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시선은 다르다. 채용 비리 등 각종 은행 내부 사건사고를 ‘개인의 잘못’으로 덮고 넘어가면서, 정작 법률 소송비용을 은행이 지원했다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시선이다. 이미 효성그룹 조현준 회장이 회사 돈으로 변호사를 선임했다가 횡령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기소됐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시중은행들에게 법률 자문 비용 처리 내역 제출을 요구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대대적 수사에 모든 시중은행들 기소
처음 은행권 채용 비리 의혹이 제기된 것은 2017년 10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우리은행 채용비리 추천인 명단’을 공개하면서부터다. 우리은행은 부인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과 국가정보원과 같은 국가기관이나 거래처 등 외부기관의 청탁자 명단까지 관리하면서 지원자들 합격 여부를 결정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자연스레 수사는 확대됐다. 금융당국은 시중은행들에 대한 채용 비리 전수조사에 나섰다. 그 결과 신한은행, 국민은행, 하나은행 등의 검은 내막이 드러났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전국 6개 지방검찰청을 통해 국민·하나·우리·부산·대구·광주은행 등 시중은행의 채용비리를 수사해 12명을 구속했고, 2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은행권을 통틀어 30명이 넘게 기소된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은행장이 기소되지 않은 곳은 KB국민은행밖에 없을 정도로 고위급 임원들이 ‘청탁 루트’였다는 점이 드러난 사건이기도 했다.
가장 먼저 의혹이 제기됐던 우리은행 신입직원 채용비리 혐의 관련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은 징역 8월을 선고받았고, 최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사진=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은행들은 수십억 원이 넘는 돈을 법무법인에 지불해야 했는데 금감원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올해 초 시중은행 감독 명목으로 법률자문 비용 처리 내역 제출을 요구한 것이다. 금감원이 요청한 자료는 2017년 이후 법률 자문 의뢰내용 및 지급비용과 임직원 소송비용 지원 현황 등이다. 대외적 명분은 모니터링 차원에서 개별 은행들의 법무법인 선정 절차 및 자문 내역을 확인하겠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관련 비용이 부적절하게 사용된 게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뜻이다.
은행권에서는 당장 볼멘소리가 나온다. “개별 기업이 특정 사건에 대해 어떻게 비용을 잡고 자문 및 변론을 하는지 오픈하라는 것은 다소 과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의 요구가 법무법인 및 기업의 영업 비밀을 침해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하지만 금감원의 이 같은 자료 요청이 필요하다는 시선도 적지 않다. 특히 법조계에서는 ‘기업 측의 법률비용 지원’이 공공연한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채용 비리 사건의 경우, 임직원이 회사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인데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10억 원이 넘는 법률 비용을 은행이 지원했다면,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몇몇 은행은 임직원 개인비리 관련 사건을 저렴하게 변호해주는 대신, 법률 자문 비용을 높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대납’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사실 법률 자문을 활용한 대납은 기업 오너 일가를 위해 사용하는 공공연한 수법이다. 대형 로펌과 법률 자문은 큰 금액으로 계약하고, 사건에 대해서는 개인으로 계약한 뒤 금액을 적게 처리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받는 것이다. 기업에 손해를 끼친 사건의 경우 변호사 비용이 회사에서 들어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것을 알기 때문에 해왔던 조치이기도 하다. 때문에 대부분의 대형 로펌은 입금조차도 ‘사건 개인명의’로만 받고 있다.
검사 출신의 전관 변호사는 “오너나 임직원 개인의 범행을 기업 차원에서 법률 비용을 내주려 할 때 가능한 방법이 기업의 법률 자문을 계약해 금액을 높게 받고 대신 개별 사건은 저렴하게 해서 받는 방식이 가능하다”며 “많은 기업들이 임원 관련 사건을 할 때 하는 방법인데 엄격하게 보면 모두 회사에 피해를 주는 횡령이나 배임에 해당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금감원이 요구한 자료들 역시 법률 자문을 받은 것에 비해 비용이 적절했는지, 개별 임직원 비용 지원이 과도하지 않았는지를 볼 수 있는 것들이어서 고발 등 추가적인 조치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우리나라가 오너 중심의 기업 경영 체계를 가지고 있다 보니 회사 돈을 자유롭게 끌어다 쓰는 측면이 있다”며 “최근에는 라임자산운용 관련 사건으로 법무법인을 찾은 은행들도 한둘이 아니다. 다들 법률 자문 계약을 맺고 수사를 대비 중인데, 금감원이 최근까지 범위를 넓혀서 자료를 찾아낸다면 문제가 더 커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