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리얼돌’ 논란은 현재 K리그의 모든 이슈를 집어 삼켰다. 사진=연합뉴스
#모든 이슈 뒤덮은 ‘리얼돌’ 논란
독일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세계 대부분 스포츠 리그가 중단된 상황에서 KBO 리그처럼 K리그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K리그1 1라운드에서 나온 조재완(강원 FC)의 일명 ‘회오리감자슛(360도 회전과 동시에 발뒤꿈치로 슈팅)’은 국제축구연맹(FIFA) 소셜미디어에 소개될 정도다.
2라운드 이슈도 충분했다. 2018시즌 22골(득점 3위), 2019시즌 19골(득점 2위)로 ‘득점왕 3수생’ 공격수 주니오(울산)는 2경기 연속 멀티골로 쾌조의 스타트를 보였다. 그의 팀 동료 이청용은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하며 남다른 ‘클래스’를 과시하고 있다. K리그2에서는 연이어 예측을 벗어나는 결과가 나오면서 흥미를 더했다.
하지만 K리그1 2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벌어진 한 사건으로 많은 것들이 묻히고 있다. 지난 17일 저녁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 서울과 광주 FC의 경기에서 일어난 ‘리얼돌’ 논란은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고 있다. 무관중 경기로 리그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홈팀 서울이 관중석에 배치한 마네킹이 논란을 낳은 것이다.
이적생 한찬희(가운데)가 결승골을 넣으며 기록한 서울의 시즌 첫 승은 리얼돌 논란으로 잊혀졌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리얼돌 논란의 전말
국내 프로 스포츠는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관중 없이 경기를 치르고 있다. 각 구단은 경기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서울의 선택은 ‘마네킹’이었다.
경기가 열린 지난 17일 저녁, 서울월드컵경기장 남측 관중석에는 마네킹 30개가 설치됐다. 마네킹에는 구단 유니폼과 운동복 등이 입혀졌고 손에는 ‘박주영 파이팅’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경기를 마치기도 전에 온라인에서 남다른 반응이 있었다. 일반적인 마네킹이 아닌 이른바 ‘리얼돌’로 불리는 성인용품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중계방송과 보도사진을 본 팬이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설치된 마네킹 30개 중 28개가 여성의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신체 굴곡이 일반 마네킹에 비해 과장되게 표현됐다. 게다가 일부 마네킹에는 구단 의류가 아닌 다른 옷이 입혀진데다 성인용품 업체명이 적혀 있었다. 응원 피켓, 머리 장식 등에도 각기 다른 업체명이 적혀 있었다.
경기장에 설치됐던 마네킹은 ‘프리미엄 마네킹’이라는 구단의 주장과 달리 결국 ‘리얼돌’의 일종으로 판명났다. 제조사는 설립 당시 성인용품 개발이 목적이었으며 이날 경기장에 배치한 일부 물품은 성인용품 업체에 납품하기 위해 샘플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 찾을 수 있는 이들의 홈페이지에는 모두 ‘성인용품을 제작(또는 판매)한다’는 홍보 문구가 전면에 있었다. 이들은 중국 리얼돌 제조업체와도 협업 관계를 맺고 있다. 이날 일부 마네킹의 옷과 피켓, 머리띠 등에 새겨져 있는 업체들의 로고가 고스란히 노출됐다.
방송과 보도 사진에 노출된 업체 홈페이지에는 “우리는 리얼돌을 만들고 전 세계에 판매하고 있다”고 소개돼 있다.
서울 구단은 경기가 끝난 직후 이례적으로 경기장을 찾은 기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해명을 하며 진화에 나섰다. 이튿날에는 “성인용품과 전혀 연관이 없는 제품이라고 처음부터 확인했다”는 공식 입장도 내놨다.
하지만 구단 측이 주장하는 ‘확인’에는 많은 물음표가 달렸다. 업체와 사전 협의 과정, 경기 당일 설치 과정에서도 의심을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의구심이 뒤따랐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보다. 마네킹 협찬을 받으면서 일종의 광고비도 받은 것 아니냐. 그렇지 않고서는 상황이 말이 안 된다”며 비난의 날을 세우기도 했다.
결국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칼을 빼들었다. 연맹은 지난 20일 오후 상벌위원회를 열고 서울이 리그 명예를 심각하게 실추했다고 판단해 제재금 1억 원의 중징계를 내렸다. K리그 역사상 최고 액수다. 연맹은 “서울이 고의는 아니지만 소개받은 물건이 ‘리얼돌’임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업체 관계자 말만 믿고 별다른 의심 없이 제공받았다”며 징계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언론을 통해 일부 공개된 업체 제안서에는 ‘성인용품으로 보일 수 있는 우려가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이날 징계 내용을 발표한 연맹 이종권 홍보팀장은 “서울 측 입장은 업체가 리얼돌이라고 미리 인지시킨 것은 아니라는 것”이라며 “(비용 없이 진행된 협찬이기 때문에) 계약서 없이 진행한 것으로 안다”고 광고비 수령 가능성을 일축했다. 오히려 업체로부터 피해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서울 구단은 연맹 징계에 앞서 다시 한 번 팬들을 향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시즌에 앞서 서울 구단은 기성용 영입과 관련해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며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번 논란을 보고 한 팬이 남긴 ‘(기)성용이 형을 데려오라고 했더니 성인용 인형을 갖다 놨네’라는 지적을 보는 이들의 씁쓸함만 더하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