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국가기록원 압수수색을 통해 이춘재 8차 사건 현장 체모를 확보했다. 8차 사건 발생 직후 현장 사진. 사진=당시 수사 기록
수원지방검찰청은 5월 28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을 압수수색하고 국가기록원이 보관 중인 이춘재 8차 사건 현장 체모 2점을 확보했다. 이번 압수수색에는 윤 씨 측 변호인단도 참관했다.
과거 경찰은 현장에서 총 10점의 체모를 채취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8점을 감정에 사용하고 남은 2점을 30여 년간 보관해왔다. 이후 국과수 유전자 분석실장이 2017∼2018년께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에 이관했다.
이춘재 사건을 재조사한 검찰과 경찰이 2019년 12월 이를 확인하고 국가기록원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공공기록물 관리법에 따라 한 번 이관 받은 문서에 대해서는 반출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검찰이 곧바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기각했다. 공소시효가 지나 이춘재에 대한 처벌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압수수색과 같은 강제수사를 하는 것은 법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취지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과 경찰은 재심이 개시되면 재심 법원에서 감정 명령 등의 절차를 밟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재판 과정에선 법원이 직권으로 영장을 발부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확인한 이춘재 8차 사건 재심 담당 재판부(수원지법 형사12부, 박정제 부장판사)는 5월 19일 열린 재심 첫 공판에서 국가기록원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허용했다. 재판부는 “과거의 체모 감정이 위법 증거로 판단됐고, 피고인 측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감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에 보관된 체모 2점과 윤 씨 모발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첫 공판을 마친 직후 윤 씨의 모발 10점을 확보했다. 다음 기일에 이번 나라기록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체모 2점 등과 함께 재판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재판부는 압수물과 이춘재 DNA 등에 대한 비교 감정을 감정기관에 의뢰할 방침이다.
감정기관은 국과수가 선정됐다. 통상 문서로 감정촉탁을 하지만 재판부는 국과수에서 지정한 감정인을 법정에 불러 직접 선서를 받기로 했다. 과거 국과수 감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의혹이 불거진 만큼, 이번에는 철저히 진행하겠다는 취지다.
감정 결과로 거론되는 가능성은 크게 세 가지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라, 진범이라고 자백한 이춘재가 주인일 수 있다는 게 첫 번째다. 다만 여러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가정집 방 안인 점을 감안하면 당시 이 방에 출입했던 제삼자가 주인일 수도 있다.
윤 씨의 체모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과거 경찰이 윤 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후 현장 체모와 바꿔치기 했을 수 있어서다. 윤 씨는 2019년 검경 조사에서 “과거 수사 경찰에게 여러 차례 체모를 제출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박준영 변호사는 지난 5월 19일 재심 첫 공판 직후 “국가기록원의 체모가 이춘재의 것이라면 진범임이 분명해지고, 제3자의 것이라면 범행과 관련 없는 증거가 수집된 것이고, 윤 씨의 것이라면 증거조작이 확인되는 의미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