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고자 박 씨의 900만 원은 어디로
무연고자 박 아무개 씨(25)가 사망했다. 태어나자마자 인천의 한 장애인시설에 버려진 박 씨는 가족은커녕 먼 친척과도 연락이 닿지 않는 말 그대로 무연고자였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시설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인생 대부분을 시설에서 지낸 셈이었다. 사인은 병사였다. 평소 앓고 있던 지병이 악화된 것이 원인이었다.
2019년 11월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성북 네 모녀’의 장례식. 무연고자였던 이들의 장례식 상주는 구청 직원이었다. 사진=연합뉴스
무연고자의 죽음이라고 늘 황량하고 쓸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서류상 가족은 없어도 일상을 함께했던 지인부터 일자리 동료, 인권단체 활동가까지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인연이 적지 않은 사망자도 있다. 박 씨가 그러했다. 박 씨의 장례를 치른 관계자는 “빈소에 서른 명이 넘게 방문했다. 코로나19로 시설에 있어 참석하지 못한 박 씨의 친구들까지 하면 50명은 될 것”이라고 했다
지인들은 박 씨를 누구보다 부지런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돈이 없어 폐 끼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악착같이 일했다고 했다. 이렇게 사는 것은 박 씨뿐만이 아니었다. 시설 내 무연고자 대부분이 그렇게 산다고 한다. 박 씨의 동료 A 씨는 “다들 열심히 살았다. 언젠간 자립해 살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100원짜리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박 씨의 잔고가 이를 증명했다. 사망 후 시설이 확인한 박 씨의 재산은 1000만 원 남짓. 다달이 나오는 연금과 기초생활수급비 대부분을 저축했고 23세에 일을 시작해 2년 동안 번 돈을 모두 합친 금액이었다. 그런데 장례식 이후 이 돈의 행방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동료 A 씨는 “장례비 100만 원을 박 씨의 돈으로 치르고 나머지 재산 전부는 국고로 귀속되었다고 들었다”고 전했고 또 다른 지인은 “몇 백만 원의 장례비는 모금을 통해 해결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시설 관계자 역시 “박 씨의 죽음이 갑작스러워 급하게 장례부터 치렀으나 이후 재산처리방법에 대해서는 시청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만 말했다.
확인 결과, 기초생활수급자였던 박 씨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14조에 따라 75만 원의 장례비를 지자체로부터 지원받았다. 이후 약 100만 원의 추가 비용은 박 씨의 재산에서 처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은 돈 약 900만 원은 민법 제1057조에 따라 모두 국고로 귀속됐다.
이렇듯 무연고 사망자의 재산 처리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이 없다 보니 이를 악용하는 곳도 넘쳐난다. 보건복지부가 2017년 전국 노인요양·양로시설을 대상으로 최근 3년 동안 시설에서 사망한 무연고자의 유류금품 처리에 대한 전수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371명의 사망자 가운데 154명의 유류금품이 적법한 절차를 걸치지 않고 처리된 것으로 드러났다. 부정하게 처리된 금액은 총 7억 7000만 원에 달했다. 대다수 시설에서 무연고 사망자 발생 시 민법에 따른 재산관리인 선임절차 등에 대한 인지가 부족했던 것이 큰 이유였다.
서울역 인근 노인복지시설 관계자 김 아무개 씨는 5월 7일 일요신문과 만나 “기초수급을 받는 어르신은 국가에서 장제비 75만 원이 지급된다. 상속인이 명확하지 않다면 상속재산관리인 선임을 위해 관련 서류를 가정법원에 인계한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절차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시청이나 주민센터에 문의해도 ‘다시 알아보고 전화주겠다’며 감감무소식인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장애인복지시설 조사 대상조차 못 돼
무연고 사망자 빈소에 “지켜주지 못 해 미안하다”는 내용의 포스트 잇이 붙어있다. 사진=연합뉴스
상황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복지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17개 지자체의 후속 진행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매년 지자체에서 전수 실태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 결과를 복지부에 보고하도록 정식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복지부는 2017년 이후로는 어떠한 조사 결과도 발표하지 않았다.
일요신문은 4월 13일 복지부에 2017년 7월부터 지난해까지 시설 내 사망한 무연고자 유류금품 관리 실태조사에 대한 결과 자료를 요구했으나 복지부는 한 차례 연장 회의를 거쳐 최종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2017년에는 보도자료로 공개됐던 자료가 지난해에는 비공개 자료가 됐다. ‘해당 시설의 관리·감독 자료’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정보공개법 제9조 6항 다에 의하면 개인 또는 시설 자료라 하더라도 ‘공공기관이 작성하거나 취득한 정보로서 공개하는 것이 공익이나 개인의 권리 구제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정보’라면 비공개 대상에서 제외된다. 같은 항 마에 의하면 ‘공개하는 것이 공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로서 법령에 따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업무의 일부를 위탁 또는 위촉한 개인의 성명·직업’ 역시 비공개 대상에서 제외된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은 “2017년에 공개되었다면 이런 결정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앞서의 무연고자 박 씨의 지인은 “철저히 관리하겠다던 복지부가 2017년 이후 실태조사를 한 것인지조차 잘 모르겠다. 공개를 안 하는 게 아니라 해당 자료가 없어 못하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비판했다.
장애인복지시설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최도자 민생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장애인주거시설에서 생활하다 사망한 사망자의 35%가 무연고자로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그러나 사후 이들의 재산이 적정하게 처리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2017년 복지부 전수조사 대상에서 장애인복지시설은 제외됐기 때문이다. 당시 조사대상은 노인·양로시설에 그쳤던 것으로 확인됐다.
장애인 인권단체 관계자는 8일 “장애인복지시설은 복지 혜택 차원에서도, 관리 차원에서도 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2017년에는 복지부 점검 대상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시설이 무연고자 유류금품 처리 규정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대대적인 전수 조사가 시행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