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3주년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하지만 잘나가는 집안에도 골칫거리는 하나씩 있는 법. 정치권에선 문 대통령 임기 후반기로 갈수록 당청 관계가 잠재적 리스크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여권에서도 ‘작은 구멍 하나로 둑이 무너진다’는 격언을 되새기며 이를 경계하는 모양새다. 최근 개각설을 두고 벌어진 일련의 상황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총선이 끝난 후 여의도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개각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몇몇 장관 자리와 청와대 수석급이 인사 대상이라는 게 그 골자였다. 노영민 비서실장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교체 가능성도 거론됐다. 6월 중순경이라는 구체적 시기까지 뒤를 이었다. 입각 하마평에 오르내렸던 몇몇 정치권 인사는 이에 대해 오히려 기자들에게 확인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5월 6일 문화일보는 여권 관계자들 말을 인용해 이를 보도했다. 기사에 등장한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임종석의 1기, 노영민의 2기를 지나 총선 이후 본격적으로 성과를 내야 하는 시점에서 3기 청와대 참모진 진용을 꾸리는 게 적절하다”고 했다. 노영민 실장 후임으로 김조원 민정수석,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우윤근 전 의원 등이 오르내린다고도 했다. 또 정의용 안보실장 역시 서훈 국정원장으로의 교체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즉각 부인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5월 6일 브리핑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 개각을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언론 개각 보도에 청와대가 이처럼 바로 반박 브리핑을 내놓는 것은 이례적이다. 불필요한 추측들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실제 수장이 교체될 것이란 말이 끊이지 않았던 부처들의 경우 내부 동요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 관계자는 “말 그대로 (개각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보면 된다”고 잘라 말한 뒤 “경제, 외교 부문 등 시급한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개각을 하기엔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과거엔 주로 대통령 임기 후반 국면 돌파용으로 청와대 개편이나 개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총선 승리 후인 데다가 대통령 지지율도 높은 편”이라면서 “그런 것을 다 떠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인사를 하는 것은 문 대통령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청와대의 이런 반응 이면엔 불쾌감이 흐른다. 개각설 진원지로 꼽히는 당을 향해서다. 실제 총선이 끝난 뒤 민주당 몇몇 중진들은 사석에서 개각을 여러 차례 거론했다. 총선에서 승리해 국정 운영에 탄력이 붙은 지금이 개각의 적기라는 논리였다. 문 대통령 취임 후 줄곧 자리를 지켜온 강경화(외교부) 박능후(보건복지부) 등 ‘장수 장관’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의 실명도 언급됐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코로나 정국에서 경제 라인 교체는 힘들 것이란 데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다만, 노영민 실장 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이 많았다. 강기정 정무수석도 마찬가지다. 외교 안보 부문도 인사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비록 총선에서 이겼지만 그 후 오거돈 성추행 사태, 양정숙 부실검증 논란 등의 악재가 연이어 터졌다. 이럴 때 인사로 국정의 고삐를 죄고, 국민들에게 쇄신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어정쩡하게 가다간 총선 승리에 안주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그리고 친문 핵심들이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는 것도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대통령 고유 권한인 ‘인사’를 두고 당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힘들다는 이유다. 한 친문 의원은 “지금 민주당에서 자주 나오는 말 중 하나가 ‘강한 여당’이다. 여기엔 청와대 거수기에 대한 거부감이 담겨 있다”면서 “민주당 180석이 누구 때문인지 잊은 것 같다. 문 대통령 국정 운영에 잘 협조하라는 민심을 잊어선 안 된다”라고 했다. 민주당 물밑에서 감지되는 이상기류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인 셈이다.
청와대가 개각설에 대해 강하게 부인한 직후 당 내부에선 다시 ‘원포인트’ 개각 가능성이 흘러 나왔다. 동시에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거나 또는 낙천한 인물들의 입각설이 제기됐다. 이철희 김부겸 김영춘 의원 등이 거론됐다. 이에 대해서도 친문 진영 기류는 차갑기만 하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훌륭한 인재들의 낙천이나 낙선이 안타깝긴 하지만 이게 인사 문제로 풀 일은 아니다. 설령 인사를 하더라도 문 대통령이 판단할 일이지 당에서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청와대가 이렇게 ‘발끈’하고 나선 것은 단순히 인사 문제 때문만은 아니라는 얘기도 들린다. 문 대통령 임기 후반기 국정 주도권의 무게추가 ‘공룡 여당’으로 쏠릴 수 있다는 우려와 맞물렸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8월 전당대회, 차기 대권 등을 앞두고 정파 간 권력 다툼이 불가피하다는 측면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렇다. 한 친문 중진 의원은 “지난 3년간의 양상과는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당의 눈치를 볼 일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5월 7일 원내대표 경선에서 이해찬 대표와 가까운 김태년 의원이 친문 핵심 전해철 의원을 누르고 당선된 것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여진다. 여권 주류 분화이자 집권당 중심 국정 운영의 신호탄 성격에 가깝다는 것이다. 친문 중진 의원은 “머릿수가 많아지면서 국정에 힘이 실릴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임기 후반기의 문 대통령으로선 더 힘들어질 수 있다. 이런 딜레마는 차기 레이스가 시작되면 본격화될 수 있다. 이낙연 이재명 박원순 등 주요 잠룡들이 친문계가 아니라는 점은 문 대통령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일부 정무라인과 친문 핵심들이 초선 당선자들과 재선급 의원들에 대한 ‘스킨십’을 강화하고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 풀이된다. 당에 대한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뜻인데, 정치권에선 초·재선들을 ‘문재인 친위대’로 키우려는 움직임 아니냐는 반응을 보인다. 또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초선들을 사전에 단속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말도 들린다. 이에 대해 청와대 출신의 한 당선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친문계 한 중진 의원이 초선들 모임을 주재한 적이 있어 나갔다. 이 자리에서 그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했다. 이런 식의 회동이 여러 번 있었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합류하기도 했다. 어차피 나를 비롯한 초재선 대부분은 친문이라고 해도 무방한데,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것엔 다 까닭이 있지 않겠느냐. 내부적으로 예상되는 균열을 사전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됐다. 이는 현재 당에서 모종의 움직임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