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팔코사놀 대회 본선리그 7라운드에서 만난 신진서(왼쪽)와 박정환. 사진=사이버오로
쏘팔코사놀 최고기사 결정전. 국내 최정상 기사 8명이 펼친 풀리그다. 사라진 명인전 이후 3년 11개월 만에 부활한 리그전이다. 2020년 1월 랭킹을 기준으로 8위까지 초청했다. 신진서(20) 박정환(27) 신민준(21) 이동훈(22) 변상일(23) 김지석(31) 강동윤(31) 박영훈(35) 9단. 바둑리그 주장급만 모은 ‘스타 리그’다. 생각시간도 2시간이나 줬기에 대회 이름에 걸맞은 치열한 승부가 펼쳐졌다. 다음 대회는 도전기로 진행할 예정이다. 1회 대회는 리그성적 1위와 2위가 결승 5번기를 치르기로 정했다.
본선리그 하이라이트는 박정환과 신진서의 대국이었다. 랭킹 1위와 2위의 대결은 언제나 흥미롭다. 신진서와 박정환의 공식전은 이 대국 전까지 21판. 신진서가 6승 15패로 밀려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박정환이 신진서에게 이겨보질 못했다. 지난 2월 벌어진 LG배 결승에서 2패, 이벤트 대국이었던 바둑리그 올스타전도 졌다. 인터넷대회나 국가대표리그 등 비공식전에서도 몇 차례 만났지만 판맛을 보지 못 했다. 칼을 갈고 나온 박정환이었다.
결국 마지막에 대마를 가두던 울타리가 무너졌다. 허탈한 듯 고개를 젓던 신진서가 돌을 쓸어 담고 복기를 시작했다. 신진서가 오랜만에 초읽기까지 몰린 대국이었다. 국 후 박정환은 “대마가 죽을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지면 랭킹 최상위권 선수들이 다 (신진서 선수에게) 힘없이 패하는 거라 더 열심히 둔 것 같다. 자력으로 결승에 올라갈 수 없을 때 오히려 마음이 편해져서 마지막 두 판을 이길 수 있었다”면서 박영훈 9단에게 “응원할 테니까 잘 두셨으면…”이라면서 빙그레 웃었다.
신진서를 꺾었지만, 결승 진출이 정해진 건 아니었다. 박정환은 다음날 열릴 본선리그 최종국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최종국에선 김지석과 박영훈이 대국했다. 만약 김지석이 이겼다면 박정환과 같은 5승 2패, 하지만 승자승 규정에 의해 김지석이 결승에 진출하는 스토리였다. 1승 5패로 최하위에 머물러 있던 박영훈은 이겨도 본선 시드조차 바랄 수 없는 판이었다. 그런데 최종국에서 박영훈이 이겼다. 본선리그 최후의 인터뷰에서 승자 박영훈은 “모든 판이 소중하니까. 최선을 다해서 뒀는데요, 어떻게 이렇게 고춧가루가 되어서 어떻게 보면 죄송하기도 하고…”라고 말했다.
박정환(왼쪽)과 신진서는 마치 짜인 각본처럼 결승 무대에 올랐다. 사진=사이버오로
2000년 이세돌의 32연승. 2020년 신진서의 28연승. 몇 년간 정상에서 고독하게 상대를 기다렸던 이창호, 그리고 박정환. 그리고 결승 5번기에서 격돌하는 양웅. 20년의 시차를 넘어서 묘한 데자뷔를 느낀다. “강점도 뚜렷하지 않지만, 약점도 뚜렷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안정된 바둑이다.” 2000년 초 LG배 결승 5번기를 치르던 중 이세돌이 이창호를 이렇게 평했다. 박정환도 그렇다. 별명조차 ‘무결점’이다. 이창호식 바둑의 완성형이다. 신진서는 조훈현-이세돌 식 바둑의 맥을 잇는다. 경쾌하고 가볍다가, 승부처에서 할퀴고 물어뜯는 힘이 매섭다. 이세돌 바둑에 인공지능을 더한 발전형이다. 그래서 ‘신공지능’이라 불린다.
쏘팔코사놀 대회 본선리그는 총 28판이 벌어졌다. 최종 순위는 6승 1패 신진서가 1위, 5승 2패 박정환이 2위. 4승 3패를 기록해 다음 대회 시드를 받은 세 명은 신민준, 김지석, 변상일이다. 결승 5번기 1국은 6월 15일 시작해 16일, 22일, 23일, 29일에 판교 K바둑 스튜디오에서 대국이 이어진다. 우승상금은 7000만 원이다. 짜인 각본처럼 결승 무대에 오른 박정환과 신진서. 결과적으로 박정환을 결승에 올려준 박영훈이 ‘킹메이커’로 불릴 수 있을까? 진짜 ‘최고기사’는 6월 중순에 결정된다.
박주성 객원기자
[승부처 돋보기] 손익계산 던져버린 파상공세 ●박정환 9단 ○신진서 9단 최고기사결정전 본선리그 27국 실전진행1 #실전진행1 ‘완벽한 포석’ 흑4와 8의 붙임. AI가 가져온 바둑혁명의 일부다. 한편 박정환의 공부량을 보여주는 수법들이다. 초절정 고수답게 초반진행은 완벽했다. 이후 100여 수를 넘길 때까지도 AI 승률은 50% 근방에서 큰 변동이 없었다. 포석에선 흑이 실리를 추구하고, 백은 두터움을 가졌다. 실전진행2 #실전진행2 ‘중반 승부처’ 신진서는 좌상 흑 대마(세모 표시)를 노리고 있다. 하변 백1부터 7까지 수순은 명백한 손해지만, A로 끊는 수 등을 보고 있다. 나중에 중앙 포위망을 만들 때 도움을 준다. 백은 9로 찝어서 파상공세에 나섰다. 마음속에서 손익계산서 따윈 멀리 던져버렸다. 실전진행3 #실전진행3 ‘마지막 장면’ 박정환이 흑3을 두자 신진서가 돌을 거뒀다. 백이 B나 C로 끊을 수가 없다. 흑 한 점(네모 표시)이 묘한 자충이라 흑이 넉 점을 잡고 살거나 또는 전체 수상전 모양이 된다. 수상전이 되면 흑이 수가 많다. 초반에 백이 B 단수를 미리 해놓지 않은 아쉬움이 크다. 박주성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