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밖으로 토닥토닥
미래통합당이 최근 ‘다가서기 어려웠던’ 광주의 마음을 열었다. 주호영 신임 원내대표는 5월 18일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광주를 방문, 기념식에 직접 참석해 유족에 사과의 말을 전하는가 하면 주먹을 쥐고 위아래로 흔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이어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5·18 민주화운동 유족 3개 단체장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그동안의 통합당 행태와 관련 “민주화운동에 대한 성격이나 권위에 대한 평가는 이미 법적으로 정리됐다. 간혹 딴소리를 해서 마음의 상처를 주는 우리 당 사람이 있는데 이에 대해 거듭 저희가 죄송하고 잘못했다. 사죄드린다”며 머리를 숙였다.
사실 주호영 원내대표가 광주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을 때만 해도 지난해처럼 광주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지난해 당시 자유한국당은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 등의 잇단 5·18 망언을 ‘솜방망이’ 징계하는 데 그쳐 논란이 됐다. 이에 당시 황교안 대표는 광주역과 기념식장 앞에서 ‘황교안이 전두환이다’ ‘범죄자 황교안은 사죄하고 광주를 떠나라’ 등의 손팻말을 든 광주 시민들에 가로막혀 비판을 받았다.
이번엔 달랐다. 주 원내대표는 광주에 가기 전부터 광주 민심을 토닥이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했다. 그는 5월 16일 입장문을 통해 “이유를 막론하고 다시 한 번 5·18 희생자와 유가족, 상심하셨던 모든 국민 여러분께 매우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며 사과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이어 당 차원의 정책 마련도 약속하며 “5·18 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 민주화운동유공자유족회, 5·18 민주화운동공로자회를 법정단체화해 예산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5·18 민주유공자 예우법’ 개정안 처리에 힘을 모으겠다”고 다짐했다.
광주에서 열린 간담회에서도 문홍식 5·18 구속부상자회장이 △역사왜곡 방지법 △5·18 진상규명처벌법 개정 등을 건의하자, 주 원내대표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행사에서 통합당은 ‘토닥토닥 전략’을 통해 과거의 굴레를 벗어난 것이었다.
통합당 한 현역 의원은 “올해 광주를 가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해에는 황 전 대표가 겨우 검색대를 통과했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생수병 물벼락을 맞았고, 행사장에 준비된 플라스틱 의자가 날아오기도 했다”며 “광주가 보수정당을 맞이하는 모습이 1년 만에 완전히 뒤바뀌었다. 우리도 하면 된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왜 이렇게 못했는지 후회가 된다. 이제 호남 최고위원도 몇 분 모시고 호남을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으로도 토닥토닥
낙천·낙선 의원들은 임기가 끝나는 5월이 되면 ‘쫓겨나듯’ 국회 의원회관을 떠나는 것이 관례였다. 한 낙선 의원은 “통합당 공천 과정을 보면 정부 고위 관료나 판·검사 출신 지원자가 워낙 많이 쏟아져 들어와 사람 귀한 줄을 모른다. 그러니 낙천이나 낙선을 해서 떠나도 ‘당신 말고도 우리 당에 들어올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는 투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일쑤였다. 그러다보니 떠난 사람들이 응원군이 되지 못하고 돌아서서 욕을 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러다보니 당의 응집력이 떨어지고 지지 기반이 갈수록 약해져왔다”고 털어놨다.
통합당이 이런 폐해도 극복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통합당은 원내부대표 내정자 11인 중 한 명에게 21대 국회에 등원하지 못하는 낙천·낙선 의원들을 전담 관리하는 임무를 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달 국회를 떠나는 이들은 앞으로 4년간 원내 동지로 활동할 수 없으나, 당의 중요 인적자산인 만큼 소속감과 동지애를 가질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주 원내대표는 최근 “정당은 정치적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모인 집단인데, 우리 당은 이로 인한 동지애가 약하다. 그래서 낙선 의원들을 모시고 식사도 하면서 소속감과 동지애를 다지는 기회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 원내부대표 중 한 명에게는 낙선 의원들을 살피는 역할을 줘서 낙선 의원들이 후배 의원들과 동지애도 나누고 이후에도 당에 애정을 갖고 활동을 하게끔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4년 뒤를 내다보는 포석도 구상하고 있다. 주 원내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에 지역구를 내준 곳에서는 낙선 의원들이 전담 부대표에게 지역구 현안을 갖고 오고, 이 현안에 대한 해법도 함께 찾아보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러한 구상은 아직 당 내부에서 공론화되지 않았지만 당 관계자들은 호응을 보이고 있다.
