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국회의원들을 기다리는 보좌진들. 사진=박은숙 기자
보좌진은 국회의원의 그림자라 불린다. 국회의원실 실무를 담당하며 입법부 살림꾼 역할을 한다. 국회의원이 내놓는 정책이나 발언의 밑바탕엔 보좌진의 치열한 고민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보좌진 라인업을 구성하는 것은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몫이다.
1990년대 국회에서 보좌관을 지낸 뒤 기업 대관담당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 인사는 “보좌진 구성은 국회의원 4년 임기를 좌우할 중요한 부분”이라면서 “얼마나 괜찮은 보좌진을 구성하느냐에 따라 의원실 전체의 성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180석 공룡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중엔 새 얼굴이 많다.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만 초선 68명을 배출했다. 그만큼 보좌진 수요도 늘어났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검증된 보좌진 수는 한정돼 있다. 그만큼 보좌진을 영입하려는 의원들의 경쟁이 치열하다”면서 “이름이 알려진 보좌진들은 여러 곳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라고 귀띔했다.
국회의원 1석당 보좌진은 총 8명이다. 직급별로는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그리고 6~9급 비서 각각 1명씩이다. 더불어민주당의 현 의석은 128석이다.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석수는 더불어시민당을 합쳐 52석 늘어나게 된다. 산술적으로만 계산하면 보좌진 수가 416명 늘어나는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보좌진 모집 과정에선 새 얼굴뿐 아니라 ‘어제의 적’이었던 미래통합당 출신 보좌진들의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 측은 타당 출신 보좌진 영입에 신중을 기하라는 방침을 하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 사무총장 명의로 공문을 발송하면서 “타당 출신 보좌진 영입에 있어 정체성 검증을 확실히 할 것”을 강조했다.
이런 조치는 미래통합당을 비롯한 범보수 정당 출신 보좌진 유입을 원천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선 당 색과 상관없이 정책·정무적으로 우수한 인재들이 많은데, 채용 과정서 타당 출신을 배척하는 듯한 뉘앙스는 능력 있는 인재들을 끌어모으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미래통합당 의원실 출신 보좌진들은 대규모 실직 위기에 직면했다.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미래통합당 전신)은 국회의원 122명을 배출했다. 20대 국회 막판 들어서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 범보수진영 의석수는 112석으로 줄었다. 21대 총선에서 참패한 미래통합당은 지역구 84곳에서 승리하는 데 그쳤다. 비례 정당 미래한국당은 19석을 확보했다. 기존 미래통합당 의원 중 77명이 방을 빼게 됐다. 600여 명이 넘는 보좌진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국회의사당 전경. 사진=박은숙 기자
특히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서 낙선한 중진 정치인들 보좌진들은 역대급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엔 10년 이상 국회 보좌진으로 잔뼈가 굵은 이들도 적지 않다. 21대 총선에서 낙선한 미래통합당 국회의원실 보좌관은 “여러 곳에 지원을 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베테랑 보좌진들이 ‘자유계약시장’에 타의로 풀렸는데, 갈 수 있는 자리는 한정돼 있다 보니 어느 자리건 경쟁이 극심하다”고 했다.
미래통합당 국회의원실 소속 비서관은 “4급 보좌관 출신들이 5급 비서관으로 급을 낮춰 지원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면서 “기존 비서관 출신들의 경우에도 새롭게 취업할 틈이 상당히 비좁다”고 하소연했다.
한 미래통합당 당직자도 “21대 국회가 개원하고 지역구 초선이나 비례대표 의원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보좌진을 개편할 시기가 올 것”이라면서 “그때 범보수권에서 다시 한번 베테랑 보좌진들의 가치가 각광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베테랑 보좌진들이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지만, 때를 기다리면 다시 한번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올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여권의 압승으로 끝난 21대 총선 결과는 국회의원 보좌진 취업시장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 21대 총선에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해 원외정당으로 밀려난 민생당 국회의원실 보좌진들의 사정은 미래통합당보다 더 열악하다. 민생당 당직자 출신 정치권 관계자는 “민생당 보좌진 출신들은 ‘끈 떨어진 연’ 신세”라면서 “이들은 사실상 개인 능력을 기반으로 각자도생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