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MBC 시리즈M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났던 시민들의 항쟁은 오랫동안 ‘광주사태’로 불렸다.
광주 시민들은 ‘폭도’로 매도되었고 진실은 보도되지 않았다. 이제 40년이 흘러 소위 ‘광주사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역사적 자리매김을 했다.
그러나 아직 5.18 광주민주화운동에는 해결되지 못한 과제들이 남아 있다. 집단발포 명령 책임자의 문제, 헬기 사격 문제, 희생자 시신 암매장 문제 등 제대로 밝혀져야 할 점들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조사하는 과정이 지금도 진행 중이다.
MBC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하여 제작한 특집 다큐멘터리 ‘나는 기억한다’는 논쟁에 직접 뛰어드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 대신 이 다큐멘터리는 40년 전 그날로 돌아가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에 주목하였다.
구체적으로 5.18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남긴 기록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증언을 통해 1980년 5월의 광주를 생생히 재현했다.
또한 5.18은 당시 시대적, 정치적 상황과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제작진은 영상 기록물, 스틸사진, 외신 보도, 정부 측 발표 등 방대한 아카이브 자료들을 조사하기 위해서 큰 노력을 기울였다.
제작진은 5.18 당시 항쟁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남긴 기록과 증언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제작진은 ‘5.18 민주화운동기록관’과의 협업을 통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오월 일’를 수장고에서 꺼내 촬영할 수 있었다.
일기 작성자인 당시 광주 시민이 자신의 40년 전 일기를 직접 낭독하며 증언한다.
특히 당시 광주여고 3학년이었던 주소연은 1980년 5월 당시 자신이 직접 칼로 오려 붙여가며 만든 신문 기사 스크랩을 바탕으로 일기를 썼는데 여고생이 본 광주의 현실과 당시 언론 보도의 내용은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에 그가 남긴 40년 전 일기에는 분노와 좌절이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목격자의 증언에도 주목했다.
당시 전라남도 나주에서 한센병 환자들과 생활하며 봉사활동을 하던 미국인 폴 코트라이트(Paul Courtright)는 항쟁이 일어나자 광주로 들어가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던 상무관에서 외신기자들과 광주시민들 사이에서 통역 일을 하면서 5.18 민주화운동을 목격한다.
그 역시 자신이 목격한 것을 일지로 남겼고 이를 바탕으로 증언한다.
또한 당시 전남대학교에서 유학 중이던 미국인 린다 루이스 (Linda Lewis), AP통신 기자로 광주에 들어와 취재했던 테리 앤더슨(Terry Anderson), 한국일보 기자로 광주를 취재한 조성호 등도 이 역사적인 다큐멘터리에 자신의 기록을 공개하며 증언한다.
제작진은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국내외의 기록물들을 수집, 연구했다. 제작진은 이 과정에서 고 윤상원 열사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동영상, 27일 도청진압작전 이후 20사단 계엄군 장교의 인터뷰 동영상 등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자료들을 발견했다.
이 영상기록물들은 지난 40년 동안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각종 다큐멘터리나 기획보도물 등에서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압작전의 상황을 시청자들에게 생생히 전달할 것이다.
제작진은 관련된 자료들을 발굴하기 위해 MBC가 보유한 영상자료 전체는 물론이고 미국 국립문서보관청(NARA), 5.18 기념재단 등 관련 자료를 소장한 거의 모든 기관과 협력하면서 오랜 시간 자료를 수집했다.
결과적으로 이 다큐멘터리는 5.18을 직접 목격한 이들의 기록 및 증언과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형태가 결합한 것이며 시청자들을 40년 전 한국의 정치상황, 그리고 광주의 진실 속으로 안내할 것이다.
다큐멘터리에 참여한 증언자 중에서 특히 세 명의 사연은 매우 가슴 아프다.
역사가 기록하듯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도청진압작전으로 광주시민들의 항쟁은 끝이 나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항쟁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던 시민군들이 있었다.
광주여고 3학년이었던 주소연과 동국대학교 학생이던 박병규 역시 그랬다.
주소연은 1980년 5월 22일 도청 취사반에 자원해 시민군을 위해 밥을 짓는 일을 하기 시작하는데 이런 주소연을 보살피며 옆에서 도와주었던 것은 시민군 취사반 반장 오빠 박병규였다.
‘끝까지 싸우자’라고 맹세했던 시민군이었지만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도청으로 공격해온다는 마지막 소식을 들은 박병규는 동생 같은 주소연의 손을 이끌고 그들을 도청 바깥으로 피신시켰다.
주소연은 박병규에게도 ‘오빠도 도청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총을 멘 박병규는 ‘나는 끝까지 싸우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도청으로 돌아갔고 27일 아침 도청 근처 화단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박병규의 싸늘한 시신은 27일 아침, 당시 광주를 취재하던 기자 조성호에 의해 도청 근처 화단에서 발견되었다.
오랜 기간 자신이 시민군이었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던 주소연은 이번 다큐멘터리를 통해 자신의 사연을 공개했고 박병규의 마지막 순간을 목격한 조성호를 만나게 된다. 이 과정 역시 다큐멘터리에서 소개될 것이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