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서울에서 이런 대화가 오고간다면 짐짓 불안한 출발일 수도 있다. 집을 구하는 젊은 세대들은 보통 다방이나 직방 등 부동산 중개 플랫폼에서 미리 예산과 취향에 맞는 집을 골라 애플리케이션(앱)에 연결되어 있는 부동산 중개업자와 약속을 잡는다. 집 상태와 옵션 등 컨디션을 미리 사진으로 볼 수 있으니 직접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파는 것보다 간편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불법 개조된 근린생활시설 주택은 보통 일반 주택의 3분의 2 가격으로 저렴하게 나오지만 원상복구 때까지 매년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사진=부동산중개 앱 캡처
부동산중개 앱에서 시세보다 저렴한 데다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옵션이 잘 갖춰진 집을 발견하고 직접 부동산중개업자와 약속을 잡았다. 집이 있는 쪽으로 직접 찾아가겠다고 했지만 중개업자는 굳이 지하철역에서 만나자고 한다. 하지만 막상 지하철역에서 만난 중개업자는 전화통화 할 때와는 다른 엉뚱한 말을 하기 시작한다.
“매매가가 1억 9000만 원인데 근생입니다. 불법 용도변경 한 건축물이라 매년 100만~600만 원 사이의 이행강제금이 나올 텐데 그래도 사시겠어요? 그보다 안전하고 좋은 물건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화사한 인테리어와 풀옵션, 시세 대비 저렴한 가격은 고객 유치를 위한 부동산 중개업자의 미끼였던 것이다. 막상 해당 집을 보여 달라고 하면 중개업자는 불법이라 굳이 권하지 않는다며 비슷한 예산에서 다른 집들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중고차 시장에서 하자가 있거나 실제 존재하지 않는 차를 미끼로 일단 고객을 유인하고 보는 딜러의 방식과 유사하다.
확인해보니 다방, 직방 등 부동산중개 앱에서 인테리어가 화사하면서도 저렴한 집들 가운데에는 근생, 즉 불법 개조된 근린생활시설이 많다. 근린생활시설은 법적으로 주택이 아닌 상가다. 근린생활시설은 원래 주택가와 인접해 주민들의 생활에 편의를 줄 수 있는 시설물을 말하는데 슈퍼마켓, 음식점, 제과점, 미용실, 세탁소, 한의원 등이 대표적인 근린생활시설이다. 이런 근린생활시설을 주택으로 불법 개조해 매매를 시도하는 것이다. 때문에 주변 시세 대비 적게는 3000만~4000만 원에서 크게는 1억 원까지 저렴한 경우도 있다.
불법 개조한 근린생활시설이 양산되는 이유가 있다. 보통 빌라 등 집합주택을 지을 때는 집의 호수만큼 일대일로 주차장을 갖춰야 한다. 이때 건축주가 주차장 확보에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을 피하기 위해 주택수를 줄이는 대신 주차 시설 의무가 없는 근린생활시설로 채운다. 준공 심사 전엔 근린생활시설에 내부 인테리어를 하지 않고 있다가 준공 심사가 끝나면 근린생활시설에 보일러와 부엌을 들여 주택용도로 개조하는 수법이다. 세대수를 늘려 분양해 이익을 높이려는 목적이다. 신축빌라에서 흔히 보이는 불법 근린생활시설은 그렇게 탄생한다.
명백한 불법이지만 빌라 등 집합주택을 지을 때 관례처럼 행해진다. 근린생활시설을 주택으로 개조해 사용하면 구청에 위반건축물로 등록되고 싱크대와 내벽, 보일러 시설 등을 다시 상가에 맞도록 원상복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원상복구를 할 때까지 이행강제금을 물어야 한다. 강제철거명령이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미처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분양이나 매매의 경우 미리 벌금을 깎아준다는 명목으로 시세보다 저렴하게 파는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근린생활시설은 주택이 아니기 때문에 주택으로 거래하면 안 된다. 주거용 전·월세를 놓는 것도 당연히 불법이다. 직접 만난 부동산중개인은 “주택이 아닌 상가 물건을 주택처럼 중개하는 것도 불법이기 때문에 물건만 올려놨지 중개를 하지는 않는다”고 변명했다.
