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갓’ 문형욱이 바키 사건의 영향을 받아 한국형 스너프(Snuff Film) 필름을 만들고자 했던 게 지금의 성착취 범죄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검찰로 송치되기 전 문형욱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에로비디오 제작사 제작부장으로 일을 시작해 20여 년 동안 성인콘텐츠 전문가 타이틀을 달고 지냈지만 나도 텔레그램 성착취 물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건 성인콘텐츠가 아닌 범죄일 뿐이라고, 그런 건 보는 행위 자체도 범죄라는 얘기밖에 할 말이 없었고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나 역시 몇 년 전 국내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몇몇 스너프 필름 계열의 동영상은 본 적이 있다. ‘갓갓’ 문형욱이 2015년부터 성착취 물을 만들었고 그 당시엔 웹하드를 통해 유통시켰다고 하니 내가 본 게 ‘갓갓’이 만든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 그걸 본 나도 범죄자인 셈이니까.”
성인콘텐츠 전문가 ‘망치’의 진단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갓갓’ 문형욱이 만든 것일 수 있다는 스너프 필름이 몇 가지가 언급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게 ‘실제 강간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유통됐던 것이다. 여러 명의 남성이 여성 한 명을 강간하는 내용이라는데 여성이 미성년자로 보일 만큼 어렸다고 한다. 만약 실제로 집단 강간을 하고 그 장면을 촬영한 것이라면 이것은 스너프 필름이다. 스너프 필름(Snuff Film)은 원래 실제로 살해를 하거나 모살 또는 자살하는 장면을 촬영해서 보여주는 영상물을 일컫는 말인데 요즘에는 ‘실제 성행위 영상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버닝썬 게이트 당시 ‘스너프 필름’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거론된 까닭 역시 실제 성관계 장면을 찍은 영상이기 때문이다. 그의 설명을 조금 더 이어간다.
“강간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이들이 말하는 소리가 거의 안 들려 일본 AV라고 생각했지만 옷차림이나 장소 등이 한국 제작물로 보이기도 했다. 이게 뭘까 싶었지만 한국에서 이런 스너프 필름이 촬영됐을 리 없고 그랬다면 경찰 수사가 이뤄졌을 터라 일본 AV에 누군가 ‘국산’이라는 이름표만 달아 놓은 것이려니 했다. 그런데 ‘갓갓’이 2015년부터 그런 걸 만들어 웹하드에 올렸다고 하니 그것도 충분히 그가 만든 것일 수 있다. 이 외에도 각종 물건으로 여성을 고문하는 듯 촬영된 영상도 있었는데 그건 한국에서 제작된 게 맞다. 한국말을 했으니까. 그냥 성향이 비정상적인 커플이 합의 하에 찍은 게 불법 유포된 리벤지 포르노 정도로 생각했다. 게다가 여성도 촬영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여 몰카도 아니었다. 그것 역시 ‘갓갓’이 만든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부분까지 경찰 수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결국 ‘갓갓’ 문형욱의 목적이 처음부터 성착취 물을 만드는 것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애초에는 ‘한국형 스너프 필름’을 만들고자 했고 실제로 만들었는데 그런 행위가 지금의 성착취 범죄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먼저 거론된 것은 일본인 ‘쿠리야마 류’다. 바키 비주얼(Bakky visual) 대표인 그는 AV 제작사를 설립해 스너프 필름을 촬영한 뒤 이를 AV로 속여 유통했다. 일본에서도 충격적이기로 손꼽히는 바키 사건은 2004년에 벌어졌다. 쿠리야마 류는 징역 18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으로 2024년 출소 예정이다. 올해 초 일요신문이 n번방 관련 취재를 할 당시에도 한국사이버성폭력센터 등에선 성착취 범죄의 시발점이 일본의 바키 사건일 가능성을 제기했었다.
일본 AV 제작사 바키 비주얼(Bakky visual)의 대표 쿠리야마 류는 일본에서 ‘AV 업계의 카리스마’로 불리며 크게 성공했던 인물이지만 바키 사의 AV가 실제로 이뤄진 집단강간과 집단폭행을 촬영한 스너프 필름임이 알려져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사진=일본 ANN 뉴스 화면 캡처
바키 사의 스너프 필름은 대략 이런 방식으로 제작됐다. 신인 여자 AV 배우에게 거액의 출연료를 제안하고 출연을 약속받는다. 어느 정도의 하드코어는 예상을 하고 출연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만 그 직후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진다. AV 배우가 출연 계약서에 사인을 하자마자 옆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십 명의 남성들이 순식간에 들이닥친다. 바로 집단 성폭행이 시작되고 고문까지 이어진다. 심지어 50여 명의 남성이 동시에 들어오는 영상물도 있었다. 그렇게 집단 강간과 폭행·고문을 당한 배우가 길가에 버려지는 장면으로, AV로 포장된 스너프 필름은 끝이 난다.
