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대전지법 천안지원 제10민사부(주심 윤재필 판사) 심리로 진행된 천안시체육회장 직무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 심문기일에서 재판부는 지난 4월 9일과 27일 있었던 선관위의 제5차, 6차 회의 녹취록 제출을 천안시체육회에 명령했다. 이는 채권자인 김병국 전 체육회 상임부회장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이 녹취록에는 당시 천안시체육회장 선관위의 회의 과정에서 선거인의 자격 유무 확인과 한남교 현 천안시체육회장에 대한 당선 무효 이의 제기 신청이 묵살된 과정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선관위 측은 선거 결과에 대한 이의 제기 신청을 ‘선거인 명부 작성에 대한 이의 신청’으로 자체 판단해 각하한 바 있다.
이와 더불어 김 전 부회장은 재판부에 2019년과 2020년 각각 연초에 열린 체육회 산하 50여 개 종목 단체의 정기총회 회의록 제출도 요청했다. 각 단체의 총회를 통해 선출된 대의원이 지난 4월 3일 선거에 참여한 선거인과 동일한 인물인지를 가리기 위함으로 파악된다.
이 사건은 지난 4월 3일 진행된 천안시체육회장 재선거에서 선거권이 없는 ‘유령 대의원’들이 대거 선거에 참여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소송전으로까지 비화된 것이다. 현재까지 일요신문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 천안시체육회가 인준해 보관하고 있는 대의원 명부는 2018년 8월자 확정 후 변경되지 않았다. 대의원이란 시군구 종목단체의 장 및 시군구 종목단체 산하 각 동호인클럽의 장 또는 연맹체의 장, 읍면동장을 말하며, 이번 민선 지방체육회장 선거에서 선거권을 갖는 선거인으로 선정될 수 있다.
그런데 천안시체육회가 인준한 대의원 명부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 대의원’들이 대거로 이번 선거에 참여한 것이 드러나자, 재판 과정에서 한남교 천안시체육회장 측의 소송대리인은 “2018년 이후로 대의원이 임기만료, 사퇴, 사망, 탈퇴, 다른 지역으로의 전출 등 사유로 얼마든지 변경될 수 있으므로 2018년도의 대의원 명부를 기초로 이 사건 재선거를 위한 선거인을 확정하고 선거인 명부를 작성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체육회가 인준한 대의원 명부에는 없더라도 선거 당일 기준으로는 대의원 자격을 보유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선거 참여에 어떤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들의 ‘대의원 자격’의 여부 자체가 문제가 됐다. 실제 천안시체육회에 준용되는 규정에 따르면 대의원은 각 단체 내의 총회를 통해 구성하되, 체육회에 이를 보고해 승인을 받도록 돼 있다. 반면 이번 선거에 선거인으로서 참여했다는 대의원들의 대다수가 체육회에 보고되거나 승인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 탓이다.
이번 선거에 앞서 대한체육회가 각 지방체육회에 전달한 ‘민선 체육회장 선거 관련 Q&A’에도 각 시군구 종목단체의 대의원은 체육회의 사전 승인을 얻어야만 대의원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선거인으로서의 자격이 주어지는 대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출 직후 체육회에 보고해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의원이 임기 중에 교체된 경우에도 마찬가지인 의무 조항이다.
특히 이번에 첫 민선으로 전환된 선거에서 ‘선거권’은 대리인에게도 위임되지 않을 정도로 그 권리 행사에 엄격함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체육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는 규정을 지키지 않고 각 단체가 임의대로 선출한 대의원에게 선거권이 부여될 수 있는지에 의견이 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 종목단체 관계자는 “체육회가 승인조차 하지 않은 대의원이 언제, 무슨 이유로 선출됐는지 제대로 보고도 하지 않아 전혀 내막을 알 수 없다”라며 “선거 직전에 누군가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과를 이끌기 위해 대의원 명단을 조작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법정에서 철저히 시시비비를 가렸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실제로 재판에서 채무자 측이 이번 선거에 활용했다는 증거로 제출한 각 종목단체의 대의원 명부에서는 2017년 대의원으로 선출됐다면서도 천안시체육회가 보유하고 있는 2018년 대의원 명부에 없는 인물도 있었다. 또 개인 사정으로 이번 선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인물도 대의원과 선거인 명부에 포함시킨 것으로도 확인되는 등 급조 의혹이 불거질만한 자료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안시체육회장과 체육회를 상대로 직무정지가처분 및 본안 소송을 제기한 김병국 전 천안시체육회 상임부회장은 이에 대해 “어린 아이들 반장 선거를 해도 절차와 규정에 맞춰 공정하게 진행하는데 하물며 10만 천안시 체육인들의 자존심을 건 첫 민선에서 이 같은 부정이 발생한 것에 유감을 표한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는 단순한 ‘규정 미준수’ 또는 운영상의 실수로 판단할 만큼 작은 문제가 아니다. 상급 기관인 체육회가 인지하지 못한 대의원을 임의대로 선출한 뒤 선거인으로 선정했다는 것은 이를 2018년 대의원 명부와 대조해 확인조차 하지 않은 선관위는 물론, 각 종목단체에도 책임을 물어야 할 정도의 심각한 사안”이라고 짚었다. 그런 뒤 “체육회의 규정은 종목단체의 규약에 우선하고, 일부 준용할 수 없거나 해석이 불분명한 사안에 대해서도 체육회가 정한 바에 따르도록 돼 있다. 대의원으로서 필수적인 체육회 승인 규정을 지키지 않은 이들의 선거권 행사가 부정행위일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가처분 사건의 결정은 오는 6월 초 내려질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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