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버스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 중에서도 같은 버스업계인 시내버스, 시외버스, 고속버스와는 또 다른 영역이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고 그때그때 고객의 필요에 의해 운행되다 보니 손님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운행되는 정규노선 버스들과는 달리 최근 대부분 개점휴업 상태다.
코로나19로 운행을 멈춘 전세버스들. 사진=연합뉴스
#불법인 건 알지만…전세버스 90%가 ‘지입’
문제는 전세버스 업자들이 대부분 ‘법인을 가장한 개인’이라는 점이다. 보통 버스회사가 운전기사를 고용해 운영하는 시내버스나 고속버스와 달리 전세버스는 일명 지입차량 운영이라는 편법으로 돌아가는 곳이 대부분이다. 지입차량이란 차량 소유주가 자신의 차량을 운수회사에 등록해 운행하는 방식이다. 운전자가 스스로 차량을 구입해 차량의 모든 관리와 운행 및 경영을 전담하지만 개인으로는 영업면허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운수회사에 등록해 매달 일정의 지입료를 내는 형태다.
서류상으로는 마치 운수회사가 기사를 고용하는 것처럼 되어 있어서 밖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관례적으로 버젓이 운영되고 있다. 화물운송의 경우에는 지입차량이 합법이지만 여객운송의 지입 방식은 명백히 불법이다. 그럼에도 전국 전세버스 업체 1700여 개 가운데 지입방식으로 운영되는 개인버스가 4만 5000여 대에 이르며 전국의 전세버스 중 85~90%를 차지한다.
이는 정부가 개인버스의 영업을 허가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다. 차량을 소유하고 있는 기사는 영업면허가 없으니 버스회사에 지입차량으로 들어가 면허를 득하고, 버스회사는 차량 확보에 자금을 들이지 않으면서 버스를 운영한다. 차량면허는 버스회사에서 등록하지만 실제차주는 기사인 셈이다. 대신 차주는 버스회사에 지입료를 낸다. 차량을 버스회사에 여러 대 지입하고 그 밑에 따로 운전만 하는 기사를 고용하는 지입차주도 있다. 하청의 하청인 셈이다.
그러다보니 지입차주는 사실상 자영업자처럼 움직인다. 회사로부터 배차를 받기도 하지만 면허만 회사에 등록해 두고 개인영업을 해서 버스를 운행하는 일이 많다. 성수기 무리한 운행이나 불법적 영업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1993년에 정부가 안전문제를 이유로 불법 자가용 버스들을 제도권 내에 흡수하기 위해 허가제를 등록제로 완화하면서 버스회사와 개인지입차량이 동시에 늘어났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과당경쟁이 생겼다. 지입차주는 버스회사에 지입료를 내는 동시에 차량할부비용, 차고지 확보비, 기사 인건비, 기름값, 차량 유지·관리비, 보험료, 세금 등을 모두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무리한 운행을 통해서라도 이를 충당하고 수익을 내야 한다. 영업차량이 등록제가 되면서 경쟁은 치열해졌고 낮은 요금으로 무리한 운행을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됐다.
법적으로 전세버스 지입차량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차주는 차량을 본인 소유로 둘 수도 없다. 버스 회사 이름으로 등록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차주가 회사에 차량을 빼앗기는 사기사건이 벌어지기도 하고 버스 회사가 부도를 맞으며 차량이 캐피탈에 넘어가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서류상으로는 버스회사의 차량으로 등록되기 때문에 차주들의 재산권 행사가 아예 불가능하다.
애초 안전문제 등으로 인해 개별사업권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전세버스가 지입차량이라는 편법으로 운영되면서 오히려 승객의 안전에 위협을 주는 요인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완성차 업체 위한 법령일 뿐
영업버스는 시내, 시외, 고속 등 버스 종류를 막론하고 차령(운행연한), 즉 영업이 가능한 햇수를 최장 11년, 제주는 12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로 전세버스가 제대로 운행할 수 없게 된 점을 감안해 올해 7~12월에 차령이 다해 운행이 정지되는 전세버스의 운행기간을 1년 더 늘려줬지만 지입차량주들은 ‘언 발에 오줌 누기’도 못되는 얄팍한 지원책이라며 반발했다. 그나마 올해 차령이 끝나지 않는 대부분의 전세버스들의 차령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운행을 하지 못해도 별다른 조치가 없다.
