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의무관리 공동주택. 사진=김창의 기자
[일요신문] 아파트 관리소장이 가입한 단체의 회비를 입주민이 부담해야 하느냐를 두고 아파트가 뜨겁다. 주택관리사 협회비 얘기다. 상당수의 아파트에서 관리소장이 가입한 주택관리사협회의 회비를 아파트 관리비로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는 주택관리사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주택관리사 자격자 5만 8000명 중 3분의 1 정도인 2만여 명이 가입해 있다. 회원 수로는 주택관리사 관련 단체 중 첫손에 꼽힌다. 회원 2만 명 중 회비를 내는 회원은 1만 2000명 수준이다. 회비는 가입비 20만 원과 연 18만 원의 정기회비로 구성된다. 주택관리사협회는 “연간 15억 원에서 18억 원가량”의 회비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1월 국토교통부는 질의회신을 통해 ‘주택관리사 협회비는 협회 가입자가 부담할 성격의 비용으로 관리비로 부담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해석을 내렸다. ‘입주민이 부담하길 원한다면 관리규약을 개정해 복리후생비로 지원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는 여지는 남겼지만, 개인이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국토부는 2018년과 2016년 그리고 그 전에도 ‘주택관리사 등의 협회비는 공동주택 관리를 위한 직무수행이나 자격 유지를 위한 의무사항으로 볼 수 없다’며 협회비 지출 관행에 제동을 걸어왔다.
국토교통부는 공동주택 관리를 총괄하는 주무 부처다. 공동주택관리법에 의해 주택관리사협회에 대한 지도 감독 권한도 가지고 있다. 주택관리사협회는 관리비의 협회비 지출이 부적절하다는 국토부 해석을 관리소장 회원들에게 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개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선 이 내용을 모르고 있거나 소식을 듣고도 관리비 지출을 이어가는 곳이 적지 않다.
국토교통부 주택건설공급과는 본지에 “주택관리사 협회비를 관리비로 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다른 의무교육과 유사하게 교육훈련비로 처리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협회비는 교육비와는 성격이 다르다”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아파트에는 소방, 전기, 시설 등 관리자가 받아야 하는 의무교육이 있다. 이 교육비용은 사용자인 아파트 입주민이 부담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정부의 판단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협회비의 경우는 엄연히 교육비와 다르다는 게 확고한 정부 입장이다. 국토부는 수년간 교육비는 관리비로, 협회비는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고 말해왔지만 현실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주택관리사협회가 아파트 관리소장에게 보내는 협회비 납부 협조 요청 공문.
그동안 소장 협회비가 관리비에서 나갔다는 걸 알게 된 입주민들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반응이다. “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소장을 채용하면 되겠다”는 얘기도 나온다. 반면 관리소장 중에는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관리규약을 개정해 해당 단지 소장의 협회비를 지원하는 체계를 만들었다는 사람도 있다. 같은 사안을 바라보는 입주민과 관리소장의 온도 차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주택관리사협회 회원 중에는 자비로 협회비를 내는 관리소장들도 있다. 이들은 “떳떳하게 본인이 내면 된다. 언제까지 아파트에 손을 벌릴 생각인가”라고 소신 발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소장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관리비 지출은 오래도록 묵은 관행이기 때문이다. 주택관리사협회에 회원이 자비로 협회비를 내는 경우와 아파트 관리비로 내는 비율에 관해 묻자 “양쪽을 구분해서 집계하기 어렵다”며 밝히지 못했다.
협회비 지출과 관련해 전국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연합회 김원일 수석부회장은 “협회에 가입하지 않고도 훌륭하게 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소장들이 많다. 주택관리사 협회에 가입하는 것이 소장의 자유이듯 회비도 소장 개인이 부담하면 된다”고 했다. 김 부회장은 “소장들의 복리나 급여와 관련한 부분은 동대표들이 도와줄 의향이 있지만 입주민 모르게 관리비로 회비를 지출해온 것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주택관리협회 김철중 사무총장도 “국토교통부의 명백한 해석이 나온 사안을 따르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 개인이 내야 하는 협회비를 공금인 관리비로 지출해 입주민에게 부담을 주는 건 부당하다고 본다”고 했다.
관리비 지출에 부정적인 의견은 주택관리사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44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한국 관리소장협회 강영만 소장은 “협회비를 관리비로 내는 건 지금 시대와 맞지 않다. 입주민들이 알게 된다면 과연 얼마나 동의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협회에 가입하고 본인이 효과를 체감하면 떳떳하게 자비로 내면 된다”라고 했다.
강 소장은 “한국 관리소장협회는 평생 가입비로 1만 원을 받고 이후 회비는 받지 않는다. 관리소장들이 스스로 모여 교육하고, 교육비도 자비로 낸다. 공정이 중요한 시대다. 입주민의 신뢰를 얻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 아파트의 협회비 지출 내역, 의무 납부 사안이 아님에도 법정 연회비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협회비에 대해 법정교육이 아니며 관리비 지출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 지침에 반하는 관행이 이어지는 이유는 자기 돈보다 관리비 사용을 바라는 관리소장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다른 한편으로는 입주민과 동대표들이 공동주택 관리 법령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관리비를 꼼꼼히 감시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다. 따라서 입주민과 관련 단체들은 국토교통부가 명확히 법으로 허용, 불허 여부를 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편 주택관리사협회 정책기획팀 김기철 차장은 “주택관리사협회는 운영 재원을 회원의 회비에 두고 있다. 회비 문제를 재검토하기 위해서는 다른 기술자격자 단체처럼 경력증명 등 재원 마련에 대한 방안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김 차장은 “그리고 협회는 회비의 출처에 대해 권장할 뿐 강요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창의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