바키 사는 이런 영상을 정식 AV로 유통했다. 매우 혐오스러운 장면이 이어져 비위가 약한 사람은 구토를 할 정도였지만 남성들은 연출된 영상으로 인식했다. 물론 연출된 것으로 보기엔 너무 리얼했지만 그래서 더 열광하는 남성들이 많았다. 이를 기반으로 바키 사는 연 매출이 100억 엔(약 1150억 원)에 이를 정도로 거액을 벌어들였다. 당시 쿠리야마 류는 일본에서 ‘AV 업계의 카리스마’로 불리며 페라리를 타고 다녔다.
2004년 이런 혹독한 경험으로 하반신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AV 배우 한 명이 그 사실을 폭로하고 이어 다른 피해 여배우들이 동참하면서 바키 사의 실체가 세간에 알려졌다.
기본적으로 ‘갓갓’ 문형욱의 성착취 영상물은 스너프 필름에 해당된다. 연출된 장면이 실제 성행위 영상이기 때문이다. 최근 경찰 조사에서 문형욱은 2018년 대구 여고생 성폭행 사건을 비롯해 3건의 성폭행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물론 성폭행 장면을 촬영하라는 지시도 함께.
또한 ‘갓갓’ 문형욱은 2015년 웹하드에서 범죄를 시작해 트위터를 거쳐 텔레그램으로 활동 영역을 옮겼다. 이 시기에 웹하드에서 한국형 스너프 필름으로 보이는 영상물이 돌아다녔고 트위터에서는 ‘스너프’라는 키워드가 화제가 됐었다. 이런 흐름을 주도한 게 ‘갓갓’ 문형욱이라면 그의 범죄는 한국형 스너프 필름을 제작해 웹하드와 트위터에 은밀히 유통시키는 방식으로 시작해 텔레그램 n번방에 이르러 ‘성착취’ 범죄로 완성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런 방식을 ‘박사’ 조주빈 등이 따라한 것으로 추측된다.
기본적으로 바키 사의 쿠리야마 류는 AV 제작사를 만들어 배우를 섭외하는 방식으로 피해자를 확보했다. 문형욱은 SNS에 자신의 신체 노출 사진을 올린 소위 일탈계정의 미성년자에게 접근했다. 그리곤 그들에게 점점 더 과도한 사진과 영상을 요구하며 점차 ‘노예’로 만들었다. 심지어 자신을 추종하는 이들을 보내 성관계를 맺거나 성폭행하게 한 뒤 이를 촬영한 스너프 필름을 확보해 유통했다. 일본의 하드코어 AV 업체 ‘ranky(랭키)’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아 바키 사를 만든 쿠리야마 류가 스너프 필름을 만들었다면, 문형욱은 웹하드와 트위터에서 텔레그램으로 기반을 옮겨가며 성착취 물 범죄라는 또 다른 괴물을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포토라인에 선 ‘박사’ 조주빈. 사진=일요신문DB
바키 사건에서 더욱 눈길을 끄는 부분은 쿠리야마 류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자신을 고소한 AV 배우들을 향해 “너흰 어차피 인간이 아닌 창녀야.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도 돼”라는 망언을 남긴 대목이다. 당시 쿠리야마 류가 피해자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형욱이 쿠리야마 류와 마찬가지로 피해자들을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도 되는 존재’로 여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형욱의 아이디는 ‘갓갓’이며 조주빈의 아이디는 ‘박사’다. 범죄 전문가들은 이들이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이런 아이디를 쓴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갓갓 문형욱과 박사 조주빈의 행태가 금전적 이익이나 성적 욕구 충족이 아닌 지배욕과 권력욕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
‘징역 18년’ 쿠리야마 류, 문형욱 조주빈은? 바키 사건의 주범 쿠리야마 류는 강간치상과 상해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8년형을 선고 받았다. 이 외에도 바키 사의 스너프 필름에 고정 출연했던 배우와 감독 등 9명이 3년에서 15년 사이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한꺼번에 수십 명의 남성들이 출연해 집단 강간과 폭행, 고문 등에 동참했는데 이들에 대해서도 처벌이 이뤄졌지만 고정 출연이 아닌 경우는 집행유예 수준의 처벌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기소됐지만 도주했던 카메라맨이 자살하는 일도 벌어졌다. 바키 사에서 출시했던 기존 영상물은 모두 사라졌으며 촬영에 임했던 남자 배우나 감독, 스태프들은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AV 업계에서 퇴출됐다. 그럼에도 이후 일본 AV 업계에서 유사 사건이 또 벌어졌다. 학대에 가까운 하드코어 물이 계속 촬영됐고 출연자를 기만하거나 협박하는 AV 업체들이 끊이지 않아 2016년 그런 업체들이 대거 적발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2017년 일본에선 AV인권윤리기구가 설립됐고 출연강요 피해 사례를 검증하는 ‘적정 AV 규약’이 제정됐다. 이처럼 일본은 바키 사건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이뤄졌다. 반면 AV 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진 바키 사의 스너프 필름과 달리 한국의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피해 영상물들은 여전히 누군가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언젠가 또 다른 채널을 통해 재확산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한국 법원의 성인지 감수성을 감안할 때 문형욱과 조주빈 등 핵심 인물들에 대한 판결 수위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큰 게 현실이다. 전동선 프리랜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