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흥국생명이 위성호 전 신한은행장 영입 사실을 공개하자 금융권이 술렁였다. 국내 1, 2위를 다투는 은행장 출신이 중소형 보험사에 둥지를 틀어 의외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위 전 행장은 2019년 3월 신한은행장에서 물러나 1년 임기의 은행 고문을 지낸 뒤로 별다른 행보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흥국생명은 위 전 행장이 경영자로 오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금융권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만큼 그룹 금융사업과 관련해 중장기적인 자문을 구하기 위해 영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가 맡은 역할은 단순 자문에만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태광그룹은 금융계열사들의 업무 협의체인 ‘미래경영협의회’를 금융 사업부문에 신설했는데, 초대 의장을 위 전 행장에게 맡겼다. 위 전 행장(이하 위 부회장)의 공식 직책인 ‘흥국생명 부회장’ 직함도 2008년 유석기 흥국생명 전 대표이사 부회장이 사퇴한 지 12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선 앞으로 위 부회장이 태광그룹 금융계열사 사업 전반을 전담하고 주요 의사결정을 맡게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태광그룹 금융계열사는 흥국생명과 흥국화재, 흥국증권, 흥국자산운용, 고려저축은행, 예가람저축은행, 총 6곳이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최대 경쟁자였던 위성호 전 신한은행장(사진)이 최근 태광그룹 금융계열사 부회장에 선임되면서 금융권이 술렁였다. 사진=임준선 기자
#위성호 부회장은 누구?
위성호 부회장은 신한금융지주에서만 35년을 근무한 정통 ‘신한맨’이다. 신한지주 내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1985년 신한은행에 입행한 이후 주로 전략, 기획 부문에 몸담은 ‘전략통’으로 평가받는다. 본점 핵심부서와 신한금융지주 경영관리담당 부사장을 거쳐 신한금융지주를 이끄는 핵심 계열사인 신한카드 사장, 신한은행장 등을 차례로 지냈다. 그가 못 오른 곳은 지주 회장 자리 단 한 곳뿐이다.
위성호 부회장은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두고 총 세 차례 맞붙었다. 2015년 신한은행장, 2017년과 2019년엔 신한금융지주 회장 자리를 두고 경쟁했는데 조 회장이 모두 승리했다. 2015년과 2017년 당시 위 부회장은 ‘선배’ 조 회장이 먼저 앞서가는 게 순리라는 취지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지만 2018년부터 상황이 급반전됐다. 같은 연말 신한금융 계열사 인사에서 은행장 임기 3개월을 남기고 경질됐고 당시 위 은행장이 격앙된 반응을 보이면서 대립했다.
당시 신한금융지주는 11개 계열사의 CEO 7명을 바꿨다. 이전까지만 해도 신한금융지주 계열사 CEO들은 일명 ‘2+1’ 원칙에 따라 임기가 보장돼 왔던 것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인사였다. 조용병 회장은 인사를 단행하면서 ‘세대교체’를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 위성호 부회장은 첫 2년간의 임기를 채 마치지 않았고 성과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여기에 교체 통보도 인사 당일에서야 받게 되자 위 부회장이 곧바로 공식석상에서 “신한은 5개 주요 자회사 CEO들이 지주 회장 후보군으로 육성되고 있는데, 이번 인사로 회장 후보 5명 중에 4명이 퇴출됐다”며 불만을 표했다. 사실상 “조 회장이 2019년 지주 회장 경선을 앞두고 경쟁자들을 밀어냈다”는 내용이라 갈등이 극에 달했다.
금융권에선 당시 인사를 두고 의견이 여전히 엇갈린다. 인사에 앞서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남산 3억 원 사건’의 추가 수사를 검찰에 권고한 것을 계기로, 조 회장이 신한금융지주의 최대 흑역사로 꼽히는 ‘신한사태’ 꼬리표와 오랜 경쟁자를 동시에 떼어내려 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남산 3억 원 의혹은 2010년 ‘신한사태’ 때 불거진 문제다. 2008년 이백순 전 은행장이 라응찬 전 지주 회장의 지시로 비자금 3억 원을 이명박 대통령 형인 이상득 전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위 부회장은 신한사태 때 홍보임원을 맡으면서 대표적인 ‘라응찬계’ 인물로 분류돼 왔다. 그동안 그가 승승장구한 배경에 빠지지 않았던 게 ‘라응찬’이라는 이름이었다. 인사 단행 이후 위 부회장은 남산 3억 원 사건에 연루돼 있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2019년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반대로 조 회장의 판단이 ‘시대 흐름’에 맞았다는 분석도 있다. 당시 신한금융은 고질적인 인사 정체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최대 경쟁자인 KB금융그룹을 비롯한 다른 금융사들 역시 임원들의 나이를 대폭 낮춰 세대교체를 진행하고 있었다. 시기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과감하고 동시에 적절한 인사였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경질 이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사실상 ‘외부인’이 된 위 부회장은 ‘법률 리스크’를 털어내고 2019년 말 다시 지주 회장직에 도전했지만 또 고배를 마셨다.
