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영재정상 바둑대결. 왼쪽부터 당시 신진서 초단, 이창호 9단, 변상일 2단, 이세돌 9단. 신민준 초단, 최철한 9단. 사진=사이버오로
입단한 지 얼마 안 된 어린 기사들이 반상에선 매서운 실력을 보여줬다. 가장 먼저 대결에 나선 신진서가 예상을 뒤엎고 이창호에게 완승을 거뒀다. 네이버·다음 같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떠들썩했다. 당시 바둑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초등학생 신진서가 이창호한테 이겼다면서요?”라고 묻곤 했다. 신민준도 여유만만하던 최철한을 꺾었다. 변상일에게 반집승을 거둔 이세돌만 승자 인터뷰에서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스타일은 약간 차이가 있지만, 영재기사들 바둑은 매우 비슷한 것 같다. 앞으로 자기만의 색깔과 기풍을 찾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영재들의 반란! 특히 ‘양신’이 이창호와 최철한을 무너뜨린 쿠데타는 하찬석국수배가 지속된 원동력이 되었다. 이후 8년 동안 이 대회에서 최정상 기사들이 어린 프로기사에게 축복의 세례를 내려 주었다. 대회 초창기는 주로 영재 입단자 1호 신진서와 신민준이 주인공이었다. 이후 영재 입단자가 늘어나면서 초청전에서 토너먼트 대회로 변해갔고, 한중일 영재바둑대결, 영재 vs 여자정상 연승대항전, 영재 vs 정상 기념대국 등 다양한 부대 행사로 화제가 되었다. 랴오위안허, 쉬자양 같은 중국 강자들도 대회 참가를 위해 합천을 방문했다.
제8기 하찬석국수배 결승3번기 최종국 복기 모습. 현유빈 2단(오른쪽)이 김경환 초단을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한국기원
신진서와 신민준은 이미 5년 전에 하찬석국수배를 졸업했다. 박종훈-설현준-박현수-문민종이 차례대로 영재최강자이란 타이틀을 달았다. 올해 왕좌에 앉은 주인공은 ‘현유빈’이다. 현유빈 2단은 지난 5월 6일 열린 제8기 하찬석국수배 영재최강전 결승3번기 최종국에서 김경환 초단을 제압하고 종합전적 2-1로 우승을 차지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받은 영재대회 졸업장이라 더 빛이 났다. 우승 직후 “부모님께 좋은 결과 보여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평소 애정표현을 별로 못 했는데…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나이 제한이 있는 영재대회는 마지막 출전이었다. 현유빈은 2002년생 고3생 나이다. “좋은 결과로 끝나서 기쁘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직 랭킹이 낮다. 하지만 누구와 마주해도 이긴다는 자세로 둔다. 앞으로 다른 국내대회와 세계대회까지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고향은 강릉이다. 다섯 살 무렵부터 바둑교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바둑을 처음 가르친 아버지는 이창호 팬클럽 ‘두터미’에서 3대 회장을 맡을 정도로 열혈 애호가였다. 지역에서 바둑신동으로 알려져 홍태선 전 프로에게 전문적으로 지도를 받다가 초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바둑도장에서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했다. 한종진바둑도장에서 공부하던 시절 렛츠런파크배 어린이바둑대축제에서 우승(2014년)해 전국에 이름을 떨쳤다.
GS칼텍스배 본선에서 영재선배 신진서와 처음으로 대국하는 현유빈. 사진=사이버오로
현유빈은 2016년 제6회 영재입단대회에서 입단했다. 입단 이후에도 최근까지 항상 바둑도장에 나와 원생과 똑같이 생활한다. 입단인터뷰에서 랭킹 1위와 대국을 기대했는데 소원은 5년 후 하찬석국수배를 우승하고 이틀 뒤에 이뤄졌다. GS칼텍스배 16강 상대가 랭킹1위 신진서였다. 대국 전 신진서는 “현유빈 2단은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는 기사라 포석에 강했다는 기억이 있다. 전투에서 승부를 보겠다”라고 말했지만, 실제 대국에선 초반 운영에서 신진서가 앞서며 완승했다.
현유빈의 2차 도전은 오는 6월에 있을 전망이다. 8년째 이어지는 영재정상 기념대국이 합천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현유빈은 “평소에 두고 싶었던 사범님이라 대국 자체가 영광이다. 신진서 9단의 진짜 저력은 인공지능이 알려주는 수를 벗어난 영역에서 나온다. 판단력과 수읽기 등에서 내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단판 승부라 결과가 정해진 건 아니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