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방송사들은 ‘미스터트롯’이 발굴한 스타들을 앞 다투어 섭외하고, 유명 트로트 가수들을 앞세운 트로트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격으로 론칭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트로트 콘텐츠에 또 다시 대중이 금세 싫증을 느끼게 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스터트롯’ 7인방이 출연한 5월 9일자 종합편성채널 JTBC ‘아는 형님’은 전국 시청률 15.5%(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급기야 JTBC는 7인방이 출연한 ‘아는 형님’을 무려 3주간에 걸쳐 편성하기로 결정했다. 사진=JTBC ‘아는 형님’ 홈페이지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제발 좀 거기서 나와!
‘미스터트롯’에서 준우승 격인 선(善)을 차지한 가수 영탁의 노래 중 ‘니가 왜 거기서 나와’가 있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마주쳤을 때 나오는 반응이다. 이는 요즘 ‘미스터트롯’의 톱7인 임영웅 영탁 이찬원 김호중 정동원 김희재 장민호에게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미스터트롯’은 끝났지만 이들은 방송사 간 장벽을 허물며 ‘섭외 1순위’로 자리매김했다. 오히려 ‘미스터트롯’이 끝났기에 이들의 활동 영역은 더욱 자유롭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지나는 자리마다 ‘신기록’이라는 인증마크가 달린다는 것이다.
7인방이 출연한 5월 9일자 종합편성채널 JTBC ‘아는 형님’은 전국 시청률 15.5%(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직전 회차 시청률이 7.9%였고 통상 5∼6% 수준임을 고려할 때, ‘트롯맨 효과’를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수치는 2015년 ‘아는 형님’이 론칭된 이후 최고 성적이다. 급기야 JTBC는 7인방이 출연한 ‘아는 형님’을 무려 3주간에 걸쳐 편성하기로 결정했다.
JTBC는 ‘아는 형님’ 이전에도 이들로 인한 효과를 톡톡히 본 바 있다. 5% 안팎이던 ‘뭉쳐야 찬다’의 시청률은 ‘미스터트롯’ 멤버들이 출격하자 10.5∼10.8%로 껑충 뛰었다. 1∼2% 수준이었던 ‘77억의 사랑’ 역시 3.8%로 론칭 후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지상파도 예외는 아니다. MBC ‘라디오스타’는 4월 임영웅·영탁·이찬원·장민호 등 4명을 초대했다. 2주에 걸쳐 편성된 그들의 출연 분량의 시청률은 10.0∼10.6%였다. ‘라디오스타’의 시청률이 4∼5%를 전전하던 것을 고려하면, 트롯맨들이 5%가량의 시청률을 몰고 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대 시청률에 머물던 ‘끼리끼리’ 역시 2.8%로 치솟았다.
과거 오디션 프로그램이 배출한 스타들은 타 방송사들의 ‘기피 1순위’였다. 예를 들어 Mnet ‘슈퍼스타 K’ 출신 가수들이 지상파에 입성하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최근에도 Mnet ‘프로듀스 101’ 시리즈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아이돌 그룹의 지상파 활동에 제동이 걸린 적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SBS ‘K팝 스타’에 등장했던 이들도 다른 방송사의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미스터트롯’은 이런 금기를 깨버렸다. 이에 앞서 ‘미스트롯’의 우승자인 송가인 역시 지난해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각 방송사를 종횡무진 누볐다. 이는 다채널 시대가 가져온 변화라 할 수 있다. 한 지상파 예능국 PD는 “유튜브, 넷플릭스와 같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업체가 기성 매체 못지않은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지상파, 케이블, 종합편성채널끼리 출혈 경쟁을 벌이는 것 자체가 의미 없어졌다”며 “요즘은 화제를 모으고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이슈가 되는 인물을 무조건 먼저 섭외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3월 4일 첫 삽을 뜬 SBS ‘트롯신이 떴다’는 방송 초반 15.9%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이후 내리막을 걷고 있다. 사진=SBS ‘트롯신이 떴다’ 홈페이지
#채널을 돌려도 트로트, 거품은 없나?
트로트가 방송가의 ‘대세’ 콘텐츠로 자리매김하며 유사 프로그램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SBS는 이미 가수 남진, 진성, 주현미, 장윤정 등이 출연하는 ‘트롯신이 떴다’를 방송 중이다. KBS는 송가인, 정미애, 홍자 등 ‘미스트롯’의 주역들이 소속된 연예기획사와 손잡고 전국 단위 오디션 프로그램인 ‘트롯전국체전’을 론칭한다. 이 외에도 MBC는 올해 하반기 대국민 트로트 대전을 표방하는 ‘트로트의 민족’(가제)을 선보인다. 지역 방송 네트워크를 활용한 지역별 예심을 진행할 예정인 MBC는 “전국 팔도에서 트로트를 가장 잘 부르는 ‘진짜’ 트로트 왕을 뽑는 버라이어티 ‘쇼바이벌’”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MBN ‘보이스트롯’, SBS Plus ‘내게 ON 트롯’ 등도 준비되고 있다.
하지만 차별화 없는 트로트 예능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회의적이다. 유명한 트로트 가수는 한정돼 있기 때문에 그들을 섭외해 비슷한 이야기를 재탕하며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재미가 없으면 채널은 여지없이 돌아간다.
그 예로, 지난 3월 4일 첫 삽을 뜬 SBS ‘트롯신이 떴다’는 방송 초반 15.9%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이후 내리막을 걷고 있다. 5월 6일 전파를 탄 9회는 9.5%로 방송 시작 이후 최저 시청률에 머물렀다. 익명을 요구한 중견 가요기획사 대표는 “이 수치 역시 타 예능 프로그램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라 트로트의 유통기한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의미”라면서도 “하지만 각 방송사가 또 다시 비슷한 톤의 트로트 예능을 쏟아낸다면 앞선 오디션 프로그램이 그랬듯 트로트 예능 역시 고사되는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스터트롯’ 출연진을 활용해 자기복제예능을 선보이고 있는 TV조선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이들이 출연하는 TV조선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사랑의 콜센타’의 시청률은 20∼23%로 범접하기 힘든 수준이다. 하지만 TV조선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13일부터는 임영웅 영탁 이찬원 장민호가 참여하고 방송인 붐이 진행을 맡는 ‘뽕숭아학당’을 시작한다. 형식은 다르지만, 결국은 트로트 예능이라는 범주 안에서 굴리는 다람쥐 쳇바퀴라 볼 수 있다. ‘미스터트롯’의 주역들이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는 신인이지만, 활동 기간이 짧아 아직은 밑천이 많지 않은 이들이 가진 소재가 고갈된다면 인기 하락 역시 막기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