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는 비교적 상세하다. ‘회사 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 설명했다’는 평도 나온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 이를 본 법조인들은 “이제 공은 ‘검찰’로 완전히 넘어갔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검찰과 채널A 모두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사실 관계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검언유착 의혹은 결국 MBC 보도를 통해 드러난 ‘녹취 파일 진위’를 확인해야만 가능한데, 채널A마저도 녹취 파일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MBC 수사를 통한 관련 증거 확보 필요성도 거론된다.
하지만 보고서 자체에 대한 후폭풍도 적지 않다. 이번 보고서 공개 후 이 아무개 채널A 기자는 변호인을 통해 “회사 측에서 동의 없이 검찰에 자료를 넘겼다”고 반발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채널A가 이 기자의 ‘취재 윤리 위반’으로 꼬리 자르기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검언유착 의혹이 제기되며, 압수수색까지 받은 채널A가 의혹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담은 진상보고서를 5월 25일 공개했다. 지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열린 ‘채널A 취재윤리 위반과 검언유착 의혹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다시 촉구한다’ 기자회견 모습. 사진=연합뉴스
#53페이지 달하는 보고서 통해 “검언유착 증거 없다”
채널A가 내놓은 자체 조사 결과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소 취재 윤리를 위반한 부분은 있지만, 검언유착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는 것이다.
채널A는 김차수 대표이사 전무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이 기자와 백 아무개 기자 등 핵심 당사자를 상대로 한 달 넘게 진상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사 법조팀 이 기자의 주요 쟁점 상당 부분이 회사 차원의 지시가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일부 부적절한 취재 방식으로 취재 윤리를 위반했다”고 인정했다.
53페이지 분량의 ‘신라젠 사건 정·관계 로비 의혹 취재 과정에 대한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자는 법조팀 데스크(사회부장)에게 큰 틀에서의 취재 일정을 보고하며 제보자 지 아무개 씨와 접촉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발언 내용 등은 회사에 모두 보고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검언유착’ 의혹에 대해서는 여러 정황들이 혼재돼 있다.
당초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에게 편지로 접촉할 때만 해도 이 기자는 “(나는) 로비스트가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 검찰과 먼저 손을 잡고 이 사건을 특정 방향으로 진행시킬 수는 없다”라고 적었다. 또 “플리바게닝(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대신 처벌을 낮추는 것을 약속받는 행위)은 불법이다”라고 명백히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철 대표 지인이라는 지 아무개 씨를 만나면서부터, 이 기자의 발언은 다소 바뀐다. 지 씨가 ‘확실한 약속’을 요구하자 “저도 그분들하고 나름대로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라고 말하거나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교감 가지려고 하면 가질 수 있고 안 가지라고 하면 안 가질 수 있다.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라고 답한다.
#마지막 만남에서 등장한 문제의 녹취파일
그리고 계속된 지 씨의 요구에 이 기자는 ‘녹취록’ 카드를 꺼내든다. 지 씨와 만난 자리에서 이 기자는 검찰 고위 관계자를 언급하며 노트북 PC 화면으로 녹취록을 보여줬는데, 이를 지 씨가 따라 읽기도 했다. 이렇게 따라 읽으면서 녹취된 목소리를 MBC가 보도했다.
이 기자가 지 씨 설득을 위해 검찰 고위 관계자들과의 친분을 강조하기도 했다. “높은 검사장인데, 10분 동안 통화한 굉장히 높은 사람이다”라거나 “오늘 오전에도 통화를 했다”고 말하며 취재 협조를 유도했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남이 있던 3월 22일, 문제의 녹취파일을 지 씨에게 들려준다. 채널A 측은 이 기자의 설명을 근거 삼아 7초 정도 들려줬다고 얘기를 했는데, 이 기자는 해당 녹취록 속 목소리 당사자에 대해서 “검찰 관계자”라고 말하거나 “법조인”이라고 말을 바꿨다는 게 채널A 측의 설명이다. 이 기자의 전화 발신, 수신 기록을 조회한 결과 윤석열 총장의 최측근으로 지목된 검사장과는 통화한 적이 없다는 게 채널A가 밝힌 내용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채널A 이 아무개 기자를 압수물 분석 참관을 위해 두 차례 불렀지만 아직 정식 소환조사는 하지 않았다. 검찰은 채널A 측으로부터 건네받은 이 기자의 휴대전화 등 압수한 물품에 대한 분석을 진행 중이다. 사진=일요신문DB
#사라진 자료 어떻게 확보할까
채널A는 의혹의 중대성을 감안, 전방위적인 조사를 펼쳤다. 하지만 핵심 자료가 담겨 있을 휴대전화와 노트북은 이미 초기화된 뒤였다. 이 기자가 조사를 앞두고 모두 포맷(초기화)한 것이다. 채널A는 이 기자의 전자기기에 대한 포렌식을 벌였음에도 취재 과정에서 이 전 대표의 대리인에게 직접 들려줬다는 문제의 통화녹음 파일 역시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료 확보 실패 및 취재 과정의 윤리 위반 부분을 모두 이 기자 개인 판단 및 문제로 적시했다.
채널A 보고서 공개 후 이 기자 측은 반발하고 나섰다. 이 기자의 변호인은 “채널A가 본인 동의 없이 기자의 휴대전화 2대를 검찰에 제출하는 등 진상조사가 이 기자의 절차적 권리와 인권이 무시된 채 이뤄졌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실체적 진실 규명은 검찰 수사로 넘어가게 된 상황이다. 채널A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녹취 파일 확보는 불가능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해당 녹취록은 이 기자의 휴대전화에 있었는데, 그 파일을 옮기지 않은 채로 포렌식을 했다면 결국 어느 곳에도 없는 게 아니냐”며 “MBC가 가지고 있는 제보자 관련 자료 및 내용을 확보해 채널A 측 설명과 대조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체 파악 난항 예상도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이 기자를 압수물 분석 참관을 위해 두 차례 불렀지만 아직 정식 소환조사는 하지 않은 상황이다. 검찰은 채널A 측으로부터 건네받은 이 기자의 휴대전화 등 압수물품에 대한 분석을 진행 중이다. 이 기자에 대한 조사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해당 녹취 파일을 확보해야 ‘진실’을 확보할 수 있는데 이 기자의 전자기기 포렌식이 실패하면 수사는 큰 고비를 맞게 된다.
자연스레 MBC 수사 필요성도 거론된다. 해당 파일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관련 취재 과정에서 나눈 증거들을 확보할 수 있다면 사실관계 파악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하지만 언론사 수사를 부담스러워하는 검찰은, MBC로의 수사 확대를 신중하게 고민하는 상황이다. 검찰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채널A 측과의 유착 의혹에 대한 시선을 고려, 일체의 음식조차 받지 않을 정도로 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언론과의 유착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유착으로 비춰질 일련의 실수를 하면 되겠느냐”며 “MBC 수사 필요성도 거론되지만, 이를 통해 확보할 수 있을 자료들이 무엇인지 포렌식 후에나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