통합당 수도권 한 낙선 의원은 “민주당과 통합당 큰 차이점 중 하나가 낙선 이후 행보다. 민주당은 떨어져도 당과 교류하면서 지역구 탈환의 꿈을 키운다. 그런데 통합당은 당 차원에서 낙선 의원들에게 관심을 거둬버린다. 당의 공식 기구가 낙선 의원들을 관리하고 지역구 현안도 챙겨주면 분명히 4년 뒤 결실이 있을 것”이라며 “통합당 현역 의원이 없는 곳에도 당 차원의 지역 현안 관리가 이뤄진다는 메시지를 유권자들에게 꼭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통솔력
정치권에선 통합당의 토닥토닥 전략이 당의 체질을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달린다. 비례정당 미래한국당과의 합당을 비롯해 무소속 당선자들에 대한 복당 문제를 풀어내야, 다음 대선에서 수권정당으로 갈 수 있을지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오른쪽)와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가 5월 14일 국회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합당을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박은숙 기자
통합당 내부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비상대책위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이유도 당 내부 통솔력의 부재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만신창이라, 누군가 강력한 리더십을 통해 다잡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통합당 중진 의원의 진단이다.
“아무리 망가졌다 해도 통합당이 제1야당인데 외부 인사에게 비대위를 맡기고 싶겠나. 하지만 지금 당 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당 운영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만큼 심각한 지경이다. 원내대표가 새로 뽑혔는데 그에게 맡기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원내대표는 초대형 여당에 맞설 원내대책 마련만 해도 사실 머리가 아프다. 원내대표가 상대해야 할 여당의 힘이 보통 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내대표 역할과 별도로 당의 전체적인 외과적 수술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를 맡을 사람과 조직이 필요하기에 비대위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당의 운영체제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바로잡을 통솔력이 없으니 당으로 다른 세력을 끌어들이는 구심력이 떨어지고 이러다보니 자매정당인 미래한국당도 형님을 무시하고 곁길로 가려하는가 하면 무소속 당선자들의 복당도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통합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지난 4월 총선까지 연거푸 4연패하면서 당의 기반이 완전히 붕괴됐고 이러다보니 선거에서 자꾸만 패하는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통합당의 또 다른 낙선 의원은 “전국 각 지구당 당사 등 통합당의 자산이 의외로 많은데 이를 당의 지지율 또는 당의 득표율을 끌어올리는 수단으로 활용을 못한다. 즉 물적 자산 활용이 엉망이고 낭비적이다. 인적 자산도 마찬가지다. 당 사무처 직원들에 대한 인사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니 인적 자원 활용도 떨어진다. 그뿐 아니라 국회의원들도 공부를 시켜야 하고, 지방의원과 당원도 마찬가지다. 인적 자산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도 작동이 잘 안 된다. 지휘통솔 체계를 빨리 세워서 인적·물적 자산에 대한 정비를 조기에 해야 하고, 이를 통해 외부의 힘을 당 안으로 빨아들이는 구심력을 획득, 하드파워를 회복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통합당 전직 의원은 “2년 전 지방선거에서 통합당이 참패했기에 지방권력의 중심추가 완전히 민주당으로 넘어와 있다. 이러다보니 자치단체장, 지방의원들을 통해 주민들이 동네에서 민주당을 친근하게 보는 시선이 많아졌다. 통합당도 이제 과거처럼 동원하는 당원이 아니라 진짜 당원을 모아 동네에서 기초를 다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체질 개선 노력을 지금부터 하려면 당의 리더십이 당을 과학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비대위가 단순히 대선 후보를 점지하는 대선 몰입형이 되어선 안된다. 대선 후보는 당 내외부 경쟁을 통해 선발하되 통합당을 힘 있고 신뢰감 주는 파워형 정당으로 내부 쇄신을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