전세버스 지입차량주들은 “시내, 시외, 고속, 전세버스는 각각 운행거리와 운행상황 등이 전혀 다른데 그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차령으로만 버스의 운행을 제한한다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인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전세버스 지입차주 A 씨는 “차마다 차량의 가격과 성능, 옵션 등이 서로 다른데 영업차령을 일률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은 형평성에 위배된다”며 “성능과 안전도 등을 검사해 차량 상태에 따라 차령을 달리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차령에 따른 운행 제한은 완성차업체의 이익을 대변한 과거 정치집단의 입법 결과물일 뿐”이라며 “시대착오적 규제”라고 못 박았다. 11~12년 뒤에는 무조건 새 차로 바꾸거나 차령이 남은 중고차로 바꿔야만 전세버스 영업을 계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완성차업체에 안정적인 판로와 이익만을 보장한 법이라는 지적이다. A 씨는 “차령제한이 전세버스 가격도 덩달아 높여놨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전세버스 지입차주 B 씨는 “차령제한 때문에 차량의 감가상각을 계산하면 무리하게 운전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며 “코로나19로 멈춰선 전세버스가 많고 언제 다시 운행을 재개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만큼 주행거리로 운행기준을 다시 세워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차령이 지난 영업용 버스는 국내에서 더 이상 운행이 불가능해 해외로 수출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 받는 돈도 찻값에 비하면 헐값에 지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불법 지입 시스템으로 고질적 문제를 안고 있는 전세버스 지입차주들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운행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운행에 필요한 기본 옵션 등을 설치한 전세버스는 대당 2억 원 안팎이다. 11~12년 후에 파는 차 값은 대략 1000만~2000만 원선으로 알려져 있다. 차주들이 영업할 수 있을 때 무리한 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나마 해외로 팔지 못한 차들은 용도가 없어 500만 원도 채 받지 못한다고 했다.
제주도에서 전세버스 지입차량을 운행하는 C 씨는 “차령이 끝난 차는 주행거리가 70만km이든 30만km이든 비슷한 가격에 팔린다. 사람의 오장육부에 해당하는 엔진 상태도 차마다 다른데 운행을 계속하려면 차령 때문에 멀쩡한 차를 팔고 다시 새 차나 차령이 많이 남은 중고차를 살 수밖에 없다. 완성차업체를 위한 제도로밖에는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C 씨는 제주도에서 운행하는 전세버스의 경우는 이동이 짧아 차령이 높아도 장거리를 뛰는 육지차량들에 비해 주행거리가 3분의 1도 안 될 정도로 짧은 경우가 많아 더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차령이 아닌 주행거리로 운행을 제한하면 안전을 무시한 과도한 운행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제주도 전세버스 지입차량 운행자들의 경우는 통근버스로 활용 하는 육지의 전세버스에 비해 세워놓는 일이 더 많아 차령으로 영업을 제한하는 제도에 더 불만이 많은 상황이다. C 씨는 “내국인의 제주 여행이 서서히 늘고 있기는 하지만 주로 렌트카를 이용한 소규모 여행이 대세여서 코로나19가 진정돼도 예전 같은 단체관광 시대는 이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며 “버스를 세워두는 일이 전보다 더 많아질 텐데 하루하루 차령만 늘어가니 버스에 투자한 2억 원이 줄줄 새고 있다는 생각에 초조하다”고 토로했다. “단체관광이 재개될 때를 기다리느니 차령이 아직 남았을 때 살 사람만 있다면 차를 팔아치우는 것이 답”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년 전 퇴직금을 전세버스 지입 차량에 투자한 지입차주 D 씨도 “차량을 일시불로 샀다고 해도 차령에 따른 감가상각비 150만 원, 지입비 50만 원, 보험료와 세금 등의 유지비를 따져보면 앉아서 한 달에 250만~300만 원이 줄줄 세고 있는 셈”이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20여 년 동안 여러 대의 지입차량을 운영하고 있는 E 씨는 “관할 관청인 국토부 공무원들이 전세버스업계가 불법 지입차량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도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다”며 “명백한 직무유기”라 비난했다. 그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다”며 “코로나19를 계기로 차주들이 행동에 나설 때”라고 말했다.
김영수 전국전세버스 지입차량 개별사업권 추진연합회 회장은 “전세버스 업계의 85~90%가 사실상 개인의 지입차량으로 편법 운영되고 있는 만큼 전세버스도 개인택시처럼 개별사업권을 허가해 줘야한다”고 말했다. 김영수 회장은 또 “버스회사나 지입차량 모두에게 불법일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는 지입차주가 버스회사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고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운행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