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OTT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 소송이 글로벌 CP ‘무임승차’ 논란의 도화선이 됐다. 사진은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된 한국 예능 ‘범인은 바로 너!’ 제작발표회 당시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넷플릭스는 지난 4월 13일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법원에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했다. 인터넷망 관리 의무 분담을 요구하고 있는 ISP인 SK브로드밴드에 대해 망 사용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음을 법원이 확인해달라는 목적이다. 지난 3년간 매년 8000억 원가량의 설비투자를 진행한 SK브로드밴드는 이용자가 급증한 넷플릭스에 망 사용료 협상을 요구했지만 넷플릭스는 망을 보유하지 않은 사업자도 통신사업자와 같은 조건으로 망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망 중립성’ 원칙에 위배된다며 협상을 거절해왔다.
상황을 조기에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넷플릭스가 제기한 소송은 공교롭게 글로벌 CP ‘무임승차’ 논란의 도화선이 됐다. 넷플릭스가 소송을 제기한 시점이 문제였다. 2019년 11월 SK브로드밴드가 넷플릭스와의 망 사용료 갈등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에 재정을 신청했고, 방통위는 그 결과를 오는 6월 내놓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송으로 방통위의 중재가 중단되자 일각에서는 넷플릭스가 방통위를 ‘패싱’하며 우리 정부의 행정 절차를 무시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칼집에서 칼 뽑은 국회
글로벌 CP의 무임승차 논란은 타깃 기업만 달랐을 뿐, 2017년부터 매년 국정감사에 반복되는 단골 메뉴다. 2017년 국정감사에서 페이스북은 접속경로 임의 변경 문제를 지적받으며 망 사용료 이슈가 불거졌고, 2018년과 2019년에는 구글과 페이스북이 세금 회피 문제와 인터넷망 무임승차 논란으로 질타를 받았다. 이용자가 급증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업체 넷플릭스와 유튜브 또한 지난해 국감에서 언급됐다.
매년 국감에 오르던 글로벌 CP의 망 사용료 문제에 처음으로 칼을 뽑아든 곳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다. 과방위는 지난 5월 6일 열린 20대 국회 마지막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글로벌 CP 역차별 해소를 위한 법안을 논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는 해외사업자의 국내 대리인 지정 의무 부여,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 이상의 CP에게 ‘서비스 안정 수단’ 조치 의무 부여 등이 주요 내용으로 담겼다.
이번 개정안은 국회에 발의돼 계류 중이던 5개 글로벌 CP 관련 법안 가운데 박선숙‧유민봉‧김성태 의원이 발의한 세 개 법안을 골자로 마련됐다. 그러나 변재일 의원이 제안한 국내 서버설치 의무화 관련 내용은 제외됐고, 원안의 ‘품질 의무’라는 단어는 ‘서비스 안정성’으로 교체됐다. 규제 수위가 낮아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과방위는 원안의 취지를 살리며 실현가능성에 중심을 뒀다고 설명했다.
과방위 의원실 한 관계자는 “글로벌 CP는 과기부와 방통위 두 군데가 공동으로 관여된 문제”라며 “방통위는 사후 규제 기관인데다 이용자 보호에 포커싱돼 있어 관련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반면, 과기부가 움직이게 되면 사전규제 성격을 띠게 되는 만큼 소극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무 등이 들어가 강제성을 띠게 될 경우 통상문제로까지 비화될 가능성이 있어 워딩이 순화된 부분이 있지만, 법적으로 정비해 추후 국내 기업이나 국민의 피해를 막을 수 있게 됐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개정안이 법안소위를 통과한 것을 두고 ISP 업계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ISP기업 관계자는 “글로벌 CP 가운데 특히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 동영상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의 경우 사용하는 용량이 큰데다 이용자도 급증하면서 ISP 사업자 혼자 책임을 지기는 어려워졌다”며 “해외의 사례를 봐도 ISP 사업자와 CP 사업자가 책임을 분담하는 만큼 이번 개정안 통과가 의미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반면 국내 CP 기업들은 개정안으로 글로벌 CP와의 역차별이 해소된다고 보지 않는데다 오히려 통신망 제공사업자인 통신사가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되면서 부가통신사업자들에게 계약상 불리한 상태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 5월 4일 한국인터넷기업협회와 벤처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공동 성명서를 통해 “통신사와 해외 기업의 분쟁해결을 이유로 오히려 결과적으로 국내 IT기업과 스타트업에게도 부당하게 망 품질유지 의무를 전가하는 법안”이라며 개정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
2019년 10월 7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성욱 공정위원장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1년 공들인 공정위, 오는 7월 결론
이 같은 상황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공정거래위원회다. 공정위는 이미 일 년 전부터 글로벌 CP와 국내 CP 사업자 간 역차별 문제를 인지하고 조사를 진행해왔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지난 2019년 10월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글로벌 CP 무임승차 논란에 대해 “공정거래법에는 가격 차별을 규제하는 내용이 있다. 가격 차별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9년 4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KT와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등 통신3사가 국내 CP와 글로벌 CP에 대한 망 접속료를 차별적으로 받는 것을 불공정거래행위로 보고 이를 공정위에 신고했다. 경실련 관계자는 “지난해 4월 신고는 글로벌 CP 기업의 시장지배력과 차별적 시장구조를 지적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글로벌 CP의 경우 사실관계나 데이터가 알려진 바 없어 실효성을 따져 전략적으로 국내 ISP 사업자를 신고했다”고 전했다.
공정위는 해당 건에 대해 지난해 8월 본조사를 시작해 현재 마무리 작업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경실련 관계자는 “공정위가 최근 당사자인 국내 ISP 기업과 참고인인 글로벌 CP의 서류 보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목표는 5월 중 결과 발표였지만 내부 사정으로 늦어도 7월까지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경실련의 신고에 따른 공정위 조사는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간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가 이번 조사를 통해 글로벌 CP의 시장지배력을 확인하고 망 사용료 계약 실태를 확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 기반으로 공정위가 국내와 글로벌 CP의 차별을 이유로 국내 ISP 기업을 제재한다면 SK브로드밴드 측에 유리하다. 공정위가 차별 사실을 공인해주면서 넷플릭스 역시 국내 CP에 준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경실련의 신고에 따른 공정위 조사에 대해 넷플릭스와 구글 등 글로벌 CP 등과의 계약 관계를 포함해 요구 자료를 제출하고 소명했다”고 말했다. 이어 넷플릭스와의 소송에 공정위 결과가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국회와 공정위 움직임이 소송에 미칠 영향에 대해 “아직 개정안이 국회 법안소위만 통과한 상황인데다 소송은 별개의 건이라고 본다”며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