수 있을 만큼 지역 기반은 확실하다.
그러나 홍 전 대표가 무사히 링 위로 오르기까지는 난관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홍카콜라’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시원하게 쏟아내는 그의 언사가 정치적 고비마다 설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막말 파문’이 감표 요인이 됐듯이, 홍 전 대표의 발언 절제력 발휘 여부가 그의 대권 가도에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홍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무소속으로 당선된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도 눈여겨봐야 하는 잠룡이다. 다만 홍 전 대표가 경남을 넘어 TK(대구·경북)까지 진격한 것과 달리, 김 전 지사는 경남에 여전히 머물러있다는 것은 향후 약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번 총선에서 불출마해 원외에 머무르게 된 유승민 통합당 의원은 대신 조해진 김희국 김웅 강대식 당선자 등 ‘유승민계’ 의원들을 다수 원내로 진입시키면서 일단 계파를 유지하게 됐다. 정치는 판세 키우기라는 점에서 길목은 놓치지 않은 셈이다.
유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대구를 떠남으로써 통합당 텃밭 TK 지지세를 상당 부분 상실했다. 하지만 유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증명됐듯 수도권에서 개인 인지도가 높은 점을 고려, TK 대신 수도권 후보로 기반을 갈아타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선에서도 통합당 수도권 후보들을 집중 지원하는 유세를 벌이기도 했다.
유 의원은 4월 23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우리가 왜 졌는지 알아내고, 앞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내는 게 제일 중요하다. 통합당 참패의 원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121석 중 16석을 얻는 데 그친 수도권의 낙선자들이다. 이들이 다 모여서 교황 선출(콘클라베)식으로 한 번 (무제한 토론을) 해봤으면 좋겠다. 그런 자생적 노력 없이 비대위니, 전대니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언급, ‘수도권 맹주’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노력을 보였다.
#정치 아무도 몰라~ 패자부활
‘패자부활’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다. 그 선두에는 역시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가 있다. 황 전 대표는 패장 정치인들의 ‘고정 코스’인 해외연수를 계획했는데 못 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로 인해 각 나라가 봉쇄령을 내리면서 외국행이 막혔기 때문이다.
미래통합당 4·15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대표직 사퇴 기자회견을 한 황교안 전 대표. 사진=이종현 기자
이런 점에서 황 전 대표가 잠시 휴식기를 가진 뒤 복귀를 타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뭔가 일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 전 대표는 총선 당일 대표직 사퇴 후 기자들에게 “앞으로도 나라를 위해서 작은 힘이라도 보탤 일들을 찾아보도록 하겠다”고 한 바 있다. 정계은퇴 선언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통합당의 혼란 국면이 장기화할 경우 올해 연말쯤 소환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총선에서 통합당 험지로 불리는 세종으로 가 낙선한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도 대권 고지를 향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세종에서 1주일에 2~3일간 머무르면서 젊은층 잡기에 나서고 있다. 그가 TK 출신이라는 점에서 TK를 발판으로 중원에서 세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교수 출신,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했다는 점에서 국정 과제 제시 능력은 다른 후보보다 뛰어나다는 평이 있다. 하지만 전국적 인지도 및 당내 우군 확보가 남겨진 숙제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역시 낙선 거사가 됐지만 전국적 인지도를 갖고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유력 주자다. 원희룡 제주지사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그는 자치단체장으로 동선에 제한이 많지만 만남의 폭을 확대하는 등 대권 고지를 향한 행보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킹메이커 등에 업고? 신예 등장
통합당 내부에서는 “다가오는 대선만큼은 젊은 신예가 등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찬성론자들 가운데 이런 의견이 많다. ‘830세대(1980년대생·30대·2000년대 학번)’가 중심이 되는 세대교체가 필요하며, 대권 후보도 이에 맞춰야 한다는 게 김종인 전 위원장 생각이기도 하다.
우선 홍정욱 전 한나라당 의원이 떠오른다.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2011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땐 비대위원 참여를 요청받기도 했다. 최근 증권가에서는 홍정욱 테마주가 언급되기도 했다.
김세연 통합당 의원도 “본인은 아직 역량이 안된다”고 부인하지만 잠재적 신예 대권주자로 분류된다. 3선 의원인 그는 여의도연구원장을 지냈고, 이번 총선에서 공천관리위원도 맡았다.
다선이지만 ‘잠룡’으로는 분류되지 않았던 조경태 의원과 이번 총선에서는 떨어졌지만 ‘개혁파’로 불리는 김용태 의원 역시 신예의 범주에 들어간다. 조 의원의 경우 통합당 텃밭인 부산을 정치적 기반으로 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하지만 대중적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큰 약점이다.
김용태 의원은 대중적 인지도는 어느 정도 있고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를 옮겨 문재인 정부 핵심 실세로 불리는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맞붙으면서 당에 대한 헌신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당내 우군 확보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다.
주호영 의원도 민주당 대권주자로 불리는 김부겸 의원을 꺾고 통합당 원내대표에 당선되며 주가가 올라갔지만 대권주자로 나서기에는 아직 체급이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안철수 카드 만지작, 합종연횡
뚜렷한 대선후보가 당내에서 나오지 않을 경우, 다른 당과 합종연횡 가능성도 있다. 대상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다. 인지도 측면에서 안 대표를 압도할 만한 인물이 통합당 내부에 없다는 점도 설득력을 높인다.
5월 4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혁신준비위원회 1차 회의 및 총선평가회에 참석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안 대표도 이 부분에 대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실제 안 대표는 5월 6일 KBS 라디오 ‘열린토론’에 출연해 ‘미래통합당과 연대 또는 연합할 의향이 있는가’라는 취지의 질문이 나오자 “(국민의당이 낸)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동의하는 어떤 당과도 손잡아야 하는 게 국회의 작동 원리”라고 말했다. 연대에 대해 열린 마음을 나타낸 것이다.
안 대표는 이날 “우리가 낸 안에 대해 여당이 동의하면 여당과 손잡고, 야당이 동의하면 야당과 손잡고 통과시키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 아닌가. 우리가 누군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라며 손을 잡는 데 대해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안 대표는 5얼 4일에는 야권에 ‘합동 총선평가회’를 제안하기도 했다. 안 대표는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열린 총선평가회 성격의 혁신준비위원회 1차 회의에서 “각각의 정치를 지향하되, 합동 총선평가회를 통해 야권에 주어진 시대적 요구와 혁신과제를 함께 공유하고 혁신 경쟁에 나서자. 혁신 경쟁을 통해 야권 전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혁신적으로 변화한 야권이 시대의 흐름과 국민의 마음을 선도해 나갈 때만이 국민은 기회를 부여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안 대표가 세 불리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통합당 한 당선자는 “여러 경우의 수가 나오면서 치열한 경쟁 국면이 나타나고, 후보자들이 떠오르면서 각자가 다양한 메시지를 내면서 새로운 비전이 쏟아지면 통합당을 외면했던 국민들의 마음도 서서히 돌아설 것”이라며 “노장과 신예가 아름답게 경쟁하고 합종연횡의 그림도 만들면서 다채롭고 드라마틱한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