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부원장 인사가 5월 안에 단행될 것이란 예상이 빗나갔다. 당초 지난 5월 27일 열린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금감원 부원장 3명에 대한 인사안이 안건으로 오를 것으로 점쳐졌으나 결국 상정되지 않았다. 부원장 인사는 금감원장이 제청하면 청와대에서 인사검증을 하고 금융위원장이 임명하는 구조다.
사실 이번 정례회의에서 안건이 오르지 않은 것 자체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윤석헌 금감원장이 후보를 추려 금융위에 제청한 시기가 5월 초로 알려졌다. 부원장 인사는 검증 절차가 촘촘해 청와대에서도 시간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 아무리 서둘러도 5월 말 단행은 쉽지 않다. 이에 따라 오는 6월 정례회의에서 안건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일반적인 부원장 인사시기와 비교해보면 얘기가 다르다. 벌써 6개월째 지연되고 있다. 금감원 부원장 인사는 통상 연말에 이뤄진다. 부원장 임기는 3년이지만 관행처럼 2년을 채우면 교체됐는데, 인사가 미뤄지면서 교체 대상에 오른 부원장들의 재임 기간은 이미 2년을 넘었다.
금융감독원 부원장 인사가 지연되면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금융위-금감원 힘겨루기에 인사 지연?
인사가 늦어지는 배경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이번 인사는 총 4명의 금감원 부원장 가운데 3명을 교체하는 작업이다. 올해 총선이라는 대형 이벤트가 있었고, 지금도 파생결합상품(DLF)과 라임, 코로나19 사태라는 무거운 현안을 안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은 인사 지연의 결정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인사를 둘러싼 금융위와의 신경전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12년 전부터 여러 차례 충돌해왔다. 태생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08년 금융위가 신설되면서 정책 수립과 운영, 감독 역할을 총괄하고 금감원은 감독 권한을 위탁 받기로 했는데 이 권한이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충돌했다. 상급 기관인 금융위에 권한을 몰아줘야 한다는 쪽과 금융과 관련해 관료조직에 과도한 힘이 집중되면 안 된다는 쪽이 대립했다.
인사를 둘러싼 금융위-금감원 갈등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이어졌다. 발단은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석헌 금감원장이 당시 권인원 부원장과 이상제 부원장을 교체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금융위 쪽 인사로 분류된다. 특히 이상제 부원장은 금융연구원 출신으로 기획재정부 장관 자문관을 거쳐 금융위 상임위원을 지냈다. 윤 원장이 강도 높게 추진하던 키코 배상과 관련해 다른 의견을 내면서 이목을 끌었다. 그는 이후 소비자 보호 담당임에도 키코 분쟁조정위원회에서 배제됐다.
곧바로 금융위가 제동을 걸었다. 두 부원장을 교체하려면 윤 원장의 ‘오른팔’로 통하던 원승연 부원장 사표를 먼저 받으라고 요구했다. 원 부원장은 윤석헌 원장과 같은 학자 출신이다. 금융감독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는 임원으로, 높은 신뢰를 받아왔다. 원 부원장은 취임 이후 금감원 특별사법경찰 도입,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감리 문제 등 민감한 사안들을 두고 금융위와 설전을 벌이는 등 ‘돌격대장’ 역할을 맡았다.
이 때문에 부원장 인사는 여러 차례 단행될 듯하면서도 사실상 원승연 부원장의 거취를 놓고 금감원과 금융위가 물러서지 않으면서 지체됐다. 여기에 종합검사 부활, 노동이사제 도입, DLF 사태와 관련한 은행 CEO(최고경영자) 중징계 등 굵직한 현안을 두고 두 기관이 매번 다른 의견을 내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금융위는 금감원 예산을 2년 연속 줄였고, 금감원은 노동조합이 나서 “금융위를 해체해야 한다”고 강도 높게 주장했다.
지난 2월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윤 원장이 공식석상에서 “자꾸 싸운다고 해석하지 말라” “갈등은 없다”는 취지로 신경전 논란을 일축했지만 금융권에선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여전히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윤석헌 원장은 원 부원장의 유임을 원했고, 금융위는 교체를 요구하면서 접점을 찾지 못했다.
실제 윤석헌 원장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2년 연속으로 아래 직급부터 교체하는 ‘역주행’ 인사를 단행하면서 ‘버티기’에 들어갔다는 해석도 나왔다. 통상 금감원은 부원장을 먼저 교체하고 순차적으로 그 아래 직급을 이동해왔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에서도 ‘두 기관이 일단 합의를 보고 말해달라’며 사실상 손을 놨다는 말이 돌 정도로 두 기관의 갈등이 심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사진=최준필 기자
#부원장 교체는 사실상 확정, 불거진 변수
이번 부원장 교체 대상에는 갈등의 중심에 섰던 원승연 부원장과 권인원 부원장이 포함돼 있다. 특히 원 부원장은 지난 3월 사의를 표명했고, 최근 인수인계를 위한 작업도 모두 마치고 다시 학계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나머지 한 명은 유광열 수석부원장이다. 이상제 부원장은 지난 4월 김은경 한국외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로 교체됐다. 이번 인사가 단행되면 올해 총 4명의 부원장이 모두 바뀌게 된다.
빈자리를 채울 인물들의 윤곽도 드러나 있다. 신임 수석부원장은 금융위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김근익 원장이 유력하다. 권인원 부원장 자리에는 최성일 전 업무총괄 담당 부원장보와 김동성 현 은행담당 부원장보가 하마평에 오른다. 원승연 부원장이 맡은 자리는 김도인 전 금감원 금융투자담당 부원장보가 거론된다.
이에 따라 금융위와 금감원의 갈등도 자연스레 해소된 것으로 보이지만, 변수가 있다. 최근 윤석헌 원장이 금감원 ‘2인자’ 자리인 수석부원장 직책을 폐지하고 부원장 4명 체제로 전환할 것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윤 원장은 지난 5월 22일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전체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수석부원장 자리가 관행처럼 유지돼 왔다”며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 중인데, 부원장이 임명될 때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법적으로 정해진 자리는 아니다. 금감원 조직관리규정에 따르면 원장이 부원장 중에서 1인을 수석부원장으로 지정할 수 있다. 규정대로라면 원장이 수석부원장을 지정만 안 하면 된다. 이 자리를 폐지하고 부원장 4명에게 권한을 분산한다는 것이 윤 원장의 계획으로 알려졌다. 그가 취임 이후부터 강조해오던 금감원 독립성 강화 작업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금감원은 이미 지난 2월 조직관리규정에서 수석부원장과 관련한 문구들을 대거 수정하거나 삭제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수석부원장은 그동안 금융위나 기획재정부 출신 인사가 선임돼 왔다. 감시자이자 금융위와 금감원을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이었던 셈이다. 금융위가 윤 원장의 계획을 이견 없이 받아들일지, 제동을 걸지는 이번 부원장 인사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로 떠올랐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사실상 새로운 변수인 셈이라, 금융위와 금감원의 신경전이 부원장 교체만으로 해소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