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번 확진자의 대구 방문은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잘 씻는 등 개인방역만 잘 지키면 누구나 코로나19 시민영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사진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아이언맨 마스크보다 강한 방역 마스크’ 17번 확진자
지난 2월 18일 31번 확진자 발생 이후 대구·경북 지역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그런데 대구는 이보다 2주 전에도 큰 위기가 있었다. 바로 17번 확진자의 대구 방문이다.
싱가포르 컨퍼런스에 참석했다가 1월 24일 귀국한 17번 확진자는 설 연휴 기간인 1월 24일과 25일 이틀 동안 대구에 머물렀다. 2월 4일 17번 확진자가 양성 판정을 받은 뒤 방역당국은 그가 대구에서 접촉한 이들을 14명으로 파악하고 검사했지만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서울 구리 등 대구 이외 지역에서 접촉한 이들도 모두 음성이었다.
그 비결은 마스크였다. 외출 과정에서 KTX와 택시 등을 이용했지만 늘 마스크를 꼈고 이는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철저한 개인방역으로 추가 감염을 막아낸 셈이다. 이후 대구·경북 지역 집단감염의 시발점이 된 31번 확진자와는 전혀 다른 행보다.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잘 씻는 등 개인방역만 잘 지켜도 코로나19 시민영웅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 사례다.
권영진 대구광역시장은 2월 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CCTV 확인 결과, 가벼운 감기증세를 느낀 17번 확진자가 모든 이동 경로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녔으며 예방 차원에서 가족을 위해 집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한 것으로 알려져 대처를 잘한 것으로 판단됩니다”라고 밝혔다.
#‘타노스 장갑보다 강한 위생장갑’ 인천 3번 확진자
인천 3번 확진자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은 2월 25일이다. 그렇지만 인후통과 기침 등 증상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은 1월 31일이다. 서울시 소속 문화관광해설사인 그는 1월 23일부터 26일까지 4일 동안 서울 경복궁과 전쟁기념관 등을 돌며 중국과 홍콩, 대만 등 중화권에서 온 관광객들을 가이드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인천 3번 확진자는 1월 27일부터 외출을 삼가고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는 등 개인위생을 철저히 했다. 특히 함께 사는 80대 노모가 걱정돼 식사를 준비할 때는 반드시 위생장갑을 꼈다. 외출할 때는 가급적 사람을 피해 도보로 이동했고 불가피할 때만 택시를 탔다. 게다가 1월 31일부터는 증상과 외출 내용 등을 꼼꼼히 기록했다.
2월 13일 사랑병원 선별진료소를 방문해 검사를 받았지만 음성이 나왔다. 이 정도면 안심하고 평소 생활로 돌아갈 법도 했지만 증상과 외출 관련 기록을 이어갔으며 개인위생도 철저히 관리했다. 결국 2월 23일 2차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
그의 철저한 개인방역으로 인해 노모를 비롯한 가족과 인천지역 접촉자 23명이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또한 꼼꼼히 기록한 증상과 외출 메모를 바탕으로 방역당국은 역학조사도 신속히 마칠 수 있었다.
인천 3번 확진자를 ‘시민의 협조와 노력이 코로나19 추가 전파와 확산을 막는 모범사례’라고 평가한 인천시는 그가 인하대병원에서 격리치료를 받는 동안 홀로 남은 그의 모친을 위해 식사 등 돌봄 서비스를 제공했다.
#‘나 홀로 원룸에’ 울산 24번 확진자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고 있던 3월 9일, 울산에서 24번 확진자가 양성 판정을 받았다.
울산 24번 확진자는 2월 29일부터 3월 2일까지 대구를 방문했다. 대구 달서구 삼일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할머니 빈소를 지킨 것이다. 자차로 3월 2일 오후 4시 무렵 울산으로 돌아온 그는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던 집이 아닌 북구 명촌동의 원룸으로 향했다. 대구를 다녀온 터라 행여 가족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우려로 철저한 자가 격리에 돌입한 것이다.
이후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원룸에서 보냈고 외출은 단 한 번이었다. 물과 샐러드 등 생필품 구매를 위해 도보로 인근 편의점을 잠시 들른 것이 전부였다. 6일 오전 자차로 동구보건소 선별진료소를 방문해 검체를 채취하고 돌아가는 길에 같은 편의점에 다시 들렀다. 물론 편의점을 방문한 두 번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다.