위성호 전 신한은행장이 태광그룹 금융계열사 흥국생명 부회장으로 ‘깜짝’ 이적했다. 흥국생명 본사(왼쪽)와 신한은행 본점 전경. 사진=일요신문DB
#위 부회장-태광그룹의 ‘윈윈’ 전략
위 부회장은 신한금융 ‘서열 2위’로서는 갖은 구설에 시달렸지만 성과 측면에선 높은 평가를 받는다. 신한카드 사장 재임 시절엔 줄곧 업계 1위를 수성했다. 영업수익 4조 원대를 꾸준히 지키며 순이익을 끌어올렸다. 현재 신한은행의 주요 경영전략인 디지털 전환 작업은 위 부회장의 은행장 재임 시절부터 추진됐다. 신한은행의 모바일 플랫폼 ‘쏠(SOL)’은 위 부회장이 신한은행장 시절 디지털 금융혁신을 주문한 뒤 나온 첫 결과물이다. 우리은행이 무려 104년간 지켜오던 서울시 시금고 ‘금고지기’ 자리를 처음으로 가져온 것도 위 부회장이 은행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의 일이다.
태광그룹 금융 계열사들은 위 부회장에게 신한금융 재직 당시 보인 역량을 기대하고 있다. 흥국생명 공시를 보면, 지난해 당기순이익과 지급여력비율 등이 늘었지만 운용자산 이익률과 건전성, 보험손익 등은 악화됐다. 올해는 보험업계 업황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전망이 어둡다. 올해 경영목표를 신사업 발굴 및 경영성과 강화로 정했는데, 장기적인 측면에서 경영 전반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전략을 추진하는 데에 ‘전문가’인 위 부회장이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금융권 일각에선 위 부회장 선임 배경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에서 비롯된 오너리스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방면에서 네트워크를 가진 위 부회장을 ‘모셨다’는 내용이다. 이호진 전 회장은 400억 원대 횡령, 배임 등 경영비리 혐의를 받고 재판에 넘겨져 징역 3년의 실형이 확정됐고,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2019년 4월엔 선대 회장으로부터 상속 받은 차명 주식 일부를 실명 전환하지 못했다고 금융당국에 자진신고했는데, 조사에 나선 금융감독원은 정기보고서상 차명주식을 누락하거나 명의주주 소유로 거짓 기재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위 부회장 입장에선 ‘못 다 이룬’ 신한금융지주 회장직 도전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신한금융을 비롯한 국내 주요 금융지주들은 최근 수년 사이 은행 의존 비중을 낮추고 비은행 사업 부문 강화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위 부회장은 신한금융 재직 시절 보험 분야는 경험해보지 못했다. 흥국생명은 물론 태광그룹 금융계열사 전반에서 성과를 낸다면 자연스럽게 비금융 부문에서의 실력을 검증 받는 모양새가 된다.
그러나 금융권에선 신한금융지주로의 복귀는 어렵다는 해석도 나온다. 신한금융지주와 태광그룹 금융계열사의 몸집 차이부터 크다. 금융지주들이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고 있고 ‘현직 프리미엄’마저 없는 점 역시 위 부회장에겐 불리한 요소다. 2019년 말 지주 회장을 추천한 신한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 대부분의 위원들 임기는 5년가량 남았다. 3년 뒤 위 부회장이 다시 회장직에 도전한다면 다시 회추위 위원들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2019년 면접 당시 위 부회장은 “어떤 위기가 오든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는데, 위원들은 “신한금융의 지향점과는 각도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 금융권 임원은 “위 부회장이 금융권을 완전히 떠나기엔 이른 상황에서 좋은 기회가 온 것”이라며 “다만 이제 막 새로운 곳에 둥지를 튼 만큼 앞으로의 행보와 성과를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