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은 지난해 10월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한 이후 연이은 매각설로 바람 잘 날이 없지만, 매각설을 적극 부인하며 ‘WBC 2030’ 전략을 유지하는 모양새다. 지난 2월 21일 오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113번째 확진자가 다녀간 CGV 전주효자점 건물이 폐쇄된 모습. 사진=연합뉴스
#조회공시로 매각설 부인, 효과는?
CJ는 지난 5월 15일 공시를 통해 그간 시장에 떠돌던 CJ푸드빌의 제빵 프랜차이즈 브랜드 뚜레쥬르 매각설을 공식 부인했다. 공시에서 CJ는 “현재 뚜레쥬르의 지분매각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앞서 시장에서는 CJ푸드빌이 뚜레쥬르 매각을 위해 다수의 사모펀드와 접촉했다는 풍문이 돌았다. CJ푸드빌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영업적자를 이어오고 있는데다, 지난 3월 유동성 확보를 위한 고강도 자구안 시행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CJ그룹 계열사의 매각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CJ푸드빌이 운영하는 외식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포함해 CJ푸드빌의 자체 매각설이 제기됐다. CJ올리브영과 CJ CGV 등 주력 계열사와 CJ ENM이 보유한 넷마블, 스튜디오드래곤 지분 일부 매각설도 있었다. CJ그룹은 때마다 매각설을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했지만 매각설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과거 CJ그룹의 부인 이후 계열사가 매각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CJ그룹은 2018년 1월 CJ헬로 매각설이 불거지자 매각설을 부인했다. 하지만 다음해인 2019년 2월 CJ헬로 최대주주인 CJ ENM이 “지분 매각과 관련 다양한 방안을 검토 및 논의 중”이라고 공시한 직후 매각됐다. 캐시카우(현금창출원)로 꼽히던 CJ푸드빌 커피 프랜차이즈 ‘투썸플레이스’의 경우 지난해 1월 매각설을 적극 부인했지만 같은 해 5월 홍콩계 사모펀드에 매각됐다.
이 때문에 여전히 시장에서는 CJ그룹의 매각설 부인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다. 매각을 추진하는 기업의 경우 일단 매각설을 부인해 리스크를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회사가 계열사나 사업부문을 매각한다는 이야기는 유동성 문제나 자금 문제를 자인하는 것”이라며 “공시를 통해 부인할 경우에는 의사가 없거나 의사가 있음에도 아직 매각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한국거래소가 풍문 또는 보도에 대해 상장사에 사실 여부 확인을 요구할 경우, 기업은 조회공시를 통해 답변해야 한다. 인수·합병(M&A)의 경우 3개월, 기타 1개월 안에 답변과 상반되는 경영 결정이 이뤄질 때에만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다.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일단 매각설을 부인하더라도 답변 이후 3개월이 지나면 효력이 사라져 공시 내용과 달리 매각하더라도 허위 답변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매각설에 불거진 회사 입장에서는 공식적으로 관련 사항을 부인해 시간을 벌 수 있는 셈이다.
#이재현 회장 경영복귀 첫 일성 ‘월드베스트 CJ’는?
CJ그룹의 매각설 부인 배경에는 시간을 확보하는 효과와 함께 이재현 회장이 2017년 경영에 복귀하며 내세운 ‘월드베스트 CJ’ 전략도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전략은 2030년까지 세 개 이상 사업부문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것이 그 골자다. CJ그룹은 목표 달성을 위해 2017년 5조 원의 대규모 투자를 비롯해, 2020년까지 물류‧바이오‧문화 콘텐츠 등의 분야에 인수합병을 포함해 36조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이후 이어진 공격적인 M&A 성적이 부진하면서 CJ그룹의 차입금은 급격하게 증가했고 재무구조 또한 악화됐다. 이에 CJ그룹은 지난해 10월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하며 주요 계열사의 대규모 M&A를 지양하고 부동산 자산 매각, 기존 사업의 수익성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CJ그룹은 앞서 공격적으로 기업을 인수하던 때와 비교해 한 발 후퇴한 상황이지만 월드베스트 CJ 전략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실제 CJ그룹은 최근 월드베스트 CJ 달성을 위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계열사의 ‘체력’을 끌어올리는 선택을 하고 있다.
실제 CJ그룹 ‘맏형’인 CJ제일제당은 지난해 12월 서울 가양동 유휴부지와 구로구 소재 영등포공장 부지, CJ인재원 건물 일부를 매각해 확보한 1조 3000억 원을 차입금 상환에 쓰며 재무 부담을 덜어냈다. 또 지난 3월에는 CJ제일제당이 중국 바이오 기업을 인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기도 했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10월 350억 원을 투입해 중국 바이오 기업 후난 유텔 지분 80%를 인수했지만, 관련 내용은 지난 3월 알려졌다. 또 지난 3월 9일에는 미래성장동력 유망 벤처기업 발굴 및 투자를 위해 계열사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가 결성한 글로벌 혁신성장 펀드에 310억 원을 출자하기도 했다.
매각설의 대상이었던 CJ CGV는 지난 5월 8일 공시를 통해 2500억 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 계획을 밝혔다. CJ CGV 지분 39.02%를 보유한 최대주주이자 모회사인 CJ는 지난 5월 15일 공시를 통해 CGV의 재무구조 개선을 통한 안정적 사업환경 조성을 목표로 937억 2100만 원을 출자한다고 밝혔다. CJ CGV의 경우, 지난해 회계기준 변경으로 영화관을 장기 임대하는 리스형태로 운영해 오던 리스 관련 자산이 모두 부채로 인식돼 부채비율이 높아졌다. 이에 자본금을 늘려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 사태를 버텨낸 이후 추가로 M&A나 투자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CJ그룹 관계자는 “월드베스트 CJ 전략은 그대로 가져가고 있다. 현재는 다른 인수 계획은 없고 수익성 위주로 경영하고 있지만, 추후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매물이 등장하면 인수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의 CJ그룹 관계자는 “CJ가 CGV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은 계열사를 지원하고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며 “다른 계열사에도 필요한 상황이 되면 유상증자 등 지원을 검토하겠지만 아직은 별다른 계획이 없다. CGV나 푸드빌도 최근 실적은 어렵지만 당장 자본잠식 등을 걱정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