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실적이 악화된 포스코가 수익성 향상을 위한 방안으로 물류 통합 자회사 설립계획을 밝혔지만, 관련업계의 강력 반발에 부딪혔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사진=일요신문DB
#실적 악화일로, 꺼내놓은 대응 카드는?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지난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들에게 경영 전망을 담은 주주서한을 보냈다. 최 회장은 서한에서 “생산 관련성이 적은 간접비용의 극한적 절감, 투자 우선순위 조정 등 고강도 대책을 실행해 수익성 방어와 재무건전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포스코의 최근 실적은 크게 악화됐다. 포스코의 지난 1분기 연결기준 매출은 14조 5458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2% 감소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7053억 원, 4347억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0.8%, 45% 줄어들었다. 올해 1분기 실적에 코로나19 영향이 제한적으로 반영된 것을 고려하면 본격적인 실적 하락세는 2분기부터 두드러질 전망이다. 백재승 삼성증권 연구원은 “3월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며 전방 산업 위축이 심화해 올해 1분기 업황 둔화, 2분기 추가 둔화, 3분기 이후 점진적 회복으로 실적 흐름 추정을 바꾼다”고 전했다.
포스코는 실적 악화로 투자 계획을 축소키로 하고 조강 생산량도 줄이기로 했다. 올해 계획했던 연결기준 투자 규모를 기존 6조 원에서 5조 2000억 원으로 축소하고, 생산량은 올해 초 밝혔던 3670만 톤에서 3410만 톤으로 줄였다. 포스코가 조강 생산량을 줄이는 것은 창사 이래 두 번째다. 포스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두 달간 생산량을 57만 톤 줄인 바 있다.
더불어 비용 절감 및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 물류 관련 자회사를 설립키로 했다. 포스코는 지난 5월 12일 보도자료를 통해 그룹사 운송물량의 통합계약과 운영관리를 담당하는 물류통합 법인 ‘포스코GSP’의 연내 출범 계획을 밝혔다. 각종 운송계약이 포스코 내부 여러 부서에 분산돼 있고, 물류기능 또한 포스코인터내셔널‧SNNC‧포스코 강판 등 계열사별로 흩어져 있어 이를 하나의 회사로 통합해 효율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는 것.
다만 포스코는 물류 기능 통합 외에 물류업에 직접적으로 진출할 계획이 없다고 강조했다. 포스코 측은 “관련 업계 일각에서는 포스코 물류통합 법인이 설립되면 해운업, 운송업까지 진출해 사업영역을 침범하고 물류 생태계를 황폐화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며 “해운법에 따라 대량화주가 해상운송사업에 진출하는 것은 엄격히 제한되고 있으며, 포스코는 해운업은 물론 육상운송업에 진출할 계획이 없다”고 설명했다.
#반발의 배경에는 깊은 트라우마가…
포스코가 물류업 진출에 대해 선을 긋고 있는 것은 이미 지난 4월 말 포스코 물류 관련 자회사 설립 소식을 접한 관련 업계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는 지난 4월 28일 ‘해양‧해운‧항만‧물류산업에 50만 해양가족 청원서’를 청와대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국회 등에 제출하고 포스코의 물류 자회사 설립을 반대했다. 이어 지난 5월 7일에는 포스코 회장과 사외이사들에게 건의서를 제출하며 자회사 설립 계획 전면 철회를 요청했다. 해운업계는 오는 19일에도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포스코 물류 자회사 설립이 해운⋅항만⋅물류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할 예정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철강업계가 치열한 생존경쟁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포스코가 신사업 추진으로 관련 업계의 뭇매를 맞고 있다. 포항제철소. 사진=박은숙 기자
관련 업계가 이처럼 강력 반발에 나선 까닭은 포스코 물류 자회사 설립이 결국 해운업이나 물류업 진출로 귀결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 같은 대형화주(대형 생산‧제조업체)가 자체적으로 물류사업에 나설 경우, 기존에 포스코와 거래하던 물류기업들이 일감을 잃을 수밖에 없다. 또 일감 몰아주기로 성장한 포스코 물류 자회사가 시장의 물량을 대거 흡수할 가능성도 있다. 포스코에 따르면 계열사를 포함한 포스코의 물동량은 지난해 기준 약 1억 6000만 톤, 물류비는 약 3조 원 규모다.
