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4월 16일 오전 국회에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미래통합당은 당초 5월 11일에서 15일 사이에 당선자 총회를 열고 ‘김종인 비대위’에 대한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주호영 신임 원내대표 부친상으로 잠시 연기됐다. 이제껏 지속된 진통이 잠시의 휴지기를 갖게 된 셈이다.
김종인 비대위 기한을 두고 미래통합당은 공방을 벌여왔다. 김 전 위원장이 원했던 것으로 알려진 기한은 2021년 4월이었다. 대선을 1년 앞둔 기간까지 전권을 달라는 요청이었다. 이에 반해 홍준표 당선자를 비롯한 미래통합당 내 자강 세력은 전당대회 직전까지만 하는 2020년 8월 기한론을 내세웠다. 미래통합당 당헌·당규대로 8월까지만 비대위를 운영한 뒤 전당대회를 치러 차기 지도부를 뽑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갈등이 지속되자 일각에서는 2020년 연말 기한론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5월 8일 선출된 주호영 신임 원내대표는 “당선자와 김종인 내정자 사이에서 어느 정도 기한이면 서로 받아들일지 조율해 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종인 전 위원장이 비대위 기한 관련 요구 조건을 절대 바꾸지 않을 거라는 게 주변 예측이다. 김 전 위원장은 최근 “이 문제는 협상을 할 사안이 아니다. 2022년 3월 대선이 한국의 미래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다음 대선에서 미래통합당이 지면 한국은 선진국과 경쟁하는 대열에서 이탈해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번 했다고 전해졌다.
그렇다면 김종인 전 위원장이 구상하는 미래통합당의 향후 그림은 어떻게 될까. 우선 김 전 위원장은 개헌 찬성파다. 김 전 위원장은 대통령제 대신 내각제로 가는 방향이 맞다는 생각을 고수해 왔다. 영국 등 유럽 정치 선진국이 내각제를 선택한 건 왕에서 의회로 권력이 차츰 이양된 것이라고 봤다. 왕의 대체재인 대통령을 내세워 정부를 통치하는 것보다 내각제가 민주주의에 가까워지는 방식이라고 판단한다고 알려졌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대통령 중임제를 강하게 반대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평소 그는 “대통령 되고 3년 지난 시점에서 욕 안 먹은 대통령은 없었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중임제가 실현되면 집권 2년 차 때부터 대통령이 정부 예산을 활용한 선거 운동에 돌입할 거라는 게 평소 김 전 위원장 지론이라고 한다.
내각제 전환을 향한 개헌은 미래통합당 내부에서 바른정당계에게 힘을 실어주는 논리라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김종인 전 위원장은 평소 이들을 겨냥한 듯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잘잘못을 떠나 배신자는 정치를 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번 했었다. 특정 세력에 손을 들어주기보다는 순수하게 내각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김 전 위원장 목표라는 게 설득력을 얻는다.
김종인 전 위원장의 1970년대생 기수론을 두고 또 다른 바른정당계 김세연 의원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는 김 전 위원장 평소 생각과 온도 차가 크다. 최근 김세연 의원은 기본소득은 물론 기본자산도 논의 대상이라고 해서 화제를 모았는데 이에 대해 김 전 위원장은 “기본소득의 개념조차 제대로 아는 정치인이 한 명도 없다”는 식으로 간접 비판했다고 전해진다.
김종인 비대위가 미래통합당 내에 정치 사관학교를 마련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평소 김 전 위원장은 1970년 이후 출생자 여럿을 직접 교육하고 외국 의회로 유학도 보내는 정치 학교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여러 번 했다고 알려졌다. 특히 김 전 위원장은 국회의원 대다수를 생계형 정치인으로 분류하고 기초가 탄탄한 젊은 경제 정치인 없이는 다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평소 생각을 최근 주변에 공유했다고 한다. 세계 여러 국가의 흥망성쇠 관련 이야기가 교육의 주된 중심이 될 거라는 게 주변인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특히 김종인 전 위원장은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돼야 좌든 우든 말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김 전 위원장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 평가를 매우 박하게 한다고 전해졌다. 어느 정도 풍족한 나라에서 초등학생 무상 급식 집행 여부를 가지고 정치 생명을 거는 건 이미 변해버린 민심을 읽지 못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이었다고 알려졌다.
5월 12일 주호영 원내대표는 “5·18을 앞두고 광주 방문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이 방문이 김종인 전 위원장과의 물밑 호흡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평소 김 전 위원장은 미래통합당이 앞으로 나아가려면 5·18과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을 자주 이야기했다고 한다.
김종인 비대위 찬성 세력은 이와 같은 혁신이 없으면 다음 대선에 희망이 없다고 본다. 미래통합당 소속 한 주요 당직자는 “홍준표 당선자를 중심으로 자강론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부터 지금까지 미래통합당 지지율은 지난 대선 때 홍 당선자가 거둔 득표율 24%에서 변화가 거의 없었다. 이 상태라면 다음 대선에서도 24% 수준을 벗어날 수 없는 게 자명한 현실이다. 이념이든 뭐든 일단 이기려면 혁신을 택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다만, 이런 김종인 비대위 밑그림이 실현되는 데는 큰 장벽이 있다. 21대 미래통합당 당권 세력 대부분이 영남권에 집중된 탓이다. 영남권 중진들 상당수는 김종인 비대위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다. 비례대표를 제외하고 미래통합당 입당이 유력한 무소속 의원 2명을 포함 21대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미래통합당 당선자 88명 가운데 영남권 인사만 58명이다. 게다가 비영남 친박계까지 합하면 김종인 전 위원장이 넘어야 할 산은 더 높아진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