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K리그가 개막한 가운데 일부 국가에서 리그 재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여전히 앞날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사진은 리그 중단으로 한산한 리버풀 홈구장 안필드. 사진=연합뉴스
#리그 재개에 촉각 세운 리버풀
특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프리미어리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인기 리그다. 자연스레 중계권료 상승으로 돈이 몰렸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 잔여 경기를 치르지 못할 경우 막대한 위약금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일부 구단은 잔여경기 중계권료를 받지 못한다면 파산에 이를 수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은 리그 재개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하고 있다. 최근 중립지역에서 무관중 경기를 치르는 방안이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브라이튼 앤 호프 알비온 등 일부 하위권 팀들의 반대에 부딪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하위권에서 경쟁 중인 구단들은 작은 변수에도 강등 위험에 놓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되는 것은 곧 천문학적 금전 손실을 의미한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리그 재개 여부에 가장 민감한 구단은 리버풀이다. 리버풀은 금전 문제보다 30년 만의 우승이 걸려 있다는 점이 더 크게 작용한다. 리버풀은 프리미어리그 역사뿐 아니라 유럽 전체를 통틀어 기록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27라운드까지 무패 우승을 꿈꾸다 28라운드에서 1패를 안으며 무산됐지만 우승이 확정적인 상황이었다. 리그 2위 맨체스터 시티와 승점 차이는 25점. 리버풀이 남은 9경기에서 전패를 해야 그나마 맨시티가 따라잡을 수 있는 차이다. 하지만 이 같은 독주에도 리버풀은 우승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특히 리버풀은 잉글랜드 명문이자 세계적인 인기 구단임에도 오랜 기간 리그 우승과 거리가 멀었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FA(잉글랜드축구협회)컵 등에서는 우승컵을 들어 올렸지만 지난 30년간 자국리그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이들의 마지막 리그 우승은 1990년, 프리미어리그로 개편되기 이전인 ‘풋볼리그 퍼스트 디비전’ 시절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리버풀은 압도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음에도 우승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사진=리버풀 페이스북
#리버풀에 이어졌던 불운
프리미어리그 체제에서 리버풀의 우승 기회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들은 잉글랜드 1부리그 18회 우승 경력을 자랑하는 명문 구단이니만큼 프리미어리그 출범(1992년) 이후로도 줄곧 상위권에서 경쟁을 펼쳐왔다. 28년간 부진하다고 평가받던 시절에도 8위 밖을 벗어난 적이 없다.
1992년 이후 가장 우승에 근접했던 시즌은 2001-2002시즌이다. 1998년 팀 지휘봉을 잡은 제라드 울리에 감독은 부임 3년 만에 팀을 우승 경쟁으로 이끌었다. 제이미 캐러거, 스티븐 제라드, 마이클 오언 등 현 시대 축구팬들에게도 익숙한 스타들이 팀의 주축 선수로 올라선 시기였다. 특히 오언은 2001년 축구선수로서 최고 영예인 ‘발롱도르’ 수상 이후 이 시즌 29경기에서 19골을 기록했다.
이들의 앞길을 막은 팀은 아스널이었다. 아르센 벵거 감독이 이끄는 아스널은 시즌 3패만 기록하는 강력함을 보이며 우승컵을 차지했다. 준우승팀 리버풀은 승점 7점이 모자랐다. 리버풀은 2002-2003시즌에도 한때 리그 1위로 치고 나가기도 했지만 그 기세를 시즌 끝까지 이어나가지 못한 채 5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2008-2009시즌에도 리버풀은 우승에 근접했다. 사비 알론소,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가 지키는 중원은 단단함을 자랑했다. 공격은 제라드(16골)와 페르난도 토레스(14골)가 이끌었다. 리버풀은 이 시즌 가장 많은 득점(77골)을 기록한 팀이었다. 그럼에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승점 4점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준우승에 머물렀다.