더욱이 포스코는 과거 이미 수차례에 걸쳐 해운업 진출을 시도했으나 업계 반발로 무산된 전례가 있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포스코의 전신 포항제철은 1990년 대주상선(거양해운으로 개명)을 설립해 해운업 진출을 노렸으나 같은 해 대량화주의 해상화물운송법을 규제하는 법률안이 개정되면서 결국 1995년 거양해운을 매각했다. 이후에도 포스코는 대한통운 인수, 대우로지스틱스 지분 인수 등을 통해 해운업 진출을 시도했으나 개정안과 업계 반발로 무산됐다.
관련 업계는 포스코가 자회사를 통해 물류 주선을 시작으로 철강제품 수송에서 점차 제철원료 수송까지 확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선박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은 주선만 한다지만 추후 상황에 따라 사업을 문어발식으로 확장해 해운‧물류업을 직접 할 가능성이 있다”며 “포스코가 전례가 돼 다른 대형화주들도 물류 주선회사를 설립하게 되면 국내 해운‧물류업계 생태계가 파괴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전했다.
정부가 2014년 한시적으로 대형화주가 구조조정 중인 해운사를 인수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던 경험도 최근 해운업계가 포스코의 계획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배경 중 하나다. 당시 법정관리에 있던 대우로지스틱스와 팬오션 등 거대 해운사가 매물로 나오던 시기에 규제가 완화되면서 사실상 해운법 관련 조항이 유명무실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물류기업 ‘패싱’하고 직접 선수로?
포스코는 물류 관련 자회사를 설립해도 기존 업체들과의 거래 구조에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포스코의 설명대로 진행이 되더라도 관련 업계의 우려는 여전하다. 기존 물류기업-개인차주 간 계약을 유지한다고 해도 포스코 물류통합 자회사가 중간 관리회사 역할을 하며 사실상 ‘통행세’를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포스코가 동반성장을 위해 화물차주 대상으로 운송 직거래 계약을 도입한다고 밝혀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는 ‘기존 물류 파트너사들과의 계약 및 거래 구조에는 변함이 없다’는 해명과 상반된다.
포스코는 화물차주가 직접 입찰에 참여하고, 화물운송, 운송료 정산까지 할 수 있는 모바일 플랫폼을 구축할 예정이다. 포스코는 물류 통합법인 설립에 앞서 포항과 광양제철소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육상 운송에 직접 참여할 의향이 있는 개인 화물차주 모집을 시작했다. 오는 6월부터 화물차주 계약‧운송을 시범 운영해 개선사항 등을 법인 설립 시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포스코가 화물차주를 모집하고 나서면서 업계의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포스코 물류 자회사가 기존 육상 물류 업체들이 해오던 업무를 대신하며 사실상 2자 물류(화주가 분사화를 통해 물류 자회사에 의해 물류 서비스를 받는 단계)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김형태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명예연구위원은 “지금까지 포스코에서 대형 물류기업과 계약을 하고 해당 물류기업은 개인차주와 거래하는 방식이었는데, 이제 포스코가 그 물류기업 역할을 직접 하며 물류 주선업 형태를 취하겠다는 것”이라며 “이 경우 물류기업들은 일감을 잃게 된다”고 전했다. 이어 “반면 포스코가 밝힌 것처럼 계약 및 거래 구조에는 변함이 없다면, 기존 거래구조에서 유통 단계에 관리 조직만 하나 더 추가돼 중간상인이 늘어나는 것에 그쳐 하청 물류기업들의 이익만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포스코 관계자는 “관련 업계가 우려하는 해운‧물류업 진출이나 ‘중간 통행료’ 문제는 전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운송 직계약 계약 시범운영 계획과 ‘기존 거래는 유지될 것’이라는 설명이 상반된다는 지적에 대해선 “연간 운송사들과 계약하는 것 이외에 수시로 입찰할 수 있는 물량이 있다. 그 물량에 대해 일부만 직계약 하는 것“이라며 ”개인 화물차주와의 상생 취지로 하는 것이며, 아직 구체적인 숫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화물 전체 중 극히 적은 비중을 차지해 기존 계약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