방역당국이 파악한 울산 24번 확진자의 접촉자는 편의점 직원 단 1명. 마스크 덕분에 음성 판정을 받았다. 일일 상황 브리핑에서 송철호 울산시장은 “울산 24번 확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지역 간 거리 극복하기를 적극적으로 실천했다”며 “개인의 완벽한 자가 격리가 감염병 확산 예방에 상당 부분 기여한다는 전문가 의견을 증명해 준 우수 귀감 사례”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대구 의료봉사를 다녀온 뒤 ‘전북 16번 확진자’가 자가 격리를 위해 찾은 친정이 있는 장수군 장계면 도장마을 빈집. 그는 친정 부모나 인근 주민이 감염될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 친정집에서 1km가량 떨어진 야산 중턱의 빈집에서 홀로 지냈다. 사진=SBS 뉴스 화면 캡처
#“나는 자연격리인이다” 전북 16번째 확진자
4월 4일 전라북도 장수군 부모 집에서 자가 격리 중이던 간호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대전에 거주하는 대전 보훈병원 간호사인 ‘전북 16번째 확진자’는 3월 8일부터 22일까지 대구 동산병원에서 의료봉사를 했다. 의료 봉사를 자원한 그는 레벨 D 방호복을 입고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오가며 코로나19 환자들을 돌봤다.
대구에서 의료 봉사가 끝난 뒤 검사를 받아 음성이 나왔지만 행여 모를 감염 가능성을 감안해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완벽한 격리를 위해 ‘전북 16번 확진자’가 찾은 곳은 친정이 있는 장수군 장계면 도장마을. 친정 부모나 인근 주민이 감염될 위험성도 피하기 위해 그는 친정집에서 1km가량 떨어진 야산 중턱의 빈집에서 홀로 지냈다.
그 후 13일 동안 ‘전북 16번 확진자’는 인적이 드문 산속 빈집에서 홀로 지냈다. 3월 29일 기침과 근육통 등 증상이 나타나 다음 날 검사를 받았지만 음성이었다. 그렇지만 증상이 점점 심해져 4월 3일 2차 검사를 받아 다음 날 양성 판정을 받았다. 자가 격리 기간 동안 접촉자는 어머니가 유일했지만 그 역시 음식과 생필품을 빈집 문 앞까지 가져다 둔 게 전부였고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다.
장영수 전북 장수군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간호사님의 훌륭한 대처와 봉사 및 희생정신에 감사드리며 간호사님의 빠른 치유를 위해 기도한다”는 글을 올려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태원 클럽 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인천의 한 정신요양병원으로 번질 위기를 막은 것은 이태원 방문자 어머니의 전화 신고였다. 사진은 이태원 클럽 발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한남동 주민센터 옆 공영주차장에 설치된 워크스루 방식 선별진료소. 사진=박정훈 기자
#‘마더’ 인천 101번 환자 어머니
5월 9일 인천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인천 101번 확진자와 102번 확진자는 모두 이태원 클럽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인천 102번 확진자는 거짓말로 엄청난 추가 확산을 야기한 학원강사다. 그렇지만 사실 더 위험했던 이는 인천 101번 확진자였다. 5월 4일 이태원 주점을 방문하고 바로 다음 날 인천 서구 소재의 한 정신요양병원이 입원했기 때문이다. 대구 신천지교회 집단감염 당시 청도 대남병원처럼, 이태원 클럽 발 집단감염도 인천의 정신요양병원으로 확산될 위기였다.
