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6일 만난 도시공원 일몰제 보상 대상자의 말이다. 그는 정당한 보상을 통해 공원을 유지하는 데도 긍정적이었다. 공원일몰제는 1999년 헌법재판소가 ‘사유지에 도시계획 시설을 짓기로 하고 장기간 미집행하는 것은 개인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판결하면서 도입됐다. 그동안 지자체들은 사유지를 공원지역으로 지정해 놓고 공원으로 쓰고 있었지만 보상은 해주지 않고 있었다. 사유지를 매입할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 같은 판결 이후 이런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서울시가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68곳을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했다. 다만 이 방식으로 헌재 판결을 우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진=서울시 제공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라 오는 7월 1일부터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된다. 정부나 지자체가 공원을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해 놓고 20년 동안 사유지를 매입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공원에서 해제되는 제도다. 이제 약 40일을 남겨둔 상황이지만 지자체들 중 뾰족한 수를 내는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청난 양의 토지가 일거에 풀리는 데 반해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년을 기다린 만큼 보상을 해달라는 토지주들과 예산 부족을 이유로 보상은 어렵다는 지자체가 갈등을 빚고 있다.
또 다른 도시공원 토지주는 예산 부족이라는 이야기에 분통을 터트린다. 그는 ”도시공원 토지주들은 수십 년 동안 기다리다 1999년 판결이 났고, 다시 20년을 기다려 해제가 목전에 왔다. 그나마 20년 유예기간을 둔 건 조금씩 보상으로 토지 매입을 하라는 의도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20년간 손 놓고 있다가 이제야 허둥지둥하는 걸 보면 화가 날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 토지주 말처럼 아직 준비되지 않은 지자체가 워낙 많기 때문에 7월 1일부터 본격적인 소송전이 전국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법대로라면 지자체가 공원을 풀어줘야 하는 게 맞지만 전국의 도시공원이 일제히 개발되는 상황을 지켜볼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각 지자체는 일종의 꼼수를 내고 있는데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토지주들은 부글부글 속을 끓이고 있다.
양재동 말죽거리 공원도 이런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토지 보상금액은 일반적으로 감정평가사 3명의 평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한 데이터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가장 큰 보상비용이 걸린 곳으로 추정된다. 양재역 인근에 위치한 이 공원은 도심 한복판에 있는 데다 공원 부지도 넓어 예상 금액이 천문학적이다. 공원 바로 인근 땅 값은 3.3㎡(약 1평)당 5000만 원 이상이다.
공원 밖은 5000만 원이지만 말죽거리 공원 토지는 거래도 제대로 안되고 농사도 못 짓는 상황이다. 다만 도시공원 일몰제와 함께 공원에서 해제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몰제로 인해 이 일대를 대형 건설업체가 개발해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설 수도 있다. 지자체는 여기에 앞서 말했던 꼼수 중의 하나로 도시공원의 또 다른 형태인 도시공원자연구역 등으로 지정해 일몰제를 무력화시킬 방침이다. 다만 헌재 판결이 ‘사유지를 매입하지 않으면 토지주에게 개발권을 돌려줘야 한다’는 점에 비춰본다면 다시 도시공원자연구역으로 지정하는 게 헌재 판결을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일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말죽거리 공원 중 입구 쪽 땅인 양재동 산 46-2 토지주들이 모인 비상대책위원회 위원회에서는 ‘개발만을 바라는 건 아니다’라고 손사래 친다. 46-2 토지주만 100명에 달한다. 최재혁 비대위원장은 “대형 건설사가 들어와 개발에 나서면 엄청난 수익을 볼 수도 있지만 그걸 바라는 건 아니다. 서울시가 공원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정당한 보상만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서울시가 전부를 보상할 재정이 없다면서 입구 쪽만 강제수용하는 맹지 전략을 펴고 있다. 20년 동안 기다렸는데 입구 쪽 일부만 보상하고 나머지 땅은 언제 보상될지 모른다. 입구만 강제수용 당하면 어차피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장 많은 보상금액이 걸린 것으로 평가되는 말죽거리 공원 강제수용 예정안. 빨간색이 강제수용되는 곳인데 동그라미가 46-2 입구 쪽 일부만 예정돼 있다. 우상단에 대부분의 토지가 보상되는 육종택 호주건설 회장 땅이 눈에 띈다. 사진=말죽거리 공원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서울시가 발표한 개발 보상 예정 지도를 보면 최 씨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있는 땅은 그나마 입구 쪽에 있어 일부 강제수용 당하면서 보상을 받지만 나머지 땅은 강제수용지에서 제외돼 있다. 이렇게 46-2 중에서 입구 쪽을 강제수용해 맹지 전략을 노린다는 게 토지주들의 분석이다. 여기에 서울시는 지금처럼 땅 일부만 강제수용해 맹지가 돼 손실을 보면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인지 번지를 임의로 나누는 작업까지 했다. 46-2를 46-4, 46-5로 지번을 나눴고 이를 우선 보상지로 했다. 즉, 지번만 놓고 봤을 때 46-2는 강제수용 대상이 아니게 된다.
