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부회장의 리더십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을 통해 신용판매(일시불·할부)와 현금서비스, 카드론을 기준으로 신용카드 이용실적을 분석한 결과 현대카드의 시장점유율은 2018년과 2019년 각각 15.2%, 15.6%로 8개 카드사 중 4위에 그쳤다. 2017년까지 공고한 3위를 유지했던 것을 감안하면 부진한 성적이다. 그 사이 2017년까지 업계 4위였던 KB국민카드가 2018년 점유율 15.9%로 현대카드를 제치고 3위에 올랐고 2019년 16.6%로 입지를 더욱 확고히 했다.
현대카드의 덩치도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현대카드의 영업수익은 전년 대비 1188억 원 줄어든 2조 3708억 원에 그쳤다. 다만 순이익은 178억 원 늘어난 1676억 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영업비용을 1338억 원가량 줄인 덕분이다. 온라인 발급 카드를 늘리고 지점을 통폐합하는 등 비용 절감을 통해 수익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현대카드 직원들은 500여 명이 권고사직을 강요당하는 등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며 올해 2월 노동조합을 설립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카드업 전망이 매우 나쁘다는 점이다. 카드사는 본래 신용판매와 카드론에서 시장지위를 갖고 있었으나 지급 결제 시장에서는 핀테크 업체들에 밀리고, 가맹점 수수료에 의존하던 신용판매 부문은 정부의 수수료 인하 정책으로 수익성이 떨어졌다. 카드론도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 이후 설 곳이 줄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시장 지위를 핀테크와 인터넷전문은행에 빼앗기고 있고 우리나라 카드산업이 규제 위주로 간다는 점에서 미래 가치를 반영하면 카드사의 가치는 계속 깎일 수 있다”고 봤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신사업도 수익이 보장되지 않아 성공하기 쉽지 않으며 해외 진출도 큰 이익이 나지 않고 자리 잡기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하소연했다.
현대카드 기업공개(IPO·상장)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현대카드는 2019년부터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추진해 그해 연말 주간사로 NH투자증권과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한국투자증권을 선정했다. 재무적투자자(FI)들의 자금 회수를 돕기 위한 차원이다. 2017년 글로벌 사모펀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지분 9.99%)와 싱가포르투자청(9%), 칼라일그룹 계열의 알프인베스트파트너스(5.01%)는 GE캐피털이 보유한 현대카드 지분 43% 중 24%를 사들인 바 있다.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서도 IPO는 필요하다. 현대커머셜은 당시 GE캐피털의 나머지 지분을 인수해 현대카드 지분율을 5.54%에서 24.54%로 끌어올리면서 최대주주 현대차(36.96%)의 뒤를 이었다. 여기서 현대커머셜의 최대주주는 현대차(37.5%), 2·3대 주주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차녀인 정명이 현대커머셜·현대캐피탈·현대카드 부문장(25%)과 정태영 부회장(12.5%)이다. 현대차 금융계열사 중 정 부회장 일가가 개인 지분을 가진 유일한 기업으로, 현대카드 IPO 이후 현대커머셜이 FI 지분을 흡수하면서 정 부회장 일가가 금융계열사를 독립 경영하거나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지배력을 더 공고히 할 것이란 의견 등 여러 시나리오가 나온다.
IPO에 투자금 회수와 오너 이슈 등이 걸려 있지만, 현대카드의 최근 성적은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만한 수준이 아니다. 게다가 금융계열사를 이끌어온 정 부회장이나 투자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FI, 최대주주이자 현대차그룹을 이끄는 정의선 부회장 등 주주마다 기대치가 달라 셈법이 복잡해진 것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FI는 물론 정의선 부회장이나 정태영 부회장 등 주요 오너들 입장에서도 상장은 필요하다”면서도 “실적과 업황이 좋으면 모두에게 ‘윈윈’이 되겠지만 상황이 나쁜 지금은 자금 사정이나 경영계획에 따라 주주마다 계산이 서로 다를 것”이라고 봤다.
그는 이어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때까지 기다리거나 업황·실적을 고려해 로스컷(손절매)을 원하는 등 엇박자가 날 수 있다”며 “예컨대 정의선 부회장의 경우 현대차 덕에 성장한 금융계열사를 넘겨주긴 싫을 테지만 현대차의 재무상황이나 투자계획상 매각 대금을 원할 수 있고, 혹은 다른 주주가 이런 입장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부회장의 리더십이 각 계열사 실적 부진과 업황 악화로 흔들리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현대캐피탈 건물 전경. 사진=일요신문DB
상용차와 건설장비 등 산업재 할부·리스금융을 주력으로 하는 현대커머셜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7년 828억 원이던 영업이익은 2018년 352억 원으로 두 토막 나더니 2019년 347억 원으로 더 떨어졌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현대커머셜은 대체투자와 사모펀드 등에 투자하면서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그나마 자동차 금융사업을 해온 현대캐피탈은 2017년 3236억 원, 2018년 3474억 원, 2019년 3728억 원으로 비교적 안정적이다. 다만 높은 현대차 의존도에서 비롯한 것으로서 정 부회장 경영능력과는 무관하다는 지적이 있다. 더욱이 기존 사업에서 수익성을 찾지 못하는 카드사들이 자동차 금융시장에 뛰어들면서 시장이 과열돼 그간의 입지를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의 카드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금융은 기존 오프라인에서 딜러를 소개받아 상품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고객들이 온라인을 통해 직접 상품을 선택하는 추세”라며 “은행과 카드사들이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에 대거 진출해 경쟁이 치열해져 전통 캐피탈사 입장에서는 자기 밥그릇을 지켜야 하는 싸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의 IB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를 살 때 금융계열사에 혜택을 몰아줘서 이익을 냈을 뿐 정 부회장이 어떤 역할을 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며 “정 부회장이 현대라이프생명에 손을 댄 뒤 좋지 않은 결과를 내면서 경영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고 귀띔했다. 정 부회장은 2012년 현대차그룹이 녹십자생명을 인수하며 보험업에 뛰어들 당시 ‘현대카드식 혁신’을 강조하며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그러나 이후 지속된 적자로 2018년 9월 대만 푸본생명에 최대주주 자리를 넘겨주면서 손을 뗐다.
기대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 부회장은 2003년 현대카드 대표에 취임하면서 남다른 디자인과 슈퍼콘서트 등 문화 마케팅으로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혁신성과 오너 경영인으로서 추진력이 결합한다면 전세 역전이 가능하다는 것. 현대카드가 타사보다 앞선 PLCC 전략으로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15.5% 증가한 902억 원을 기록한 점도 긍정적인 전망에 힘을 보탠다.
서지용 교수는 “정 부회장은 다양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도전을 많이 한 인물로 현대카드를 업계 상위권으로 이끌어왔다. 오너 경영인으로서 다른 카드사보다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라며 혁신 가능성을 높게 봤다. 이어 “PLCC로 카드업 비용절감과 수익창출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자동차 금융에 강한 캐피털에 집중해야 한다”며 “카드사만 가진 데이터와 분석기법을 활용해 가맹점 매출 향상에 필요한 정보나 소비자 동향지수 등 정부에 도움을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카드업이 기간산업처럼 자리 잡아 위상을 제고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