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점은 다른 사건들과 달리 석방에 아무런 조건이 없었다는 것이다.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건임에도 이례적인 석방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물론 의견은 나뉜다. 일부 판사들은 “구속기간 만료 시 무조건적 연장이 아니라, 불구속 상태로 재판하는 게 원칙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비판도 적지 않다. 특히 동양대 PC를 빼돌리고 하드디스크를 교체하려고 했던 ‘증거 인멸’ 시도가 있었던 터라, 재판부 판단이 “정권 관련 인사라는 점에서 특혜를 준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법원이 구속기소 됐던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구속기간 연장을 불허했다. 지난해 10월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을 나설 당시 정 교수 모습. 사진=일요신문DB
#240페이지 검찰 의견서 이긴 6만 명의 탄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구속기간 만료 시점은 5월 10일 자정(11일 0시). 이를 앞두고 검찰은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검찰은 240쪽에 달하는 의견서를 통해 구속 연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4월 29일 열린 공판에서는 정 교수의 구속 연장을 요청하며 혐의의 중대성과 증거인멸 우려도 직접 강조했다. “유사한 사례에 비춰 무거운 형벌이 나올 가능성이 있어 도주 우려가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정 교수 측 변호인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지지자 6만 8000여 명의 연명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하며 불구속 필요성을 강조했다.
법원은 재판부 직권의 ‘보석’ 형태가 아니라, 구속기간을 연장하지 않는 방법으로 정 교수 석방을 결정했다. 정 교수 사건의 재판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임정엽·권성수·김선희 부장판사)는 8일 “피고인이 도주할 가능성이 없고 동양대 표창장 위조 등 추가로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는 혐의사실에 대한 증거조사도 다 진행돼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적음을 고려했다”며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매우 드문 사례라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법원은 통상 정치적인 사건에서 신병을 풀어줄 경우 조건을 붙이는 게 관례다. 특히 재판 진행 과정에서 ‘증인들과의 접촉’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철저하게 제한한다. 그렇기 때문에 법조계는 구속기간 만기에 따른 석방보다는, 보석을 통해 석방 가능성을 점쳤다. 재판부 직권으로 보석을 결정하면,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주거·접견 제한 등 여러 조건을 걸 수 있다.
실제 법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기간 만료 직전 보석을 결정하면서 ‘법원 허가 없이 내곡동 사저 밖으로의 일체 외출 금지’ 및 ‘직계 가족 변호사 외 접촉 금지 조건’을 붙였다. 재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건 관계인 만남을 금지한 것. 역시 보석으로 풀려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해서도 법원은 보석 결정과 함께 주거지 제한, 사건 관계인 등과의 연락 금지 조건을 붙인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기준은 정 교수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자녀 입시 비리, 사모펀드 투자 및 관련 증거인멸 의혹 등 11개 혐의의 핵심 피고인인 정 교수의 석방이 앞으로 재판에 어떤 변수로 떠오를지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법원 내에서는 재판부의 무조건 석방 결정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장기화될 재판 일정 △헌법 원칙 등을 감안할 때 재판부가 의미 있는 결정을 했다는 분석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불구속 재판이 원칙이고, 원칙을 따른 재판이 더 높은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며 “증거 인멸 가능성이 있었던 부분에 대한 재판은 이미 다 끝나지 않았냐. 증거가 충분히 확보됐다면 정당한 피고인 방어권 행사를 위한 구속기간 연장 불허가 맞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한 판사 역시 “아직도 증인신문이 한창 진행 중이고 조 전 장관과 함께 기소된 사건은 재판도 제대로 시작하지 않았다는 기사를 봤다”며 “선고까지 앞으로 3~4개월 이상 더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면 구속기간 연장을 하는 것 역시 너무 정치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 교수는 지난해 11월 11일 기소됐지만 재판 진행 속도는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증거인멸을 우려했던 자녀 학사비리 혐의 심리는 증인신문이 대충 끝났다. 5월 7일 기준으로 딸 조민 씨의 제1저자 논문을 실어줬다가 직권 취소한 대한병리학회 편집위원장, 조 씨와 함께 스펙 품앗이 논란에 휩싸인 고등학교 동창까지 신문을 마쳤다. 