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천 집행위원장
박 위원장은 국내 타악기의 명인으로 동서양은 물론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개성이 강한 ‘연주자’라는 점에서 처음 소리축제 집행위원장이 됐을 때 자리를 지키고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소리축제에 몸을 담근 지가 벌써 8년째이다. 2011년 소리축제 프로그래머로 들어왔다가 2014년 집행위원장으로 낙점을 받았고 당시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갈팡지팡하던 소리축제를 반석에 올려놓았다.
박 위원장은 축제의 국내외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기여하고 조직 내부와 지역사회의 신망을 얻어 축제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9월에 치러질 소리축제의 지속성과 안정적 운영을 이어가고 향후 축제의 비전과 혁신을 제시할 적임자로 지목됐다.
그러나 박 위원장이 새롭게 맞이할 시간들이 그리 녹녹하지는 않다. 올해 소리축제를 앞두고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맞나 준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내년 소리축제 20주년이라는 만만찮은 과제도 안고 있다. 박 위원장을 만나 올해 소리축제의 방향과 준비상황,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봤다.
▲ 집행위원장에 3연속 임명됐다. 소감은?
- 현재의 코로나19 상황에 따른 대책을 시시각각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 조직위 차원의 당면 문제가 있어, 편하게 제 개인의 소회나 심경을 말씀드리기가 참 송구합니다. 세 번째 연임은 소리축제 역사상 전에 없던 일이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 한편으로 큰 부담과 책무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는 코로나19의 파고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지,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축제의 역할과 의미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보다 깊은 고민과 진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소리축제는 글로벌 음악축제로서, 여느 축제보다 국제 규모의 프로젝트나 협업이 많고, 인적 교류가 활발한 조직입니다.
이러한 교류와 협업 속에서 소리축제만의 글로벌 위상과 기여를 찾아가고 있고, 이에 대한 평가가 매우 좋아졌기 때문에 더욱더 고심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맡겨진 숙제가 많은 만큼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 소리축제에서 집행위원장은 어떤 역할을 담당하나?
- 단순하게는 소리축제의 기획과 운영, 실행 전반을 총괄하고 책임지는 자리입니다. 무엇보다 단기적, 또는 중장기적 축제의 방향을 결정하고 이끌어나가는 자리입니다. 제게 맡겨진 소임을 잘 해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안팎의 소통, 교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위 내부에 있는 조직위원들과 사무국 직원들, 지역 예술가와 해외 예술가, 음악이나 예술 관련 국내외 기관들 사이의 교류와 관계망, 그리고 새롭게 연결시켜야 할 협업의 콘텐츠를 소리축제가 창의적으로 발상하고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열린 소통과 교류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술가들은 다들 고집스런 면이 있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부단히 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당연히 갖고 있을 집념이나 장인정신이 고집스런 면모로 드러날 때가 있는 것이죠.협업에는 가끔 이런 부분이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저나 소리축제의 역할이 이것을 음악적, 예술적으로 설득하고 하나로 모으기 위해 좀 더 폭넓은 식견과 진정성, 미래에 대한 창의적·철학적 의견 개진 등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금의 소리축제 집행위원장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은 그런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달라질 사람들의 정서와 라이프 스타일 등에 따라 문화예술도 어떻게 적응하고 또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갈 것인지 매우 엄중한 과제로 안겨졌습니다.
▲ 소리축제의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와 대책은 무엇인가?
- 저에게는 지금 세 번째 연임과 코로나19 이슈가 가장 중요합니다. 현재 가장 저를 압박하고 다그치는 주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여기에 내년이면 소리축제가 20주년이 됩니다. 코로나19가 아니었어도 연임과 함께 소리축제의 새 비전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큰 변수와 예상치 못한 시대적 변화 앞에 서 있습니다. 당장 올해 축제를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치를 것인지 큰 과제가 놓여있고, 이는 20주년을 바라보는 새로운 축제 비전과 패러다임의 변화를 반영하는 방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과의 교류와 만남 자체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지혜와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전화와 이메일로 모은 의견들과 현재의 상황을 체크하고 있지만 번뜩이는 결론에는 다다르지 못했습니다.
