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모 KT 신임 사장이 취임 두 달을 맞은 가운데 그룹의 비전 제시가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KT가 통신업 외에 힘을 쏟은 금융과 부동산 사업은 관광객과 소비가 감소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KT에스테이트는 KT의 유휴 전화국 부지를 활용한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고 있다. 안다즈 강남 호텔, 신라스테이 역삼, 개발 중인 송파 소피텔 등 특급호텔이 KT에스테이트 소유다. 금융 사업 부문은 KT가 출자한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 BC카드 등을 통해 하고 있다.
실적 하락에도 KT의 주력 사업은 흔들림없이 추진되고 있다. 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개점 휴업 상태였던 케이뱅크는 인터넷은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BC카드가 증자에 나서면서 사업 재개에 물꼬가 트였다(관련기사 우회증자로 숨통은 텄지만…구현모 KT 사장의 케이뱅크 해법은?). 부동산 사업은 당장 실적이 나오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유휴 부지의 개발 가치가 높아 수익성이 높은 분야로 평가받는다.
취임 두 달이 되는 구 사장은 외부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신임 사장이 경영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간 KT가 추진해온 사업들이 본궤도에 오른다고 해도, 전임 회장들이 추진해온 사업이라 오롯이 구 사장의 업적으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아직 구 사장의 관심분야나 핵심 추진 과제 등이 구체화된 바 없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구 사장은 지난 4월 혁신을 전담하는 BDO(Business Development&Operation)그룹을 출범시켰다. BDO그룹은 300여 명으로 구성한 프로젝트 조직으로, 혁신사업과 관련한 조사 업무를 담당한다. 하지만 BDO그룹에서는 순수하게 조사업무를 하고 있어 당장 그룹의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것과 거리가 있다.
구현모 KT 신임 사장이 취임하자마자 검·경 출신 인사 영입에 박차를 가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빌딩 전경. 사진=일요신문DB
구 사장이 취임 후 가장 먼저 챙긴 것은 ‘전관’ 영입이다. 취임 직후 구 사장은 김희관 전 법무연수원장을 최고준법감시자(COO)로, 안상돈 전 서울북부지검장을 법무실장으로 영입했다. 김희관 COO는 사법연수원 17기로 대검찰청 공안기획관,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법무연수원장 등을 지냈다. 안상돈 법무실장은 20기로 대검찰청 형사부장, 대전지검장 등을 지냈다.
KT는 경찰 인력 영입에도 나섰다. 최근 경찰 간부들이 줄줄이 KT로 자리를 옮겼다. 강남경찰서 형사과장, 경찰청 기획조정관실 출신 경감,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경위가 KT에 부장급으로 영입됐다. 통신사에서 경찰 출신을 대거 영입하고, 이들을 컴플라이언스나 법무실이 아닌 현업 부서에 배치되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영입 인력 중 일부는 법무실이나 대외협력 부서가 아닌 계열사의 경영을 관리하는 경영기획실로 배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KT의 검·경 출신 인사 영입을 두고, 최근까지 수사를 받았던 구현모 사장이 향후 수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KT는 황창규 전 회장과 구 사장 등 전·현직 임원이 국회의원에게 블법 정치후원금을 준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018년 KT가 19, 20대 국회의원 99명에게 일명 상품권깡 수법으로 불법 정치자금을 준 사건을 수사해 전·현직 임직원 7명에 대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통상 경찰을 많이 영입하는 기업이 아니었는데도 경찰을 한꺼번에 여럿 뽑고, 전문성이 없는데 계열사 관리를 맡기는 데는 다른 업무를 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구현모 사장은 황창규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서 회장 비서실장을 지냈다. 그렇다보니 황 전 회장과 거리두기와 홀로서기가 큰 과제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황 전 회장 체제에서 구 사장이 가담했던 일들이 수사 중인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 등이 법적 리스크가 있는 구 사장 선임에 지속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KT 새노조는 검찰에 사건이 송치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지난 1월 법무부에 신속 수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접수했다.
이사회는 구현모 사장 취임에 조건부로 동의했다. 주주총회에서 의결된 ‘경영계약서’에는 “대표이사가 회사에 재산상의 손해를 입히고,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되면 사임을 권고할 수 있고 따라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임기 중 구 사장이 기소돼 선고를 받으면 대표이사직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KT 측은 “인사 영입과 관련해 개인정보를 말씀 드릴 수 없다”며 “이사회 결의 사항도 회의록이 비공개되기 때문에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취임 두 달이 돼가지만 구 사장이 활발한 대외활동이나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으려 하는 것은 이 같은 법적 리스크가 부담스럽기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임기 초반 구 사장이 외형 성장보다 내실 경영을 다지는 방향으로 KT를 이끌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매물로 나온 유료방송 회사 현대HCN과 딜라이브 인수전에도 KT가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구 사장으로서는 검찰 수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자신을 방어하는 차원에서 전관을 대거 영입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전임 황창규 회장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겠지만, 인수·합병(M&A)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 기존 사업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면 구 사장의 이미지 쇄신이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