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은 지난 8일 18일간의 훈련을 마치고 해병대의 상징인 ‘빨간 명찰’을 달게 됐다. 사진=해병대 페이스북
세계적 스타 반열에 올라선 손흥민이었기에 훈련소 입소는 많은 관심을 받았다. 동료 선수, 유럽 언론은 물론 NBA 스타까지 그의 수료를 환영할 정도였다. 그간 안정환, 박지성, 기성용 등 해외에서 활약하던 많은 스타들이 훈련소를 거쳤지만 이 같은 큰 관심은 이례적이었다. 수료식에서는 157명의 훈련소 동기 중 훈련 평가 1위를 차지하며 ‘필승상’까지 받아 더 큰 갈채를 받았다.
뜨거운 관심과 달리 그의 훈련소 생활 면면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부대에선 주의를 기울였고 입소와 퇴소 과정을 간략하게 줄였다. 손흥민 또한 별도의 행사 없이 위병소를 드나들었다. 부대에서 공개한 일부 사진으로만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연 그의 훈련소 생활은 어땠을까. 일요신문은 손흥민과 같은 소대에 편성돼 그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훈련소 동기와 접촉, 증언을 통해 그의 행적을 알아봤다.
제주에 거주하는 A 씨는 신체검사에서 4급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고 이번 훈련에 참가했다. 입소 전 손흥민과 함께 훈련소 생활을 하게 됐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부터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A 씨는 “굳이 따지자면 축구보다는 다른 스포츠종목을 좋아하지만 손흥민을 좋아하지 않는 대한민국 20대 남성이 얼마나 되겠나. 당연히 기대가 컸다. 낯선 훈련소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손흥민 선수의 존재가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입소 현장부터 손흥민을 ‘영접’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무너져 내렸다. 입소시간(오후 2시)보다 일찍 부대 앞에 도착해 곧장 들어가지 않고 기다렸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손흥민은 차량을 통해 빠르게 위병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A 씨는 손흥민과 같은 소대에 편성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그는 “훈련병들의 번호를 1번부터가 아닌 100번부터 배정했다. 140번 정도까지만 훈련병을 채우고 201번부터 다시 번호를 달았다. 5소대까지 있었는데 200번대는 2소대, 300번대는 3소대로 편성되는 식이었다”고 설명했다.
손흥민이 군사훈련을 받은 해병대 제9여단 훈련소 입구. 손흥민의 입소와 퇴소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사진=김상래 기자
손흥민은 1992년생, 한국식 나이 계산법으로는 올해 29세가 됐다. 대부분 20대 초반 남성들이 몰리는 훈련소에서는 많은 나이였다. A 씨는 “훈련소에서 가장 ‘형’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다른 소대는 모르겠지만 우리 소대에서만큼은 동기들을 편안하게 대했다. 나이가 가장 많았기에 우리를 이끄는 리더십 같은 모습도 보였다”고 설명했다.
여느 단체 생활이 그렇듯, 집단 간 갈등도 있었다. A 씨는 “1소대와 5소대가 감정적으로 부딪히는 일이 있었다. 훈련 대기 중에 조용히 해야 하는데 5소대가 그러지 못했다. 우리가 불만을 가지니까 손흥민 선수가 나서서 조용히 할 것을 요구했다.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같은 1소대원으로서 든든했다”며 웃었다.
그는 손흥민의 존재로 인해 훈련소 생활의 ‘장단점’이 교차했다고도 이야기했다. “‘슈퍼스타’ 손흥민의 존재로 다른 훈련병들은 약간 ‘찬밥 신세’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게 나쁜 의미의 찬밥이 아니다”라면서 “아무래도 조교나 교관들도 사람이다보니 손흥민 선수를 더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훈련 때 손흥민 쪽으로 조교, 교관들이 몰렸다. 우리(손흥민 주변을 제외한 나머지 훈련병)는 훈련을 조금 대충 받아도 지적을 덜 받을 수 있었다(웃음). 훈련 중 휴식 때도 군기를 강조하는데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감독하는 사람(조교 또는 교관)들이 손흥민 쪽으로 몰려가니 우리는 편하게 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처음 만나는 남성 150여 명이 함께하는 훈련소 생활. 당연히 처음엔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A 씨는 “손흥민 선수가 처음엔 좀 차갑게 느껴졌다. 불편한 분위기가 계속되면 어쩌나 걱정도 했었다. 아무래도 군대라는 곳이 억지로 끌려와서 그런지 기분이 좋지 않은 듯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내 경기장에서 보이던 밝은 미소가 돌아왔다고 한다.
“훈련 2주차에 들어서며 많이 내려놓은 것 같았다. 처음 차가웠던 모습과 달리 많이 웃었다. 코로나19 때문에 훈련 기간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마스크를 오래 쓰면 귀 뒤쪽이 아프지 않나. 손흥민 선수는 훈련병들과 그 부분 마스크 고무줄을 잡아 당기면서 장난을 쳤다. 팔각모를 서로 던지기도 했고 배식을 빨리 받으려고 경쟁하기도 했다. 장난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듯 보였다.”
