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4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 합동 기자회견에서 악수를 하고 있는 주호영 신임 통합당 원내대표(오른쪽)와 원유철 한국당 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치명적 유혹(?) 뿌리치고 합당
우선 출발은 좋다. 주호영 원내대표와 원유철 미래한국당 대표는 합당을 논의하는 기구를 조성, 조속한 합당을 추진하기로 5월 14일 전격 합의했다. 통합당은 전국위원회를 소집해 합당을 결의하고, 미래한국당이 5월 19일 전당대회를 거쳐 최고위원회의에서 합당을 의결할 예정이다.
미래통합당 당선자들은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과 “당연히 합쳐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왔다. 주 원내대표도 5월 8일 선출된 직후 회견을 통해 “합당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밝혔다. 통합당 당선자들이 합당을 서두른 이유는 이번 총선 결과에서 국민들이 보냈던 싸늘한 시선의 원인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통합당 한 재선 당선자는 “선거 과정에서 들어보니 한국당은 반칙 정당, 꼼수 정당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만약에 합당을 안 하면 이런 이미지가 고착화된다”고 했다. 3선 당선자도 “통합당은 욕심꾸러기 정당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그런데 미래한국당과 합당을 안 하면 또 욕심쟁이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도 선한 이미지의 흥부가 되어야지, 놀부로만 불려서는 다음 대선에서 또 진다”고 우려했다.
한국당은 물론, 통합당 내부에서도 “미래한국당과 쌍두마차로 가보자”는 의견이 있긴 했다. 한국당이 비례의석 19석을 확보한 만큼 무소속 당선자 4인방(홍준표·권성동·윤상현·김태호)을 영입해 별도 교섭단체를 만들거나, 안철수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당과 공동교섭단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제안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실제 안철수 대표는 반대하고 나섰지만 국민의당 내부 당선자들 사이에서도 이 같은 의견에 동의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실리적 측면에서 볼 때 ‘쌍두마차’는 큰집 통합당이나, 작은집 한국당 모두에게 치명적 유혹이었다. 한국당이 교섭단체로서 원내 3당 역할을 하면 통합당이 21대 국회 전반기 원 구성 협상에서 보다 유리한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 추천위원 중 야당 몫 2명을 통합당과 한국당이 모두 차지할 수 있다는 점도 끌리는 대목이다. 정당 보조금 제도도 교섭단체 위주라, 한국당이 교섭단체가 되면 경상보조금도 든든하게 챙길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간파하고 있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이런 시도의 현실화를 우려한 듯 5월 12일 “하나의 먹이를 두고 머리끼리 아귀다툼하는 쌍두뱀처럼 국가보조금과 상임위원장 자리를 두고 다투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통합당과 한국당은 “뭉치자”는 대원칙에 합의했다. 남은 관건은 최종 합당 시기다. 최대한 빨리 합당을 이뤄내 국민들에 “통합당이 변했다”는 이미지를 줘야한다는 생각을 당내 대다수 구성원들이 갖고 있다.
대구·경북 한 초선 당선자는 “합당이 조기에 합의되지 않아 5월 안에 합당이 불발됐으면 21대 국회에 원내 3당으로 한국당이 들어가게 될 가능성이 컸다. 이렇게 되면 추후 합당을 하려면 더욱 난관이 많아지게 된다. 이제 합당이 초읽기에 들어갔으니 지역구민들에게 할 말도 생겼다. 합당이 성사되면 통합당 지역구 당선자 84명과 한국당의 비례대표 당선자 19명이 한 식구가 된다. 103석의 제1야당이 구성됐으니 정부·여당을 확실히 견제하는 대안 세력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이 여세를 몰아 당이 빨리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산가족’ 상봉은 시간문제
주호영 원내대표 체제가 들어섬에 따라 홍준표 권성동 윤상현 김태호 당선자 등 지난 공천 과정에서 당을 떠났던 이산가족들이 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주 원내대표는 원만한 당 운영을 중시하는 스타일인 데다, 본인도 바른정당에 갔다가 복당한 경험이 있어 복당은 시간문제라는 목소리가 현재로서는 크다.
4·15 총선 대구 수성을에서 당선된 홍준표 무소속 당선자가 대구시 수성구 두산오거리 인근에서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산가족 중 가장 관심을 끄는 인물은 총선 이후 여러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올라가긴 했지만, 여전히 당 안팎에서 가장 ‘비토 세력’이 많은 홍준표 당선자다.