말죽거리 공원 보상에서 눈에 띄는 점은 다른 땅 주인과 달리 육종택 호주건설 회장 땅은 대부분 강제수용 대상으로 지정됐다는 점이다. 말죽거리 공원은 약 4년 전에도 화제가 됐다. 모델하우스의 왕으로 통했던 육종택 호주건설 회장이 말죽거리 공원에 있는 자신의 땅에서 나무를 뽑고 경사지를 평탄화했기 때문이다. 경찰 출동에도 막무가내로 일을 진행해 육 회장은 구속됐고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판결을 받기도 했다. 육 회장은 나중에 개발 허가가 쉽게 나오고 임야 가격도 오를 것이라고 판단해 공사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보상안에는 육종택 회장 땅 대부분이 강제수용 대상 토지로 정해졌다. 말죽거리 공원 토지주들은 “육 회장 땅이 소위 사고 지역으로 분류돼 이곳을 다 산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말죽거리 공원 등 관련 논란에 대해 현재 서울시는 “도시공원 일몰제 관련해서는 아직 말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앞서 말했듯 말죽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토지주와 지자체 다툼이 판박이처럼 전국구 단위로 커질 공산이 크다. 현재 전국 도시공원 토지주들이 7월 1일만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공원 일몰제 사건을 주로 수임하고 있는 한 법무법인의 변호사는 “최근 자치단체를 상대로 한 소송을 준비 중인 도시공원 토지주들이 많다. 단체 소송을 준비 중인 곳도 여러 곳이다”면서 “6월 30일 전 지자체가 강제수용이나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할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대규모 소송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한편 도시공원 일몰제 대상 토지주들은 가장 부러운 사람으로 대부분 고승덕 변호사를 꼽는다. 고승덕 변호사 부인의 회사가 이촌파출소를 포함한 이촌소공원, 꿈나무공원 등이 위치한 3149㎡(954평) 땅을 소유하고 있다. 2007년 공무원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42억 원에 매입한 고 변호사 부인 회사의 땅을 용산구가 5배가 넘는 237억 원에 매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관련기사 공원 지키려 파출소 폐쇄 택한 용산구, 공원도 못 지킬 위기).
고 변호사가 이촌동 공원을 매입한 지 12년 만에 5배 이상을 벌게 되면서 공원일몰제 대상 토지에 일부러 투자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현재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알 수 없는 데다 최근 서울시에서 ‘맹지화 전략’ 등을 들고 나온 만큼 기존 보유자 외에 신규 투자는 권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한 도시공원 일몰제 대상 토지주는 “만약 도시공원 일몰제를 통해 풀리지 않을 시 농사도 지을 수 없는 땅에 재산세만 엄청나게 내야 한다”면서 “아버지부터 몇 십 년 동안 몇 천만 원씩 재산세를 냈지만 개발로 풀릴지 안 풀릴지,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앞서의 변호사도 “리스크가 과도하게 큰 만큼 신규 매수는 자제하는 게 좋다. 오히려 팔리지도 않고 재산세만 내는 토지주가 대다수인 만큼 희망적인 면만 보는 건 금물이다”라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