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은영’으로서 데뷔작 ‘초미의 관심사’에서 그는 쿨한 언더그라운드 가수 블루 역을 맡았다. 사진=레진스튜디오 제공
“연기를 언젠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어릴 때부터 가끔 하긴 했어요. 하지만 ‘이걸 이렇게 계획해서 이때쯤 딱 해야지’ 하는 구체적인 건 없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빨리 기회가 찾아온 거죠. 저는 제 이미지가 뭔가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하고, 이 신에 있든 저 신에 있든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여기서든 저기서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연기에 도전한 것도 그런 이미지를 위한 한 방법이었고요.”
김은영은 오는 27일 개봉하는 영화 ‘초미의 관심사’에서 쿨한 언더그라운드 가수 ‘블루’ 역을 맡아 철부지 엄마 역의 조민수와 합을 맞췄다. 첫 연기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조민수’에게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보인다. 지난 5월 18일 진행된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치타 아닌 김은영을 다시 봤다”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제작사인 레진스튜디오에서 ‘모녀가 돈을 들고 튄 막내를 찾아 하루 동안 이태원을 누비는 영화’를 구상하던 차에 제 음악을 듣고 영화와 비슷한 지점이 많다고 느꼈대요. 그래서 영화 음악을 만들고 추가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직접 출연하는 건 어떠냐’는 제안이 왔어요. 처음엔 너무 갑작스럽기도 했는데 관심도 막 생기더라고요(웃음). ‘맞아, 나 연기에 도전하고 싶었지!’ 하면서… 영화를 보면 편견 속에 살 수 있는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주인공들이 그들을 지나치면서도 관객들에게 이해를 강요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보다 그냥 평범한 동네 사람들 대하듯 하는 지점들이 나와요. 그걸 보여드리고 싶었고, 또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서 스토리에 흥미를 가졌어요.”
극중 김은영은 철부지 엄마 역의 조민수와 첫 합을 맞추면서도 그의 아우라에 기죽지 않는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사진=레진스튜디오 제공
“영화 속에서는 이태원이 참 활발하게 돌아가잖아요. 지금으로부터 1년도 더 전인 촬영 당시를 생각하면, 그때는 코로나19가 올 줄 몰랐는데(웃음).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때의 그 활발하고, 사람 많고, 활기찬 모습을 다시 영화로 접하니까 오히려 저는 좀 더 우리가 이걸(코로나19를) 빨리 이겨내고 저런 이태원을 다시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영화에서는 캐릭터들이 다들 활력 넘치고, 막 뛰어다니고, 감정을 계속 표출하고 이런 모습을 보이잖아요? 그걸 보시면서 지금 시국의 답답한 심정이 조금은 해소가 되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어요.”
영화 ‘초미의 관심사’는 김은영에게 애착이 가는 작품일 수밖에 없다. 배우로서 첫 작업, 자작곡으로 OST(배경음악)를 채운 것도 그랬지만 이 작품은 김은영에게 ‘핑크빛’을 안겨준 징검다리기도 했다. 연출을 맡은 남연우 감독과 연인으로 발전한 것이 ‘초미의 관심사’를 촬영하면서라고.
“감독님이 작품에 합류하고 나서 제가 좀(웃음)… 자꾸 마음이 가는데 혼자서 ‘안 돼, 너 이거 너무 프로답지 못한 거야. 마음아 이러면 안 돼, 들어가!’ 했는데 막을 수가 없더라고요(웃음). 연인 고백이랄 건 없었고 같이 술을 마시면서 영화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딱 느껴졌어요. 제가 술이 엄청 강한데 한 병 마시고 취하더라고요. 아, 사람한테 취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연인이 됐는데, 이걸 숨겼을 때 나중에 다들 알게 되면 수습하지 못하거나 감정이 서로 상할 수 있으니까 촬영 함께하시는 분들에게 오픈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조민수 선배님께 처음 말씀 드렸는데 들으시자마자 ‘뭐야~’ 하시면서 ‘일단 축하는 해. 축하는 하는데 일에 지장 있게는 하지 말자!’ 하시더라고요(웃음).”
‘초미의 관심사’는 김은영에게 의미가 큰 작품이다. 배우로서 데뷔작이기도 하고 연인을 만나게 해준 징검다리기도 하기에. 사진=영화 ‘초미의 관심사’ 스틸컷
남연우 감독과 김은영은 MBC 예능 ‘부러우면 지는거다’에 새 커플로 합류하기도 했다. 이제까지 ‘치타’로서 각종 음악 방송에서 트레이너와 멘토 역할로 출연했던 것과 사뭇 다른 캐릭터를 보여줄 참이다. 전혀 다른 성격의 프로그램이니만큼 오랫동안 망설였지만 결과적으론 좋은 결정이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처음에 섭외 들어왔을 땐 거절했어요. 너무 사적인 이야기를 공개하는 게 과연 필요한 걸까 생각했는데, 두 번째 요청이 들어왔을 땐 다른 식으로 바라보자,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한번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사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우리의 인생에서 어쨌든 빛나는 지점인데 기록할 수 있다는 게, 그렇게 된다면 우리에게 참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다만 너무 둘이서 꽁냥꽁냥 붙어 있고, 아름다운 연인의 그림, 그런 방향으로 안 나갔으면 좋겠다, 했죠. 그건 너무 거짓말이니까(웃음). 제가 고민했던 것과 달리 엄마는 ‘나가면 되지, 연애해서 결혼할 것도 아니고 그 안에 갇힐 것도 아니고. 가둔다고 갇힐 거니 네가’ 그러시더라고요(웃음). 감독님도 출연 전에 많이 고민했는데 저희 엄마가 ‘(방송으로 보여주는 것) 그게 효도다, 나가라. 부모님이 진짜 좋아하실 거다’라고 말씀해주신 게 컸다고 해요.”
래퍼 치타에서 배우 김은영으로 이어지는 삶에서 불거진 편견에 대해 그는 굳이 맞서겠다는 대단한 각오 없이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된다’고 말했다. 사진=영화 ‘초미의 관심사’ 스틸컷
조금씩 무대의 판을 넓혀가고 있지만 김은영의 삶은 보이는 것만큼 순탄하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도 ‘남자들의 무대’로 여겨지는 힙합 신에서 시작해 이른바 ‘헤이터’들을 마주하며,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편견 속에서 지금 자리까지 올라오는 데는 아직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쌓여 있을 법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편견을 맞서는 데 거창한 각오는 필요하지 않았다.
“처음에 ‘언프리티 랩스타’에 나갔을 때 대중 반응이 ‘숏커트가 이상하다’ ‘메이크업이 너무 세 보인다’ ‘무섭다’ ‘예쁘지 않다’ 뭐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딱히 그런 편견이나 부정적인 반응 같은 걸 막 맞서서 헤쳐 나갔다기보다 고집 부리듯이 남들이 익숙해 하지 않아도 그냥 저 혼자 계속 하는 방식을 택했어요. 숏커트도 얼마나 편한데요. 샴푸만 써도 되고, 긴 머리면 말리고 신경 써야 할 텐데 그런 일이 줄었다는 것만으로도 제가 랩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고 좋은 부분이 많거든요. 그런 좋은 점을 어필하면서 그냥 해온 거죠. 지금도 보시면 ‘래퍼가 갑자기 연기를 해?’ ‘랩 하던 치타가 갑자기 노래를 해?’ 하는 편견이 있을 수 있는데, 저는 그냥 하면 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아마 ‘초미의 관심사’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현실적인 상황도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