홍 당선자는 5월 11일 주 원내대표 부친 장례식장인 경북대병원을 직접 찾아 조문하면서 그와의 ‘친근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실제로 깊다. 둘은 사법연수원 동기이고, 정치권에 들어와서는 지난 2008년 원내대표(홍준표 당선자)와 수석부대표(주 원내대표)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이번 총선에서 홍 당선자가 당선된 대구 수성을은 17~20대 총선에서 주 원내대표가 내리 당선된 지역이기도 하다.
홍 당선자는 이날 상가에서 주 원내대표에 “얼마나 상심이 크겠느냐”고 위로한 뒤, 손님석에 앉아 육개장으로 식사까지 하며 오랫동안 머물렀다. 이어 기자들에 “주 원내대표는 합리적인 데다 협상력이 강한 사람이다. 한마디로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라며 “당은 쪼그라들었으나 그나마 주 의원 같은 사람이 총대를 멜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이야말로 주 대표 권한대행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호기”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주 원내대표 의사와 달리 걸림돌도 있다. 홍 당선자의 거친 언사에 대해 못 마땅해 하는 기류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 표심에 막말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당선자들이 봤기 때문에, 홍 당선자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모양새다. 홍 당선자가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향해 쏟아낸 발언도 당 내부 구성원들에 부담을 주는 대목이다.
한 수도권 당선자는 “통합을 위해 홍 당선자가 들어오는 것은 좋지만 홍 당선자도 ‘내 생각만 옳다’는 공격적 주장은 좀 거둬주셨으면 한다”며 “주 원내대표가 이에 대한 조율 역할도 해야 한다. 조율이 안 되면 또 큰 싸움이 나고 통합당은 국민들에게 또 외면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홍 당선자 복당 문제로 당이 시끄러워지면 일부만 받아들이는 선별 복당이 시도될 수도 있어, 이 부분이 또 다른 당의 분열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종인 비대위 체제는?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비대위원장으로 내정됐지만 “4개월짜리 비대위는 안 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만큼 임기 조율이 당장의 숙제로 떠올랐다.
4월 24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21대 국회, 어떻게 해야하나?’ 토론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긴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 사진=박정훈 기자
주 원내대표는 5월 8일 당선자 총회에서 “김종인 비대위가 당 재건을 위한 차선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며 “연찬회 등을 통한 당선자 의견수렴과 김종인 비대위원장 내정자 양측의 의견을 묻겠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기자간담회에서도 “아직은 계획이 없지만 김 내정자를 가까운 시일 내 만나도록 하겠다. 김 내정자와 상의해 조속한 시일 내 방안을 찾겠다”고 했다. 상임전국위 무산으로 당헌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김 내정자가 요구해온 ‘충분한 임기’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점을 김 내정자와 조율해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실제 주 원내대표는 조기 전당대회 개최에 대해 부정적이다. 연이은 참패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과 반성도 없이 분열적 요소가 많은 전당대회에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조기 전당대회보다는 김종인 비대위로 방향타를 잡고, 임기에 대한 구체적 조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주 원내대표의 꼼꼼한 성격상 대권주자 등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설득하겠지만 마냥 기다릴 수 없는 만큼 ‘상임전국위원 교체’를 단행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표 권한대행의 권한을 행사, 상임전국위원을 교체한 뒤 상임전국위를 다시 열어 비대위 임기를 1년 안팎으로 늘리는 당헌 개정을 성사시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바탕을 깔아놓으면 김 내정자가 ‘보기 좋은 모습으로’ 비대위로 들어올 수 있다. 김 내정자 역시 여러 논란에도 “절대 안한다”는 목소리는 내지 않는 만큼 멍석만 잘 깔아놓으면 비대위 방안으로 들어올 것이라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한 중진 의원은 “김종인의 약점은 화려한 등장에 따른 ‘컨벤션효과’가 이미 사라졌다는 점이고 당내 분열까지 키운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대권후보를 만들어내는 실력, 그리고 국민들에게 간결한 메시지를 통해 당의 가치를 새롭게 각인시키는 재주는 김 내정자의 큰 강점이다. 장단점의 가중치를 잘 보고 주 원내대표가 잘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