축제는 시대를 반영하고, 예술은 당대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삶이 앞으로 어떻게 바뀌고 생각이 변해갈 것인지 주시하겠습니다. 이 부분을 간과해서는 미래 비전을 세우기 어렵습니다. 좋은 방향이 설정되면 다시 또 말씀드릴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소리축제 발전을 위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 ‘스스로의 개혁’입니다. 현재의 전북이 갖고 있는 수많은 무형유산들은 그때그때 혁신적인 예술가들에 의해 이루어져 전통이 되고, 역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소리축제 수장으로서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예술가로서 때로는 절망하고 좌절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선진적 예술,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망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스스로를 혹사하지 말라고 걱정하지만, 저는 저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이 그런 책임과 갈망을 느끼고, 좀 더 치열해지길 바랍니다. 그러면 그 속에서 소리축제는 자연스럽게 발전해가고 그런 혁신적인 예술가와 예술을 멋지게 담아내는 좋은 그릇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소리축제는 20년 동안 그 역할을 매우 잘 수행해 왔습니다. 앞으로는 미래를 그리는 혁신적인 문화유산이 소리축제를 통해 발견되고 양성되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수장으로 있었던 시간동안은 그 길을 향해 어렵지만 힘겨운 발걸음을 옮겨왔고 조금씩 그 성과를 인정받아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길을 국내외 깨어있는 예술가들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 전주세계소리축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견해차는 여전히 존재해 보인다. 소리축제는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 언제, 어디든 전통을 소재로 하는 축제는 늘 이 문제가 존재해 있습니다. 논란의 핵심은 현재 전통의 모습과 속성, 흐름이 지속되길 바라는 기득권 세력, 새로운 변화 속에서 기회를 얻고자 하는 세력 사이에 늘 보이지 않는 치열한 다툼이 있다는 것입니다.
소리축제는 이해를 조정하는 집단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의 음악적 견해와 가치 차이, 신구 세력 간의 가치관 차이 등을 조화롭게 담아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많은 음악가들의 이해와 가치, 기회가 고루 주어질 수 있도록 주제와 콘셉트 등에서 다채로운 변주를 주어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받는 축제로 서겠습니다.
▲ 올해 소리축제가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올해 축제의 주제는 무엇이고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나?
- 지난주까지 7차 비상 대책회의를 통해 여러 변수에 따른 대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코로나19 상황이 순간순간 변화하고 있어, 최종 결정은 7월 16일 프로그램 발표회를 통해 말씀드릴 예정입니다.
올해 19회를 맞은 소리축제는 오는 9월 16일부터 20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전라북도 14개시군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지난해 관악기에 이어 현악기를 주요 소재로 하고, 현악기의 특징인 이음과 줄 등을 모티브로 주제를‘__잇다(Link)’로 정했습니다.
올해 축제는 이 같은 큰 틀 아래 ▲개막공연, 산조의밤, 광대의노래 등 대표 프로그램 통해 동서양 현악기 집중 조명 ▲‘찾아가는 소리축제’ 강화로 프로그램 규모와 의미 확장 ▲현악기 ‘이음’의 의미를 담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포용한 프로그램 배치라는 세 가지 중점 추진 방향을 정해 놓았습니다.
또한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러시아 포커스’ 특집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소리축제와 MOU를 체결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재 ‘페테르부르크 콘서트홀’ 등 양국 관계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외 예술가들의 교류와 협업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계획했던 것들이 얼마나 실현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올곧은 전통 참신한 현대’가 소리축제에서 일하며 스스로가 규정한 저의 지향점입니다. 우리 지역의 가장 큰 자산인 ‘전통’을 통해 예술적 성장을 이루는 축제, 새로운 전통을 고민하는 축제, 한국 예술축제의 자존심을 지키는 축제, 제 임기 동안은 그런 순도 높은 예술축제로서 국내외 많은 예술가와 관객들이 지지하는 축제로 성장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묵묵히 맡겨진 시간동안 우직하게 그 길을 가고자 합니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박재천 집행위원장
박재천 집행위원장은 1961년 서울 출생이다. 초등학교 고적대에서 작은북을 연주한 것이 음악인으로서 시작이다. 대학에서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고 군악대, 오케스트라, 그룹사운드, 월드뮤직, 판소리, 사물장단과 굿장단, 프리뮤직, 현대음악, 전위재즈의 역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세계적인 즉흥음악 타악 연주자로 명성을 쌓았다.
클래식과 재즈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판소리 심청가를 완창으로 배우고 진도씻김굿의 전통 굿 장단과 사물놀이 장단을 섭렵했다. 22년전에 판소리를 재즈와 록 음악과 접목하기 시작했으며 굿 장단을 드럼으로 연주하고 사물놀이의 명인인 이광수와의 음악적 교류 또한 20여년에 이른다.
오정해가 부른 KBS드라마 ‘태양인 이제마’의 메인 주제곡 ‘여인’을 작곡했다. 2012년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안숙선 명창과 이광수 명인, 김청만 명인, 미연 등과 함께 공연한 ‘조상이 남긴 꿈’은 한국음악의 즉흥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프로젝트로 국악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매년 해외연주와 국내의 전위재즈 프로그램인 서울즉흥연주집단(Seoul Meeting Free Music/SMFM)을 2005부터 기획하고 한국의 재즈연주가 공연프로그램 대한민국 재즈열전(JAZZ 列傳)시리즈를 제작하고 있다. 한국장단을 드럼과 외국 타악기로 연주하는 한국장단법 ‘코리안그립(Korean Grip)’을 창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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