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1979년 김대중 전 대통령(DJ)과의 만남을 꼽았다. 가장 슬펐던 일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였다고 밝혔다. 가장 아쉬웠던 순간으로 아들 석균 씨의 공천 세습 논란을 꼽았다. 문희상 의장은 5월 21일 국회 사랑재에서 가진 마지막 기자간담회에서 “아쉬움은 남아도 후회 없는 삶이었다”고 회고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5월 21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문 의장 메시지가 주목받은 것은 ‘문희상 특유의 스타일’이 짙게 드러난 기자간담회였기 때문이다. 그는 질문마다 특유의 입담을 과시하며 소신 발언을 거침없이 이어갔다.
특히 문 의장은 여권의 금기어인 이명박(MB)·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을 불쑥 꺼냈다. 문 의장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상당한 고민도 있어야 한다”면서도 “그 판단은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다. 문 대통령 성격을 아는데, 민정수석 때 했던 태도를 보면 아마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 사태에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꺾지 않았다는 말도 나왔다. 그는 진보진영 인사 중 ‘인간 박근혜’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낸 유일한 인사다.
문 의장은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인 2013년 4월 1일 JTBC ‘임백천·임윤선의 뉴스콘서트’에 출연,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지성적이고 우아하고 범접하기 어려운 기품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쁘시다. 가슴이 설렐 정도다. 여보 미안해”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 시절인 이듬해 11월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에서도 “인간 박근혜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인간 박근혜와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기대는 다르다”며 “지난 2년간 약속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문 의장이 ‘박근혜 사면’을 정부와 국회 과제로 던진 이면엔 과거부터 형성된 인간 박근혜에 대한 신뢰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 내부에 미친 파장은 컸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5월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참석차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예외 없이 불행해지는 ‘대통령의 비극’이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원조 친노(친노무현)인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황당한 사면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여당 지도부도 선을 그었다. 박주민 최고위원은 “한 분은 명백하게 드러난 범죄 행위에 대해 보복이라고 하고, 다른 한 분은 수사 협조조차 안 해 사법부 위에 있다”고 꼬집었다.
당 내부에선 “통합은커녕 편 가르기와 분열을 증폭할 것”(안민석 의원), “최소한 용서를 비는 제스처가 있어야 한다”(박범계 의원) 등의 날 선 비판도 나왔다. 당 한 관계자는 “보수진영이 전직 대통령의 무죄를 주장한 상황에서 괜한 말을 했다”고 말했다. 문 의장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