더욱 극적인 시즌은 2013-2014시즌이었다. 이 시즌 역시 리버풀은 S&S 콤비로 불리던 데니스 수아레스(31골, 득점 1위), 다니엘 스터리지(21골, 득점 2위)가 이끄는 공격적인 팀이었다. 리그 막판까지도 우승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었다. 자력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리그 36라운드 첼시전, 수비진에서 결정적 실책이 발목을 잡았다. 이 경기에서 1패를 떠안은 리버풀은 맨체스터 시티에 역전 우승을 허용했다. 실책의 주인공이 팀의 상징 제라드였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직전 시즌인 2018-2019시즌에도 리버풀은 준우승의 아쉬움을 되풀이했다. 어느 때보다 강력한 모습을 보였기에 아쉬움이 더했다. 이들은 2019년 1월 3일 이후 시즌을 마무리할 때까지 패배를 잊었다. 마지막 9경기에서는 무승부조차 없이 전승을 거뒀다. 리그 종료 시점, 이들의 승점은 97점(30승 7무 1패)이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우승을 하고도 남을 성적이었다. 하지만 맨시티가 승점 1점차로 또 다시 이들을 넘어섰다.
리버풀에서 가장 사랑받은 선수였던 페르난도 토레스는 갑작스러운 이적으로 팬들이 가장 미워하는 선수가 됐다. 사진=연합뉴스
우승 문턱에서 넘어지던 리버풀은 이후 가슴 아픈 작별마저 겪어야 했다. 이어진 리그 우승 좌절에 팀을 이끌던 주요 선수들이 우승컵을 찾아 팀을 떠났기 때문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리버풀을 상징하던 선수는 ‘원더보이’ 마이클 오언이었다. 리버풀에서만 297경기에 나서 158골을 넣었다. 구단 유스 출신이었기에 팬들의 사랑은 더 깊었다. 하지만 2004년, “우승 트로피를 원한다”며 레알 마드리드로 향했다. 깊었던 사랑만큼 팬들의 배신감도 컸다.
오언의 이탈 이후 공격진 구성에 어려움을 겪던 리버풀의 갈증을 해소한 인물은 페르난도 토레스(142경기 82골)였다. 토레스는 구단을 향한 충성심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고 다른 구단의 관심 속에서도 팀에 남겠다는 발언으로 팬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2011년 겨울 이적 시장 마지막 날, 토레스는 급작스럽게 리그 내 경쟁 구단 첼시로 이적했다. 촉박한 이적 마감 시한에 헬리콥터까지 동원됐다. 이 같은 소식에 리버풀 팬들은 토레스의 유니폼을 불태우며 분노했다.
토레스는 5000만 파운드(약 755억 원, 당시 잉글랜드 최고 기록)이라는 거액의 이적료를 남겼다. 이 돈으로 리버풀은 수아레스라는 또 다른 월드클래스 공격수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133경기에서 82골 47도움을 기록해 선배들(오언, 토레스)보다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그의 리버풀 생활도 오래 가지 않았다. 우승을 밥 먹듯 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부름을 받고 3년 만에 떠났다. 이후로도 라힘 스털링, 필리페 쿠티뉴 등 리버풀의 에이스 이탈 잔혹사는 이어졌다. 현대 축구에서 구단간 선수 거래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리버풀의 경우 떠난 선수들의 영향력이 막대했기에 전력상 공백과 팬들의 아픔은 더했다.
2019-2020시즌, 리버풀은 리그에서 믿기 어려운 성적으로 그간의 불운과 아픔을 씻어내는 듯했다. 경쟁자들이 추격을 넘보기도 어려울 정도의 독주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장애물(코로나19)에 발목이 잡혔다. 불과 ‘매직넘버 2(2승만 거두면 우승 확정)’를 남겨둔 상황에서 리그 재개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중앙대난안전대책본부 자료에 따르면 5월 8일 오전 9시 기준 영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전일 대비 5614명 증가했다. 과연 리버풀이 영국 내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고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