입원 당시엔 발열 등의 증상이 없었던 인천 101번 확진자는 입원 3일 뒤인 8일 검체 채취를 해서 9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과정에선 인천 101번 확진자의 어머니가 큰 역할을 했다. 이태원 클럽 발 집단감염 사실이 알려지자 어머니가 “아들이 이태원을 다녀왔다”고 신고 전화를 했고 이를 계기로 빠른 검사가 이뤄져 그가 확진자임이 드러난 것이다. 바로 방역 당국은 병원 직원과 환자 등 238명을 전수 조사했는데 다행히 추가 확진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가 확진자임을 모른 채 병원에 계속 입원하고 있었다면 청도 대남병원처럼 집단 감염이 이뤄졌을 수 있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인천의 한 정신요양병원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했을 수 있었는데 이를 막은 것은 어머니의 전화 신고”라며 “동선을 정확히 이야기해주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인천 연수구에서 ‘서울휘트니스 인천점’을 운영하는 전웅배 대표가 고3 수강생들의 등교를 막기 위해 보낸 단체 문자. 사진=인천시 제공
#“그것을 알리고 싶다” ‘서울휘트니스 인천점’ 전웅배 대표
미루고 미루던 등교 개학은 5월 20일 고3 학생들부터 시작됐다. 이를 하루 앞둔 19일 큰 위기가 있었다.
인천 연수구에서 ‘서울휘트니스 인천점’을 운영하는 전웅배 대표는 고3 수강생에게 자신이 코로나19 검사 대상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수강생이 이미 확진 판정을 받은 인천 학원 강사의 제자와 동선이 겹친다는 것이다.
이날 수업이 예정돼 있던 수강생에게 우선 보건소에 가서 검사부터 받으라고 권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오전 그가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전달받았다. 이날은 고3의 등교개학이 이뤄지는 날이었다.
전 대표는 행여 감염이 이뤄졌을지 모르는 다른 고3 수강생들의 등교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고3 수강생 97명에게 단체 문자를 발송했다. 행여 문자를 확인 못하고 등교하는 수강생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네 번이나 단체 문자를 보냈는데 확실한 대처를 위해 “답문해라 무조건 문자 보면”이라고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학부모들에게도 연락했다.
또한 보건소에 수강생 출석부를 카메라로 촬영 전송해 보건 당국의 발 빠른 대응에도 도움을 줬다. 그리곤 본인 역시 즉각 검사를 받았다. 전 대표의 적극적인 협조로 보건당국은 같은 날 ‘서울휘트니스 인천점’ 고3 수강생은 물론 다른 학년 수강생까지 378명의 검사를 모두 끝낼 수 있었고 다행히 전원 음성 판정을 받았다. 이런 전 대표의 행보를 두고 인천시는 코로나19 추가 전파를 막는 모범 사례라고 평가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
‘788명 전원 음성’ 인천 미추홀구 교회 2곳 확진자 개인이 아닌 788명의 시민영웅이 힘을 합쳐 코로나19 집단감염을 막아낸 사례도 있다. 바로 인천 소재의 두 교회와 그곳 교인들이다. 이태원 클럽에 다녀온 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거짓말로 신분을 숨겼던 인천 학원강사를 통해 감염된 학생 2명이 각각 예배에 참석한 교회 두 곳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대구 신천지교회처럼 이태원 클럽 발 코로나 집단감염이 교회를 통해 더욱 확산될 위기의 순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감염 경로가 된 학원강사의 거짓말까지 더해졌다. 집단감염 우려가 제기된 곳은 인천시 미추홀구 소재 A 교회와 B 교회로 각각 485명의 교인과 303명의 교인이 검사 대상이 됐다. 다행히 두 교회 교인 788명 전원이 음성 판정을 받았다. 대구 신천지교회와 경기도 성남 은혜의강교회 등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일어난 것과 달리 이 두 교회에선 단 한 명의 추가 확진자도 나오지 않았다. 그 비결은 철저한 방역수칙 준수였다. 방역 당국은 교회 두 곳이 모두 매주 두세 차례 소독을 실시했으며 교인들이 교회에 들어올 때 발열 검사를 하고 마스크 착용과 지정좌석제도 의무화했다. 교회 자체적으로 라텍스 장갑을 사서 교인들에게 지원한 곳도 있었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교인 전원 음성 판정은 철저한 방역수칙 준수가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최우선임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하고 모범적인 사례”라며 “높은 시민의식으로 집단감염을 막은 교회 관계자와 성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김강립 1총괄조정관 역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1000명의 교인 가운데 300여 명은 온라인으로 예배에 참여했고 접촉으로 인한 감염을 막기 위해 장갑 착용도 의무화하는 등 시설 특성에 맞게 자체적으로 방역 조치를 고민하고 시행한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동선 프리랜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