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사활을 걸었던 해외 부동산이 삐걱거리며 경영 시험대에 올랐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미래에셋대우는 투자은행(IB) 부문 직원들을 다른 부서로 재배치해 인력을 축소시켰다. 미래에셋은 IB1부문에서 기업금융, IB2부문에서 부동산PF, IB3부문에서 대체투자 등을 맡아왔다. IB 3개 부문에서 15명가량 인원이 비대면으로 고객을 상대하는 고객솔루션 부서 등으로 이동됐다.
IB부문 직원들은 혹시나 인사이동 대상자가 될까봐 크게 우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 내에서 업무전문성이 높고 고액연봉자들인 IB 직원을 다른 부서로 배치하는 것은 사실상 ‘좌천’에 가까운 인사로 평가한다.
증권업계에서는 미래에셋대우의 IB 인력 축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간 미래에셋그룹은 IB부문에 사활을 걸어온 데다 증권사들이 IB 인원을 경쟁적으로 확대해온 만큼 인력 축소는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인력 재배치를 미래에셋그룹의 IB 부문 축소 신호탄으로 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타사에 비해 2배 이상 IB 인력이 많았던 미래에셋대우가 추가적으로 조직을 축소해 사실상 ‘구조조정’을 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 증권업계는 이번 인력 재배치에는 정규직 직원들만 포함됐지만, 계약직 직원의 경우 계약만료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인원을 축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래에셋대우 측은 “IB부문에 대해 주목하고, 구조조정으로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직원들과 면담을 통해 강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인사이동이 이뤄진 것일 뿐이며, 타 부문 직원 수요가 늘어 통상적인 인력 재배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미래에셋대우의 해명과 달리 IB부문의 위기감은 상당하다. 성장동력으로 우후죽순 사들였던 해외 부동산 투자가 삐걱거리면서 유동성이 부족해지고 투자 여력이 줄어들어 증권사로서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미래에셋대우의 IB부문 수익 악화는 장기화될 것이란 목소리가 작지 않다. 2019년 추진한 빅딜이 줄줄이 수익으로 이어지지 못한 데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글로벌 경기가 좀처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당장 올해 1분기 IB부문 순이익은 287억 원으로 2019년보다 34% 감소했다.
게다가 박현주 회장이 성장성을 보고 투자한 분야가 주로 관광·호텔 관련 사업이 많아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미래에셋대우가 관심 있게 추진해온 관광·호텔업 등은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회복세나 성장세가 더딜 것으로 보이는 분야”라며 “해외 투자은행들도 부동산 투자에 소극적이라 산업구조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수조 원대 해외 부동산 투자는 독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래에셋대우가 성장동력으로 삼아온 해외 부동산 투자가 코로나19 사태로 맥을 못추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단적인 예로 미래에셋대우가 2019년 1조 원 이상 주고 매입한 프랑스 파리의 마중가타워 재매각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통상 매물로 나온 지 6개월 이상 지나면 가격이 떨어져 매각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해외 투자은행을 대상으로도 매각 대상자를 물색하고 있지만 부동산 가치가 하락한 데다 유동성이 낮은 부동산에 대규모 자금이 몰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또 미래에셋은 2019년 미국 15개 호텔을 인수하기로 한 계약을 취소하기로 했지만 매각 당사자인 안방보험과 소송을 벌이고 있다. 7조 원 상당의 미국 호텔 인수건에 계약금으로만 7000억 원 상당이 묶여 있다. 미래에셋그룹이 현대산업개발과 손잡고 뛰어든 아시아나항공 인수 역시 무기한 연기됐다. 항공사 인수와 시너지를 낼 것으로 예상되던 미래에셋대우의 싱가포르 항공기 리스사업 법인 설립도 잠정 중단돼 계속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다.
박현주 회장이 지금이라도 책임경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 건은 박 회장이 관광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보고 큰 틀에서 투자한 것”이라며 “마중가타워는 오피스 빌딩이라 공실률이 적고 임대수익이 있어 괜찮다고 하더라도 호텔이나 아시아나항공 인수 건은 관광산업 정상화가 어려워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래에셋대우의 IB 확대와 해외 부동산 투자는 박현주 회장의 의지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래에셋은 2015년 IB부문에 강점이 있는 대우증권을 인수하고, 15개국에 32개 현지법인을 세워 글로벌 투자에 나섰다. 그런데 박 회장은 2018년 돌연 미래에셋대우 회장직에서 물러나 글로벌경영전략고문(Global Investment Strategy Officer, GISO) 직함을 맡았다. 그리고는 해외 법인의 전초기지인 홍콩법인 회장을 맡아 미래에셋그룹의 대형 투자나 글로벌 전략 등을 직접 챙겨왔다.
당시 미래에셋그룹 측은 “기업 지배구조와 자본금 확충, 계열사간 거래 등은 위법·편법이 아니라 기업의 경영전략”이라고 주장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IB부문과 수조 원대 해외 부동산 투자야말로 글로벌 전략 담당이라는 박 회장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며 “대규모 손실과 유동성 위기까지 올 수 있는 상황에서 박 회장이 지금이라도 전면에 나서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로 해외에서 머물던 박현주 회장은 코로나19 사태로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박 회장은 회사에 출근하거나 대외활동을 하지는 않고 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