재판부는 석방 후 추가 증거인멸 가능성 등을 주목해 “정 교수가 앞으로 증거인멸 혹은 도주를 시도하다가 발각되면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다”는 점을 피고인·변호인·검찰에 충분히 고지해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정경심 교수 구속 직후인 지난해 10월 26일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에서 열린 검찰개혁 및 검경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촉구를 위한 시민참여 문화제. 사진=일요신문DB
#“총선 결과 영향 받았을 것”
그럼에도 비판의 목소리는 나온다. 재판부가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건에서 지나치게 관대하게 석방을 결정했다는 지적이다. 형사재판 경험이 많은 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 사건은 제3자까지 동원해 증거를 인멸하려 했던 시도가 분명하게 있었던 피고인의 사건”이라며 “판사들은 석방 여부를 결정할 때 양형에서 ‘실형’을 선고할지 집행유예나 무죄를 선고할지도 어느 정도 가늠하고 한다. 아무 조건 없는 석방은 재판부가 사건 성격을 고려할 때 ‘치우쳤음’을 과하게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고인의 나이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부분을 지적하는 판사도 있었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석방 여부를 결정할 때 감옥 생활을 견딜 수 있기에 건강이 충분한가도 고려 대상인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고령에 지병도 있지 않느냐”며 “이 전 대통령이나 양 전 대법원장은 보석을 허가하면서 제한을 걸었으면서, 정 교수는 아무 제한 없는 석방을 했기 때문에 더 의아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총선 결과가 이례적인 조건 없는 석방을 만들어냈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대목이다. 최근 법원을 떠난 한 법조인은 “여당의 선거 압승은 물론, 친조국 목소리를 내는 최강욱 열린민주당 비례의원 후보가 당선되지 않았느냐”며 “재판부도 이런 민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석방과 별개로 유무죄 판단 나올 것” 분석도
남은 재판 일정은 △자녀 입시비리 관련 허위 인턴 관련 의혹 △사모펀드 및 증거인멸 교사 등이다. 특히 6월부터 한 달 동안 사모펀드 및 증거인멸 교사 관련 증인신문이 이뤄지는데,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인 조범동 씨도 증인으로 나온다. 그는 사모펀드 의혹의 핵심 증인으로, 그동안 “조 전 장관과 정 교수가 주도했다.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는 진술을 해온 터라 충돌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법원 안팎에서는 석방 여부가 ‘유무죄 판단 심증’에서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입시 비리 관련해서는 유죄로 볼 진술들이 여러 차례 나왔던 점, 또 정 교수 측이 재판부의 질문에 전혀 설명을 못하고 있던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분석이다.
실제 재판부는 7일 열린 공판에서 정 교수에게 “(정 교수는) 표창장 재발급은 다른 동양대 직원이 해줬다고 하는데, 정경심 교수가 쓰던 컴퓨터에서 (총장) 직인 파일이 발견됐다. 왜 정 교수가 쓰던 컴퓨터에 직인 파일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또 정 교수 측 변호인에게는 “아들 수료증 인주는 안 번진다고 했는데 갖고 있느냐”고 물었고, 이에 변호인이 “검찰이 압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검찰이 “압수하지 않았다”고 반박하자 재판부는 “또 잃어버린 것이냐”고 반응했다. 정 교수 측이 딸 조민의 표창장 원본을 검찰과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고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재판부가 납득하지 못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실제로 재판부는 7일 공판 도중 “입시비리 혐의는 증인신문이 몇 명 남았지만 사실 관계 파악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선 서울고등법원 관계자는 “재판 내용은 정확히 모른다”면서도 “언론에 나온 진행 흐름만 볼 때, 정경심 교수가 자녀 입시 비리 가운데 허위 증명서 부분은 무죄를 받기 힘들 것 같다”며 “11개 혐의 중 증거인멸 시도가 가능한 입시비리 관련해서는 유무죄에 대한 확신이 선 점이 오히려 석방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겠느냐”고 진단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