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의 인수작업이 지연되며 이스타항공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현안과 거리를 둔 애경그룹과 오너일가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사진=제주항공 제공
#아사 직전까지 몰린 이스타항공
제주항공은 지난 4월 29일로 예정돼 있던 이스타항공 주식 취득일을 연기했다. 그 사이 이스타항공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영업손실 793억 8547만 원, 당기순손실 908억 6620만 원을 기록했다. 이스타항공은 임직원 급여와 비행기 리스료, 공항사용료 등 대금 지급을 미루고 있고 지난 4월 실시한 희망퇴직 대상자에 대한 퇴직금과 위로금까지 입금 기한이 지난 뒤에 지급했다. 희망퇴직자의 미지급 임금은 오는 22일 지급 예정이지만 직원들은 지급 여부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관련기사 이스타항공 구조조정 배후 ‘이상직 당선자’ 거론 까닭).
지난 3월 31일 근로자 대표와 회의를 열고 구조조정 계획을 밝힌 이스타항공은 이후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를 진행하고 있다. 이스타항공조종사노조와 직군별 직원 대표자들은 자체적으로 임금 삭감폭을 늘리는 방안을 사측에 제안하는 등 구조조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하지만 사측은 계획대로 인력 감축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 이스타항공 직원은 “사측에서 지난 4월 구조조정 대상을 발표한다고 했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이야기가 없다. 하루하루 피를 말리며 통보를 기다리고 있다”며 “노조에서 임금을 삭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논의에 진전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설 수 없는 제주항공의 속내
이스타항공 내부에서는 인수주체인 제주항공과 애경그룹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스타항공조종사노조는 지난 4월 27일 정리해고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애경-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인수로 LCC(저비용항공사) 독점사업자 지위를 획득할 욕심에 이스타 경영진을 앞세워 정리해고를 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인수주체인 제주항공 측은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아직 인수가 완료되지 않아 경영권이 넘어오지 않은 상태에서 이스타항공이 자체적으로 진행 중인 구조조정에 대해 언급하기 어렵다는 것.
이 같은 이유와는 별개로 내부 사정에 발목이 잡혀있다는 것이 제주항공 안팎의 시선이다. 우선 이스타항공 인수금융과 관련해 산업은행과 협의가 원활하지 않아 원하는 액수만큼의 지원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제주항공도 최근 수익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제주항공은 지난 1분기 매출 2292억 3400만 원, 영업손실은 657억 2600만 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3093억 9000만 원) 대비 매출은 41.7% 줄었고 영업이익은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말 351.38%까지 치솟은 제주항공 부채비율이 올해 말 1000% 수준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언덕은 모그룹인 애경이다. 그러나 애경그룹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다. 실제 애경산업과 애경화학 등 핵심 계열사의 실적이 뒷걸음질 쳤다. 특히 애경산업의 경우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은 126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45.3%나 감소했다.
#지속되는 오너일가의 주식 쇼핑
상황이 악화일로로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애경그룹 오너일가의 지분 매입이다. 최근 애경그룹 오너일가는 코로나19 여파로 주가가 떨어진 타이밍에 애경유화 지분을 매입했다. 그간 지주사 AK홀딩스가 애경유화 지분을 지속적으로 늘려왔으나, 오너일가가 직접 애경유화 지분을 매입한 것은 처음이다.
지난 4월 28일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은 애경유화 지분 500주를 매입했다. 같은 날 장남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과 차남 채동석 애경산업 부회장은 각각 애경유화 지분 2000주, 삼남 채승석 애경개발 대표와 장녀 채은정 전 애경산업 부사장은 각각 500주를 매입했다. 주가 부양이라는 측면과 저가 매수를 통해 이익을 보려하고 있다는 비판이 엇갈린다. 애경그룹 측은 “최근 애경유화 주가가 많이 낮아져 저평가됐다는 판단에 따라 매입한 것”이라고 전했다.
오너일가의 지분 매입에 앞서 애경그룹 지주사 AK홀딩스는 2019년 12월 30일 애경유화 지분 60만 4800주를 매입을 시작으로 지난 1월 12차례 애경유화 지분을 매입해 지난 1월 20일 기준 지분율을 기존 46.78%에서 48%까지 끌어올렸다. 이후에도 지분을 수차례 추가 매입해 지난 2월 3일에는 49.03%까지 끌어올렸다. 이미 지주사 AK홀딩스를 통해 애경유화에 대한 지배력이 공고한 상황에서 또다시 애경유화 지분을 매입한 셈이다.
애경그룹 오너일가의 지분 매입은 지주사 AK홀딩스에서도 볼 수 있다.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의 친인척 채문선·채수연·채문경·채수경 씨는 지난 4월 22일 각 410주~430주의 AK홀딩스 지분을 매입, 총 1663주를 매입했다. 앞서 채 부회장의 부인인 홍미경 몽인아트센터 관장 또한 지난해 수차례 AK홀딩스 지분을 매입한 바 있다.
애경그룹은 지난 5월 12일 지주사 AK홀딩스를 비롯해 제주항공, 애경산업, 애경유화 등 5개 주요 계열사를 대상으로 상반기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를 통해 이석주 현 제주항공 대표이사는 AK홀딩스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고, 제주항공 대표이사에는 아시아나항공 출신의 김이배 부사장이 영입됐다.
인수작업 마무리에 앞서 제주항공 대표이사가 교체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이스타항공 인수 계획에 새로운 변수가 생겨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기획‧재무 전문가가 인수주체의 대표이사로 외부 영입된 까닭이다. 박이삼 이스타항공조종사노조위원장은 “신임 AK홀딩스 사장의 경우 이스타항공의 인수를 부정적으로 봤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면서 “애경그룹이 ‘강경모드’에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제주항공 상황을 잘 아는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제주항공이 이제 와 인수를 접을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급할 것이 없는 입장인지라 이스타항공 이외에 다른 매물이 나올 가능성을 두고 관심을 가질 수는 있다”고 전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의 이스타항공 지원 계획 등은 아는 바 없다”면서도 “새 대표가 오면 전체적으로 인수를 검토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