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올해 초부터 준비해왔던 수사라는 게 경찰청 안팎의 얘기다. 10명의 수사관을 압수수색에 보냈는데, 경찰이 첩보를 파악한 것으로 지난 4월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첩보를 파악하고 바로 내사에 들어가 의혹이 꽤나 구체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부정청탁으로 인한 채용 비리 규모는 10명 내외로 알려졌는데, 첩보에는 청탁 대상자 가운데 고위 공무원도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수사 과정에서 채용 비리 규모가 더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법조계 관측이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LG전자 내 채용 비리 의혹 첩보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 중구 LG서울역빌딩에 있는 인사팀을 압수수색하고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이날 경찰은 마포구에 위치한 LG CNS의 상암IT센터 LG전자 서버 관리팀도 압수수색했다. 사진=연합뉴스
#LG전자, 채용비리 관련 사상 첫 압수수색
경찰이 들이닥친 LG전자 한국영업본부는 국내 영업을 맡고 있는 부서로, 본부 안에 자체 인사 조직도 두고 있다. LG전자 측은 압수수색 직후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나 쉽지 않다”며 “압수수색 혐의와 관련해 아직 확인된 것이 전혀 없으며, 따라서 관련한 입장도 밝힐 수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사상 첫 채용비리로 인한 경찰 수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경찰이 입수한 첩보에 따르면, 채용 비리가 발생한 것은 2013~2015년 사이. LG전자는 박근혜 정부 당시 고위 공무원 등의 청탁을 받고 능력과 상관없이 채용을 해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부정 채용 대상자는 10명 안팎. 4월 초에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추가적으로 내사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기소까지 할 수 있을 정도의 범죄 정황을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지능범죄수사대는 검찰로 비유하면 특수부 아니냐”며 “입증하지 못할 수사였다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첩보를 바탕으로 LG전자 전격 압수수색에 나선 경찰은 부정 채용 의혹 대상자의 이력서와 채점표 등을 확보했다. 또, LG전자의 자료 저장 서버를 관리하는 LG CNS에선 인사 기록 관련 전산자료를 입수했다. 현재 경찰은 관련 압수물에 대한 포렌식 등을 진행 중인데 경찰은 확보한 자료를 분석해 부정 채용 대상자가 누군지와 규모, 대가성이 있었는지 등을 확인할 예정이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LG전자 국내영업본부에서 인사 업무를 담당한 임직원에 대한 소환 조사도 본격적으로 나선다는 계획이다.
채용 청탁이 발생하는 구조를 보면 각 기업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이 부탁하는 사례가 많기에 대가성이 있을 수 있다. 실제 검찰의 대대적인 시중은행 채용 비리 때 청탁을 요청한 인물들은 정치권이나 금융당국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는 “채용 청탁을 요청하는 쪽은 해당 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거나, 오랜 기간 접촉하며 인연이 있는 케이스들이 대부분이었다”며 “은행들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절대 뽑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LG전자가 채용 비리를 저지른 게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로 인한 암묵적인 대가성을 고려했을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오는 대목이다. 때문에 경찰은 고위 공무원을 포함, 이들이 LG전자에 채용을 부탁하는 대신 LG전자를 위해 특혜를 준 부분이 있는지도 확인하겠다는 방침이다.
압수수색이 진행 당시의 LG서울역빌딩. 사진=연합뉴스
#아플 수밖에 없는 채용 비리
LG전자 입장에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청탁 대상에 고위 공직자가 있었던 게 드러날 경우 더 파장이 커질 수 있다. LG전자는 구체적인 내용은 함구하고 있지만 10명 이상이 추가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앞서 이미 수사를 받았던 은행들 역시 당초 의혹이 제기됐던 것보다 검찰 수사를 통해 구체적인 정황들이 더 확인됐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채용 비리는 이미 우리은행이나 신한은행 케이스에서 입증됐듯, 유죄로 판결이 나오기가 매우 쉬운 구조다. 기업 입장에서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사건”이라며 “공채 과정에서의 특정인에 대한 채용 시도가 있었다면 더더욱 그렇다”고 설명했다.
금융권 채용 청탁 비리가 잇따라 드러나면서 관계자들이 실형을 피하지 못했다. 우리은행 신입사원 채용에서 점수를 조작하는 등 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이 지난 3월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신한금융지주의 조용병 회장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 서류·면접 점수를 조작한 혐의, 합격자의 성별 비율을 3 대 1로 맞춘 혐의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또 김성태 미래통합당 국회의원의 딸을 부정 채용한 혐의를 받은 이석채 전 KT 회장도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관련 사건 변론을 맡은 적이 있는 변호사는 “기업 입장에서는 기업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라서 업무 방해 등을 적용하는 것도 조금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하지만, 법원은 최근 채용난 등을 감안해 무겁게 처벌하는 경향이 있다”며 “적극적으로 지시를 했다면 실형, 이를 보고 받고 묵인했다면 집행유예라고 예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법조계는 ‘보고를 들은 사람까지 처벌받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기업에게 뼈아픈 부분이라고 진단한다. 앞선 검사는 “은행의 경우, 채용 청탁이 임원에게 들어오면 해당 임원은 정당한 절차가 아니라는 점을 알기 때문에 이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더라”며 “결국 이를 은행장에게까지 보고하고 은행장의 지시를 통해 결정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임원진들이 수사를 피할 수 없었는데 LG전자라고 크게 다르겠느냐”고 반문했다. 보고가 있었다면 이를 허락한 최고 간부진까지 처벌받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