손흥민은 다양한 훈련에 열외 없이 모두 참가해 우수한 성적으로 ‘필승상’을 거머쥐었다. ‘부대에서 신경 써주셔서 덕분에 편하게 훈련소 생활을 했다’는 일부 스포츠 스타들의 증언과는 상반되는 부분이었다.
A 씨 또한 “사격, 각개전투, 총검술, 체조, 행군, 화생방 등 모든 훈련에 손흥민 선수는 빠짐없이 참여했다. 우리는 다들 사회복무요원이니까 그에 대한 정신교육이 많았는데 손흥민 선수는 ‘너희 때문에 나까지 이런 것 해야 하나’는 농담을 하면서도 실제론 진지하게 교육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화생방 훈련에서 가스실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방독면을 쓰는 등 다른 교육은 다 받았지만 교관들이 ‘코로나19 때문에 가스 실습은 안한다’고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A 씨는 3주간의 훈련에서 1위에 등극해 수상을 한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구심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사격에서 모두 명중시킨 것은 맞다. 내가 가까이에서 직접 본 것”이라면서도 “다른 부분은 어떤 기준으로 평가를 하는지 모르겠다. 100점 만점에서 1~2점만 깎였다고 들었다. 총검술 때는 우리 소대가 ‘개판’이라고 많은 지적을 받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손흥민 선수가 전체적으로 잘한 것은 맞다. 훈련병 중 허리, 어깨, 무릎, 발목 등이 아픈 환자가 많다. 손흥민 선수는 너무 건강하니까 훈련을 잘 받았다. 1등 상을 받은 것이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투복에 운동화를 신었던 모습이 포착된 박지성과는 달리 손흥민은 훈련 내내 전투화를 신고 임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2003년 박지성의 훈련소 생활이 담긴 사진에는 그가 얼굴에 위장 크림을 바르고 전투복까지 입었지만 전투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있는 모습이 담겨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발이 재산인 축구선수이기에 불편한 전투화를 신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들이 10여 년이 훌쩍 지난 현재까지도 오가고 있다. 실제 다수의 훈련소에서는 발에 부상이 생기거나 극심한 통증이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일부 인원에게 운동화 착용을 허용한다.
손흥민은 달랐다. 그는 3주 훈련기간 내내 전투복을 입을 때면 항상 전투화도 함께 착용했다. 전투화 대신 활동화를 착용할 수는 있지만 이는 감점 요인이었다. 예외 없는 전투화 착용 또한 손흥민의 1위 등극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손흥민이 나이키 운동화를 착용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A 씨는 “나는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데 소대 동기들이 다들 손흥민 선수가 ‘나이키 운동화’를 신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통상적으로 사회복무요원 훈련 과정의 경우 일괄적으로 활동화를 보급해주는 현역병과 달리 훈련 기간 동안 신을 운동화를 선택할 수 있게 해준다. 자신이 챙겨온 운동화를 신어도 문제될 것이 없다.
A 씨는 “입소 당시 손흥민 선수 매니저가 짐을 부대 측에 전달했다. 그 짐에 운동화가 들어있었던 것 같다”면서 “나갈 때는 조교가 다시 그 짐을 차량에 실었다”고 설명했다. 입소 장면이 포착된 사진에서 손흥민은 별다른 가방이나 짐을 들지 않은 상태였다.
훈련병들의 증언대로 손흥민이 나이키 운동화를 신었다면 이는 극히 보기 드문 광경이 된다. 손흥민은 세계적 스타 지위에 걸맞게 아디다스 글로벌 본사와 후원 계약을 맺고 있다. 이에 그는 평상시에도 아디다스 의류와 신발을 즐겨 착용한다. 그의 아버지 손웅정 씨 또한 아디다스 신발을 신은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손흥민은 훈련소 입소 당시에도 아디다스 제품으로 보이는 운동복 하의, 양말, 신발을 착용했다.
‘슈퍼스타’ 손흥민에게 3주간 무수한 사인 요청도 이어졌다. 앞서 매체를 통해 ‘부대 통제에 따라 분대(훈련병 10명으로 구성)당 1명씩 대표로 손흥민에게 사인 10장씩을 받았다’는 동기의 증언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A 씨는 “다른 소대 훈련병들은 정말 그렇게 했다. 하지만 몇 장 더 받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을 것”이라면서 “같은 1소대 인원들은 친분도 있으니까 틈틈이 더 사인을 받았다. 같은 소대원들에게는 친절하게 웃으며 사인을 해줬다”고 설명했다.
훈련소 생활 3주간 수십 수백 장은 뿌려졌을 사인과 달리 손흥민의 사진은 많이 남겨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훈련병 동기들에게 함께 사진을 찍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A 씨는 “마지막으로 퇴소 직전에 훈련병들이 휴대전화를 돌려받으려 줄을 서 있는 동안 손흥민 선수는 먼저 부대를 빠져 나갔다. 손 선수와 ‘셀카’를 찍을 기대를 하고 있던 훈련병들은 아쉬움이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