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걸스의 맏언니 유빈이 13년간 함께한 JYP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마무리하고 새 회사 ‘르엔터테인먼트’의 CEO가 돼 컴백했다. 사진=르엔터테인먼트 제공
#회사를 차릴 용기
“JYP에 있으면서 많은 걸 배웠기 때문에 이렇게 회사를 차릴 용기가 생기지 않았나 싶어요. 한편으론 같이 하는 직원 분들이 워낙 베테랑이셔서 제가 오히려 더 배워가는 입장이기도 하고, 오히려 제가 이름만 대표지 부하가 아닌가(웃음)…. 그래서 제가 ‘넵, 넵’ 이 말을 진짜 많이 하고 있거든요. 예전에는 넹~ 하면서 물결 표시, 알았습니당~ 하는 ‘이응’을 많이 썼던 것 같은데 지금은 넵! 하면서 느낌표를 많이 쓰는 느낌이에요(웃음). 그래서 저도 더 많이 공감하면서 가사를 썼던 것 같아요.”
유빈의 새 디지털 싱글 ‘넵넵(ME TIME)’은 ‘네’ 라고 하기엔 왠지 눈치가 보이는 사회인들, 이른바 ‘넵 병’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위로 송이다. 듣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도록 구성된 노래의 짜임새도 그렇지만 뮤직비디오나 이번 활동의 콘셉트만 봐도 “유빈답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와 인생 절반을 함께 하면서 가족 이상으로 유빈을 잘 안다는 원더걸스의 멤버들도 하나같이 이런 반응이었다고 했다.
“멤버들한테 들려줬더니 ‘유빈 언니스럽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우리가 알던 유빈 언니 그대로인 것 같아’라고 해줘서 좋았어요. 아무래도 멤버들은 저에 대해 잘 아니까요. 같이 그룹 활동을 할 때부터 저희는 서로 취향이 확실했거든요. 선미도 지금 하고 있는 음악 느낌을 되게 좋아했고, 예은이나 저, 혜림이도 각자 취향이 아주 확고했기 때문에 서로 솔로 앨범을 듣고 ‘음, 선미스럽다’ ‘예은이네’ 이런 생각들이 다들 당연하게 들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더 멋있어요. 본인이 하고 싶은 걸 드러내는 모습이. 그걸 보고 저도 용기를 내서 계속 할 수 있었던 거고.”
유빈의 새 디지털 싱글 ‘넵넵(ME TIME)’은 ‘네’ 라고 하기엔 왠지 눈치가 보이는 사회인들, 이른바 ‘넵 병’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위로 송이다. 그 어느 앨범보다 ‘유빈스러운’ 자유분방함이 담겼다고 했다. 사진=르엔터테인먼트 제공
유빈의 이번 컴백에는 다양한 변화가 녹아 있다. 솔로 활동은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첫 보금자리였던 JYP엔터테인먼트를 떠나 온전한 홀로서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본인이 CEO이자 현재 활동하는 유일한 소속 가수로서 두 가지 일을 병행하기엔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유빈이라고 해도 가끔은 힘에 부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중 가장 힘이 들었던 부분을 꼽자면 ‘버짓(budget‧예산)’을 정하는 것이라고 진지한 얼굴로 몇 번이고 강조했다.
“처음에는 멘붕(멘탈 붕괴) 올 뻔했어요. 회사를 꾸리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을 꼽자면 아무래도 CEO로서 저와 아티스트로서 제가 버짓을 놓고 갈등을 빚는 게 아닐까요(웃음). 현실적인 문제와 저의 니즈를 메우는 과정이 복잡하고 어려웠는데, 결국에는 CEO로서 제가 손을 들고 있더라고요. 손이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에요(웃음). 최대한 정해진 시간 안에 촬영하고, 더 많이 돈이 나갈 것 같은 부분을 줄이고 줄여서 한꺼번에 나가고, 세트도 최대한 줄이려 하고, 그런 것들이 있더라고요.”
그래도 일단 작품을 완성해 놓고 나니 만족스럽다는 자평이 나왔다. 100점 만점으로 대자면 ‘셀프 토닥토닥’ 느낌으로 98점이라는 게 그의 이야기다.
