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5일 오후 1시 40분쯤 경북 경주시 동천동 동천초등학교 인근 도로에서 40대 운전자가 9세 남아를 SUV로 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피해자는 오른쪽 다리를 다쳤고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교통사고 당시 CCTV 원본 영상 캡처.
논란은 피해자 가족이 교통사고 발생 당시 영상을 온라인에 공개하면서 불거졌다. 자신을 피해자의 누나라고 밝힌 A 씨는 26일 오후 SNS에 “동생과 여아(5세) 사이에 실랑이가 있었는데 상대 아이 어머니인 가해자가 자전거 타고 가던 동생을 중앙선까지 침범하면서 들이받았다. 명백한 살인행위”라며 사고 당시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이 온라인 상에 퍼지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살인미수다’ ‘단순 과실이다’라며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쟁점은 사고의 고의성 여부다. 피해자 가족은 “가해자가 200m 넘는 거리를 쫓아와 일부러 사고를 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가해자는 25일 경찰조사에서 “피해자가 자신의 자녀를 때려 잠시 이야기하자고 했는데 그냥 가버려 뒤따라가다 사고를 냈다. 고의로 한 것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객관적 증거인 CCTV 영상을 입수해 경위를 살펴보고 있다.
이번 사건의 원인이 된 놀이터에서 아동 사이의 다툼에 대한 CCTV 영상도 이미 확인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 누나 A 씨는 28일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당시 놀이터 CCTV 영상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A 씨의 설명과 당시 상황을 알고 있는 주변인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가해자의 자녀인 5세 여아와 피해자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5세 여아가 피해자에게 “야”라고 하자 피해자와 그 친구가 여아에게 “사과하라”며 어깨를 밀친 것이다. 다툼 직후 여아는 울음을 터뜨렸고 이를 본 가해자가 피해자를 약 10분가량 혼냈다는 것이다.
A 씨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 놀이터에서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 CCTV를 확인했다. 다툼이 있었던 것은 맞다. CCTV가 멀리 설치되어 있고 음성 녹음이 되지 않아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화면에 가해자가 동생을 혼내는 듯한 모습이 나온다. ‘동생이 도망갔다’는 가해자 진술과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피해자가 원래 동네에서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유명했다. 동네 주민들은 알고 있었다’는 일부 주민들의 말에 대해서는 “아이들 사이 다툼이 있었으면 어른이 타이를 일이다. 그런데 이미 한 차례 혼을 내고도 그 먼 거리를 차량으로 쫓아온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또 사고 직후 아이가 꾸벅꾸벅 사과를 한다고 하는데 원본 영상을 보면 아파하는 표정이 보인다. 법적 조치까지 생각해보지는 않았으나 악플과 일부 허위사실 유포로 피해자인 우리가 오히려 가해자가 된 기분”이라고 호소했다.
다만 처음 피해자 측이 주장했던 것처럼 가해 차량이 역주행을 해 아이를 친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일요신문이 사고 당시 10여 분의 상황이 담긴 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가해 차량이 영상에 등장하기 직전 또 다른 차량도 가해 차량과 같은 방향에서 골목으로 진입하는 장면이 확인됐다. 골목 진입 전 도로도 일방통행이 아닌 양방향 통행이었다.
교통사고 당시 CCTV 원본 영상. 구급차는 사고 발생 약 5분 후 도착했다.
한편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들은 사고 전 다툼이 고의성 판단에 주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냈다. 운전자가 보복심으로 사고를 냈다고 해도 CCTV만으로는 운전자의 마음을 알 수 없는 까닭이다. 이 때문에 “가해자의 자녀가 괴롭힘을 당했던 것이라면 부모로서 분노했을 수도 있으므로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일부 누리꾼의 의견과 달리 다툼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사고의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될 수 있다는 것이 법률 전문가들의 중론이다(관련기사 “살인미수도 가능” 전문 변호사들이 본 ‘경주 스쿨존 사고’).
이승훈 법률사무소의 이승훈 대표 변호사는 “사고가 나기 전 갈등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 사건이 운전자에게 사고 발생의 동기가 되었는지, 혹은 어떤 의도로 아이를 쫓아간 것인지 등이 밝혀져야 한다. 실제 법정에서는 사고 발생 전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사고 발생 후 운전자의 태도는 어떠하였는지 등이 재판 결과에 영향을 주곤 한다”고 말했다. 즉 아동 사이에 다툼이 있었고 이로 인한 감정이 사고의 동기가 되었다면 상해의 고의성은 인정될 수 있다는 말이다.
가해자의 처벌과 입건 여부는 경찰이 수사를 마치는 대로 판가름 날 예정이다. 운전자가 의도를 가지고 사고를 냈다는 결론이 난다면 형법 258조의 2 특수상해죄에 해당된다. 반면 과실에 의한 사고로 인정이 된다고 해도 사고 발생 지역이 스쿨존이므로 이른바 민식이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승훈 변호사는 “형법에 따르면 특수상해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민식이법은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벌금 500만~3000만 원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고의성이 인정됐을 때보다 되지 않았을 때의 처벌이 더 센 셈”이라고 말했다.
경찰 역시 이번 사안에서 고의성 여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 합동수사팀을 꾸렸다고 밝혔다. 경주경찰서는 27일 “경주 동천동 동천초등학교 인근에서 발생한 스쿨존 교통사고에 대해 한 점 의혹 없이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합동수사팀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25일 가해자를 상대로 1차 조사를 마친 상황이다. 피해자 측은 “아직까지 경찰조사를 받지 않았다. 경찰이 CCTV도 입수해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수사가 진행된다고 하니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이라고 전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