#옆집, 아랫집, 윗집 모두 근생? 정말 괜찮을까
그나마 매매의 경우는 고객을 만나기 전에는 미끼로 사용했더라도 일단 고객과 만나면 중개업자가 설명을 시작하고 위의 사례처럼 일명 근생의 매수 의사를 묻는다. 집을 다 본 뒤 뒤늦게 말했다가는 오히려 고객의 신뢰를 잃어 어떤 집이든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고객이 구청에 신고할 여지도 있다. 어떻든 매매다보니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월세 거래의 경우는 흔히 임차인이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반 거래처럼 이루어진다. 서울 홍제동의 한 부동산중개인은 “옆집, 아랫집, 윗집 등 동네에 비일비재하게 존재하는 게 불법으로 개조된 근린생활시설 주택이다. 전국적으로 워낙 많아 이제는 부동산 시장에서 주거문화의 한 부분처럼 돼버렸다”고 말했다.
집주인, 중개업자, 임차인 모두가 근생임을 알고 계약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집주인과 중개업자만 아는 채로 임차인에게는 어영부영 얼버무려 세를 놓는 경우도 많다. 계약 막바지나 이미 계약이 성사된 후 알게 되는 일도 흔하다.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면 건물 전체에 대해 공동주택 및 근린생활시설로 명시되어 있어 정확히 어떤 호수가 근린생활시설인지 알기도 어렵다. 건축물대장 해당 호수로 열람해야 알 수 있는 부분인데 보통 전·월세 거래시에는 건축물대장까지 보지는 않는다. 공인된 부동산중개인을 믿을 뿐이다.
인터넷 상에는 근생 관련 피해사례도 흔하다. 청년주택정보 카페에서 사회초년생들은 “연말정산을 하면서 1년 동안 낸 원룸의 월세에 대해 세액공제를 받으려다 못 받게 되면서 내가 불법 근린생활시설 주택에 살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거나 “누군가 구청에 신고를 해서 집을 원상복구해야 해 이사를 권유받으며 알게 됐다”는 경우도 있다. “계약 과정에서 근생이라는 말은 들었는데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랐다”거나 수억 원이 오가는 매매의 경우에도 “중개인이 실수요로 사는 데는 아무 문제 없다는 말에 속아서 분양을 받았다”는 사례도 많았다. 전세를 찾고 있는 사람에게 저렴한 가격을 미끼로 근생 매매를 권하는 일도 흔하다.
불법 근린생활시설의 전·월세 거래는 흔히 임차인이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반 거래처럼 이루어진다. 인터넷 상에는 근생 관련 피해사례도 흔하다. 사진=청년주택정보 인터텟카페 캡처
서울 신림동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올해는 이사 성수기가 3~4월에서 5~6월로 미뤄졌다. 최근 정부에서 보유세를 강화한 후로 집주인들이 집을 매매로 내놓거나 월세로 돌리고 있는 탓에 전셋집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신축 빌라의 경우 전세가와 매매가가 거의 같아 전세를 구하러 다니다가 중개인의 말을 듣고 충동적으로 매매하는 경우가 많으니 가격이 시세보다 싸다면 근생이 아닌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불법 용도변경된 근린생활시설은 판례상으로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적용을 받을 수도 있지만 제1금융권 전세 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점만 봐도 분명히 위험요소가 다분하다.
#매매가는 1.5억, 전세가는 3억 원?
또 다른 사례로 매매가를 1억 5000만 원으로 올려놓은 집에 전세를 문의하자 “전세는 3억 원”이라는 황당한 대답이 돌아오기도 한다. 매매를 하면 매수자가 불법 개조에 대한 벌금인 이행강제금을 떠안게 되니 집주인이 이를 감안해 싸게 매도하는 반면, 전세를 놓을 경우 집주인이 벌금을 계속 물어야 하기 때문에 시세보다 오히려 비싸게 내놓아야 수지가 맞는다는 논리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부동산 시장에서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돈이 급한 신축 분양 빌라의 건축주가 당장 매매가 어려운 근생을 전세로 돌려 자금을 유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근린생활시설에 전세로 들어간다면 전세금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할 수도 있다. 주택이 아니기 때문에 전세자금대출도 되지 않는다.
