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당선자들이 입주하게 될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전경. 사진=이종현 기자
#가장 낮거나 높은 층은 초·재선에 배정
10층 건물인 의원회관에서 국회의원 집무실로 쓰이는 공간은 3~10층이다. 이 가운데 6~8층이 소위 ‘로열층’으로 구분된다. 조망권이 확보되면서도 너무 높지 않기 때문. 특히 양화대교와 한강을 볼 수 있는 북측과 국회 잔디밭 및 분수대가 보이는 동쪽의 전망이 가장 좋다고 알려졌다.
의원회관 배분 방식은 먼저 국회 사무처가 정당별 의석비율에 따라 각 층의 구역을 정해준다. 그럼 각 당에서 내부 협의를 통해 ‘교통정리’를 한 뒤 그 결과를 국회 사무처에 통보해 확정한다. 선호하는 방이 겹치면 관행상 선수나 나이가 많은 중진 의원들에 우선 배정해왔다.
하지만 중진으로 올라갈수록 방을 옮기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불어민주당 중진 의원 측은 “이미 여러 국회를 거치면서 본인이 선호하는 방을 선점했기 때문에, 굳이 옮겨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21대 국회 최다선인 6선의 박병석 의원은 기존에 사용하던 804호를 그대로 신청했다. 박 의원은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에 단독 추대돼 국회 본청 국회의장실을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20대 국회부터 의원직을 갖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5선 의원 10명 중 8명이 21대 국회에서도 기존 의원실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반면 조정식 의원은 7층에서 4층, 안민석 의원은 6층에서 9층으로 의원실을 옮기기로 했다. 5선 중 21대 국회에 새롭게 등원하는 민주당 이낙연 당선자는 최경환 전 통합당 의원이 쓰던 746호를 배정 받았고, 통합당 서병수 당선자는 552호에 입주하게 됐다.
민주당 4선 의원 11명 중 김태년 우원식 윤호중 이인영 등 7명이 21대 국회를 앞두고 방을 옮긴다. 3선은 21명(21대 등원 4명 제외) 가운데 인재근 김경협 박홍근 등 6명이, 재선 의원은 42명(21대 등원 8명 제외) 중 김두관 조응천 박용진 박주민 이재정 등 22명이 이사할 계획이다.
통합당의 경우 20대 국회에서 의원실이 있는 4선 이명수 홍문표 의원 중 이 의원만 4층에서 6층으로 방을 옮긴다. 3선 의원 13명(21대 등원 2명 제외) 중 김도읍 하태경 이채익 등 7명이, 재선은 16명(21대 등원 4명 제외) 가운데 이철규 이만희 정점식 의원 등 5명이 21대를 앞두고 이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합당 일부 의원은 원치 않게 이사를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통합당 한 관계자는 “통합당이 총선 참패로 의원실도 많이 줄었다. 국회 사무처가 의원회관 방 구역을 정하면서 일부 의원실은 민주당 구역에 포함됐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짐을 싸 옮기는 경우도 생겼다”고 전했다.
초·재선 의원들은 인기가 떨어지는, 가장 낮거나 높은 3~4층, 9~10층에 주로 배정됐다. 실제 접근성이 떨어지는 10층의 경우 초선인 장경태 김남국 오영환 당선자(민주당), 배현진 김미애 강민국 당선자(통합당) 등이 대거 배치됐다. 반면 4선 홍영표 의원은 20대부터 사용하던 1004호를 옮기지 않고 사용하기로 했고, 3선 진선미 의원은 21대를 앞두고 527호에서 1002호로 이사한다는 뜻을 밝혔다.
10층의 경우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보안에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어, 탈북민 출신으로 근접경호를 받게 될 통합당 태영호(태구민) 지성호 당선자가 10층에 배정 받을 수 있다는 예측도 나왔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태영호 당선자는 9층을 사용한다.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의원회관 내부는 청소와 이사가 한창이다. 사진=이종현 기자
#전직 대통령 방들 민주당 몫
전직 대통령 등 유력 정치인들이 과거 사용했던 방들도 인기가 높다. 3층은 전망이 좋지 않아 인기가 없지만 325호는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1순위다.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국회에서 써 ‘좋은 기운이 흐른다’는 이유에서다. 325호는 번호에도 의미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인 5월 23일을 뒤집은 숫자다. 현재 이 방은 노무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행정관과 문재인 의원 정무특보를 지낸 권칠승 의원이 20대 국회부터 사용하고 있다. 권 의원은 21대에서도 이 방을 계속 쓰기로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방이었던 638호는 20대에서는 통합당 김승희 의원이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 의원이 이번에 낙선하면서, 21대에서는 민주당 몫이 됐다. 이 방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초선 조오섭 당선자가 입주하게 됐다. 조 당선자는 자신의 SNS를 통해 “의원실 배정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해 놀랐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꿈꿨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용했던 545호와 312호는 모두 민주당이 사용할 구역에 포함됐다. 545호와 312호에 각각 초선인 이수진 당선자(비례대표)와 고영인 당선자가 사용하게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용했던 328호는 통합당 추경호 의원이 20대 국회부터 지내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사용하던 718호도 ‘관운’이 넘치는 곳으로 인기가 급상승했다. ‘로열층 한강뷰’에다 정세균 총리가 6선 국회의장은 물론 총리까지 거친 까닭이다. 21대 국회에서 이 방의 주인은 결국 추첨까지 거쳐 3선의 서영교 의원에게 돌아갔다. 서영교 의원은 앞서 20대에서는 풍경이 좋지 않은 남측의 928호를 사용해왔는데, 이 방은 초선인 소병철 당선자가 입주하게 된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사용한 454호는 앞서 언급한 5선 조정식 의원이 물려받는다.
#방 번호에 담긴 상징성
방 호수가 특별한 의미를 가진 방들도 눈길을 끈다. 615호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이 발표한 6·15 남북공동선언을 상징한다고 해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 박지원 민생당 의원이 지난 12년 동안 사용해왔다. 하지만 21대 총선에서 박지원 의원이 낙선하면서 빈 방이 됐다. 이에 민주당의 많은 의원들이 그 자리에 배정받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615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당선자에 돌아갔다. 김홍걸 당선자는 “민주당 측에서 615호를 사용하는 게 어떻겠느냐 먼저 제안해줘 고맙게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3선을 달성한 20대 국회에서 사무실을 기존 442호에서 413호로 옮겼다. 민주당이 제1당을 차지한 총선일 4월 13일을 기념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21대 국회를 앞두고 다시 4층 내에서 사무실을 이동한다. 새로 배정된 404호는 기존 방보다 접근성과 풍경이 좋은 것으로 평가된다.
5·18 민주화운동을 의미하는 518호는 무소속 이용호 의원이 20대 국회에 이어 사용하기로 했다. 광복절을 뜻하는 815호는 재선에 성공한 박찬대 의원이 계속 입주한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