“제가 저를 되게 사랑하는 편이거든요(웃음). 셀프 만족도를 따지면 약간 점수를 높게 주고 싶어요. 저를 토닥토닥 해준다는 느낌으로 98점….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75점 정도이지 않을까요? 이번 컴백을 준비하면서 뮤직비디오 촬영이나 장르, 콘셉트를 모두 제가 다 컨펌을 해야 하다 보니까 너무 어렵고 힘들더라고요. 하지만 처음 한 것 치고는 정말 많이 만족하는 편이에요. 당연히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으니까, 이번에 한 번 해봤으니 다음엔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도 생겨요.”
최근 후배 걸그룹들에 관심이 많아졌다는 유빈은 새로운 아티스트 영입에도 열정을 보였다. 사진=르엔터테인먼트 제공
안에서는 CEO지만 밖으로 나가면 유빈은 까마득한 선배 가수다. 가요계에서 5월 대거 컴백에 중견급(?) 아이돌들도 나선다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에 활동했던 유빈의 경력에 댈 수 있을 만한 이들은 별로 없다. 유빈 역시 그 점이 마음에 걸린다면서도, 친해지고 싶은 후배들을 묻는 질문에는 거침없이 손가락을 꼽아가며 나열하기 시작했다.
“저는 그래서 최대한 대기실 밖을 안 나가요(웃음). 혹시 후배들이 불편할 수도 있잖아요. 저도 인사를 받는 게 아직은 많이 어색하거든요. 친해지고는 싶은데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참…. 저 요즘 오마이걸에 푹 빠져서 덕질하고 있는데요, 지호 씨 너무 좋아합니다. 그리고 저랑 이름이 같은 비니 양도 좋아하고, (여자)아이들의 민니 양, 마마무도 너무 멋있고 그래요. ‘퀸덤’ 때문에 덕후(팬)가 됐거든요(웃음). 그리고 요새 타이거JK 선배님 회사에 비비 씨도 노래가 아주 좋아서 유튜브를 열심히 찾아서 보고 있어요. 덕질에 엄청 빠져 있는 것 같아요.”
동종업계 종사자들에게 이처럼 깊은 관심을 갖게 된 데는 그가 CEO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어 보인다. 원더걸스로 함께 활동했던 혜림을 영입한 유빈은 ‘매의 눈’으로 다음 영입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도 매력 넘치는 분들이 계시면 당연히 영입할 거예요. 혜림이의 경우는 다른 회사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인 친구고, 더 좋은 회사에 갈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제가 혜림이의 매력 포인트를 가장 잘 알기 때문에 더 잘해주고 싶었고, 또 그런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매력 있는 아티스트라면 신인이라도 상관없이 영입하고 싶어요. 가수, 배우, 아나운서, 코미디언, 유튜버 등 정말 자기가 즐거운 걸 다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 좋겠어요. 서로 좋은 영향을 주는 회사, 요즘에 유행하는 살롱 같은 느낌의 공간이 됐으면 해요.”
이번 ‘넵넵’에서 유빈은 “저의 다양한 표정을 보실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높였다. 사진=르엔터테인먼트 제공
완벽한 경영자 마인드를 갖추긴 했지만 당분간은 CEO보다 ‘가수 유빈’으로서 활동에 주력할 참이다. 이번 ‘넵넵’으로 그는 “자신을 많이 내려놓은 유빈을 보실 것”이라며 기대감을 높였다.
“저의 정말로 다양한 표정들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못생긴 표정도 물론 들어가 있죠. 저를 아예 내려놨거든요(웃음).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드리려면 그 방법밖에 없더라고요. 그리고 이번 활동에서는 그야말로 ‘무대에서 노는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아마 제 데뷔 이후 처음으로 보시는 게 아닐까요? 예전에는 항상 다 짜인 동선에서 움직였다면, 이번에는 연습 내내 ‘와 우리 진짜 즉흥적이다’ ‘정말 우리 마음대로 논다’ 하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어요. 기대해주셔도 좋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