다방·직방 같은 부동산중개 앱 상에서도 근린생활시설이라는 문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빌라 2층이나 3층 등 눈으로 봐서는 같은 집이지만 건축물대장을 확인하면 2층은 근린생활시설로 나오고 3층은 주택으로 나오는 일도 흔하다. 외관이 다른 주택과 같으니 겉모습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렵다. 애초에 주택 중개를 목적으로 하는 중개 앱에 올라와서는 안 되는 불법 건축물이지만 버젓이 주택으로 거래된다. 주택으로 개조된 상태이니 온전한 상가라고 보기도 어렵다. 불법 주택이자 불법 상가가 되는 것이다. 일반 주택처럼 되어 있어서 상가로 활용하기도 어렵다.
중개 플랫폼 측은 “중개업자가 숨기는 한 다방이나 직방 등 부동산중개 플랫폼에서는 일반주택인지 근생인지 알 수가 없다. 시세보다 싸거나 인테리어가 예쁘다고 해서 불법 건축물이라 의심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플랫폼에 처음 물건을 올릴 때 건축물대장을 올려놓게 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매물 등록과 경쟁사와의 우위를 위해 방관하는 모양새다.
한 중개업자는 “솔직히 이런 근생이 부동산 중개 앱 물건의 5~10% 정도는 차지한다. 빌라가 지어지는 수만큼 근생 물건도 같이 쏟아진다. 모두가 알게 모르게 쓰는 일종의 속임수라고 보면 된다”고 털어놨다.
고객을 직접 만났을 때 근린생활시설이라고 밝히며 자세한 설명을 하는 건 그나마 양반이다. 일부 중개업자는 근생이라는 언급도 안하고 계약을 진행시킨다고 했다. 그는 “주택으로 살아도 무방하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속이는 사람들도 있다. 명백한 사기다. 나중에 매수자가 계약을 철회하려 할 때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매수자가 인지하는 못하는 사이에 계약서 귀퉁이에 근린생활시설이라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다방·직방 같은 부동산중개 앱 상에서도 근린생활시설이라는 문구는 없다. 공인중개사는 건물의 실제 용도에 대해 건축물 토지대장을 확인하고 고지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얼렁뚱땅 넘어가는 일이 잦아 주의가 요구된다. 사진=부동산중개인 블로그 캡처
한 부동산 전문가는 “근생은 분양가가 저렴하고 오피스텔처럼 주택수에 포함되지 않으니 실수요가 아닌 임대수익을 노린 사람들이 사기도 한다. 초기 투자 금액이 적으니 주택보다 임대수익이 높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행강제금이 임대수익과 맞먹거나 넘을 수도 있고 매수는 쉽지만 매도가 쉽지 않아 매매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예전에는 지역에 따라 3~5년간만 이행강제금을 내면 됐기 때문에 불법임을 알면서도 벌금을 내면 된다는 심산으로 임대수익의 목적물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해당건축물이 원상복구될 때까지 이행강제금을 내도록 바뀌어서 신축빌라 건축주 입장에서는 이전보다 더 저렴하게 내놓는 경우가 많아졌다. 매매를 목적으로 하는 근생의 인테리어를 일반 주택보다 화려하게 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매년 벌금이 나오는 애물단지인 근생을 하루라도 빨리 처분하려는 목적이다.
신축 빌라가 많은 화곡동의 한 부동산중개인은 “중개인 입장에선 신축빌라 거래를 성사시켜야 떨어지는 돈이 많다. 일반 전·월세 거래에서 몇 십만 원을 받는다면 신축빌라 분양은 몇 백만 원을 손에 쥘 수 있다. 중개 앱에 신축빌라 근생 물건이 넘쳐나는 이유”라며 “전세가 귀하다는 말도, 전세할 바에 같은 돈으로 담보 대출 받아 신축 빌라에 들어가라는 말도 중개인의 수수료와 관계된 일”이라며 신중할 것을 권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