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 연예인 홍석천은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 시작부터 네티즌들의 공격 대상이 됐다. 사진=홍석천 인스타그램
가장 먼저 집중포화를 받은 인물은 방송인 홍석천(49)이다. 동성애자 연예인인 그는 이번 코로나19의 대거 확산이 동성애자 클럽에서 촉발됐다는 첫 보도가 나오면서 네티즌들의 공격 대상이 됐다. 네티즌들은 홍석천의 인스타그램에 찾아가 “동성애자로서 이번 사태에 하실 말씀이 없냐” “이제까지 신천지, 개신교 신자, 정부를 상대로 일침을 해왔으니 본인이 속한 그룹에 대해서는 더 신랄한 비판을 바란다”며 조롱의 의미를 담은 글을 달았다.
게시물에 자신을 비난하는 글들이 올라오자 홍석천은 사태 발생 후 엿새 만인 지난 12일 코로나19 검사를 피하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호소글을 올렸다. 그는 “지금은 용기를 내야 할 때입니다”라며 “오랫동안 이태원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번 일이 참 안타깝고 걱정스러운데, 무엇보다 아직도 검진을 받지 않고 연락이 안 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가장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물론 ‘아웃팅(성소수자의 성적 정체성이 타인에 의해 공개되는 것)’에 대한 걱정이 크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도 본인과 가족, 그리고 사회의 건강과 안전이 우선입니다”라며 “방역 당국과 의료진, 그리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쏟은 그동안의 힘과 노력이 헛되지 않게 지금 당장 용기를 내서 검사에 임하길 간곡히 권합니다”라고 호소했다.
가수 조권은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클럽을 방문했다는 루머에 시달렸다. 사진=조권 인스타그램 캡처
홍석천의 글이 올라오자 대중의 시선은 다른 연예인들에 향했다. 이번 사태와 직간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앞서 각종 사회적 이슈에 꾸준히 소신 발언을 해 온 연예인들이 이번 일에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페미니즘 이슈에서 남성들의 ‘빛’이 됐던 배우 유아인(34)과 성소수자 사이에서 비교적 친근한 이미지였던 가수 조권(31)이 다음 타깃이 됐다. 특히 조권에 대해서는 더욱 구체적인 공격이 가해지기도 했다.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 동성애자 클럽에 조권이 있었다는 루머 탓이었다.
당시 SNS 등지에서는 “이태원 동성애자 클럽에 걸그룹 멤버와 보이그룹 멤버가 있는 걸 봤다”는 글이 기정사실처럼 유포됐다. 이 가운데 실제로 걸그룹 카라의 멤버 박규리가 해당 클럽을 출입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남은 ‘보이그룹 멤버’에도 의혹이 줄을 이었다. 네티즌들은 “조권이 그 클럽에 있었다”는 SNS발 루머를 믿고 그의 인스타그램에 “지난주 클럽 간 거나 해명하라”는 글을 달며 공격에 나섰다.
이에 지난 11일 조권이 직접 “미안한데 안 갔거든요? 님 고소각. 명예훼손으로 님 인스타 캡처, 추적 사이버수사대로 넘깁니다. 보자보자 하니 보자기로 보임? 내가 우스워요?”라고 답글을 달아 반박했다. 이후에도 “요 근래 자주 (댓글을) 받아주니 별별 해명을 다 해달라네. 답글 달아주니 좋으세요? (그날) ‘부부의 세계’ 봤어요, 집에서”라며 루머를 일축했다.
트위터를 중심으로 유명 보이그룹의 멤버들이 이태원 클럽에서 목격됐다는 루머가 유포됐다. 이후 첫 유포자는 자필 사과문을 올린 뒤 계정을 삭제하고 잠적한 상태다. 사진=트위터 캡처
네티즌들의 공격은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SNS에서 떠돌고 있는 또 다른 루머의 주인공들이 타깃이 됐다. 한 트위터리안은 트위터에서 보이그룹 멤버 A 씨와 B 씨가 이태원의 클럽과 바에서 목격됐다는 글을 올렸다. SNS와 각종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멤버의 소속 그룹과 이름이 알려졌고 해당 소속사에도 문의가 잇달았다.
한 소속사에서 “멤버의 개인 사생활이라 알려줄 수 없다”고 답변한 것을 두고도 “만일 안 갔으면 안 갔다고 얘기했을 텐데 숨기는 것을 보면 간 것이 맞다”는 주장까지 득세하기 시작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 멤버들의 이름을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에 올려 소속사의 공식 입장과 사과를 이끌어 내려고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는 첫 의혹을 제기한 트위터리안의 ‘조작’으로 드러났다. 문제가 커지자 이 트위터리안은 자필 사과문을 올려 “5월 9일 트위터에서 보이그룹 멤버의 이태원 클럽 루머에 관한 이야기를 보고 사진과 함께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글을 올리고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선동질해 많은 팬들에게 피해를 끼쳤고 첨부한 사진 또한 보이그룹 멤버와 전혀 상관이 없는 사진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사과문을 올린 뒤 계정을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확진환자가 다녀간 이태원 소재 클럽 ‘킹클럽’이 폐쇄돼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이태원 클럽과 관련해 과열되는 분위기를 놓고 연예가에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현재까지 업소명이 알려진 클럽 가운데 연예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 다수 있어 이전에 해당 업소를 찾았던 연예인들까지 곤욕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언급된 연예인 가운데 한 명이 속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대중이 공격할 거리를 찾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소 느슨해진 상황이었다곤 해도 연예계 관계자들은 대부분 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5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다들 이제부터는 조금씩 활동을 해 나갈 수 있을 거란 기대에 차 있었다”며 “한 명만 감염돼도 전체가 올스톱될 판인데 누가 생각 없이 감염 위험성이 큰 곳에 놀러 다녔겠나. 일반 스태프도 조심하는데 하물며 연예인이 말이다”라며 억울함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일부 업소 중에 연예인들이 자주 가기도 하고, 점주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곳도 포함된 게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일이고 지금은 다들 조심하고 있는데 루머까지 퍼지면서 연예인들이 너무 큰 고통을 받고 있다. 민감한 사회적 분위기를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연예인들이 희생양이 돼선 안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