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생활을 하는 쿠팡맨들 사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쿠팡맨이 물건을 배송하고 있는 장면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연합뉴스
피해자 B 씨에 따르면, 지난 2월 27일 새벽 3시쯤 가해자 A 씨는 방문을 열고 들어와 침대에 바로 누워 자고 있던 피해자 B 씨의 복부와 성기 부위 위로 올라탔다. B 씨는 “너무 놀라서 A 씨를 밀쳐냈다. 처음엔 누군지 몰랐다. 옆방을 쓰고 있던 A 씨라는 것을 확인하곤 ‘미쳤냐, 나가라’고 소리쳤다. A 씨는 횡설수설하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며 “성기 맞닿은 느낌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B 씨는 지난해 11월 지방에서 올라와 쿠팡맨으로 입사했다. B 씨는 줄곧 쿠팡이 제공하는 숙소에서 A 씨와 함께 생활해왔다. A 씨와 B 씨는 방이 3개인 숙소에서 각자 방을 썼다.
가해자 A 씨는 “화장실을 갔다가 그 방에 들어간 건 맞다. 하지만 올라탄 게 아니라 옆에 바로 누웠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잠결에 그랬다”며 “그때 나는 B 씨에게 두들겨 맞기도 했다. 오히려 내가 피해를 입었다. 그때는 성추행 아니라고 하더니 이제 와서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B 씨는 이 사건을 회사에 알렸지만 면박을 받고 배송 업무를 계속해야 했다. 사건 당일 새벽 한숨도 잘 수 없던 B 씨는 당일 오전 9시까지 출근해 캠프 관리자(CL)에게 당시 상황을 알렸다. B 씨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CL이 ‘그래서 어쩌란 거냐? 장난친 거 아니냐? 배송 나가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배송을 나간 B 씨는 쿠팡 본사로 직접 항의했고, 그제야 진술서를 작성하고 연차 휴가를 쓰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서울 중구에 있는 한 쿠팡 캠프. 쿠팡맨들은 캠프로 가서 물량을 배정 받고 배송을 시작하는 등 평소 캠프 관리자의 관리를 받는다. 이 캠프는 기사의 특정 내용과는 관련없다. 사진=최준필 기자
이후 쿠팡은 가해자 A 씨와 피해자 B 씨가 한 달여 동안 같은 숙소를 쓰도록 방치했다. B 씨가 공간 분리를 요구하자 본사는 B 씨에게 이사할 것을 요구했다. B 씨가 “피해자가 이사하는 건 부당하다”며 가해자를 이동시켜달라고 요구했지만 본사는 한 달여 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같은 기간 A 씨는 대기발령 명령을 받아 한 달여 동안 줄곧 숙소에서 생활해왔다.
B 씨는 “A 씨가 대기발령 상태로 숙소에 계속 있으니까 미칠 것 같았다. 일이 끝나도 동료들과 밥 먹고 술 마시고 일부러 늦게 들어갔다. 잘 땐 방문을 잠갔다. 한 달 동안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쿠팡은 3월 말이 돼서야 A 씨를 다른 숙소로 이동시켰지만, 며칠 뒤인 4월 초 A 씨를 B 씨와 같은 일터로 복귀시켰다. B 씨는 “A 씨가 캠프로 복귀한 걸 보고 충격받았다. 캠프 관리자들에게 항의했지만 ‘수치스러웠느냐? 정직 3일 징계가 끝나서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B 씨의 항의가 계속되자 A 씨는 결국 타지역으로 발령됐다.
쿠팡 본사는 B 씨에게 전문 심리 상담을 받게 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상담은 40분짜리 1회에 그쳤다. 이후 별다른 후속 조치는 없었다.
‘성폭력 사건’으로 미운털이 박힌 피해자 B 씨는 캠프 관리자들에게 보복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B 씨 주장에 따르면, 캠프 관리자 C 씨는 5월 15일 오전 9시께 하루 배송 물량을 배분받기 위해 주간조 쿠팡맨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B 씨에게 “수염을 깎지 않을 거면 사실확인서 쓰고 집에 가라”고 면박을 줬다. 당시 B 씨는 두 달여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B 씨는 “면도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관리하면서 기른 거라고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근로기준법에 위배되는 것 같다고 따졌더니 당시 CL이 ‘근로기준법보다 사내규정이 위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일도 면도를 하지 않으면 승무 정지시키겠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B 씨는 손가락 인대가 파열되면서 전치 12주 진단을 받았다. 캠프 관리자에게 물량 조정을 요청했지만 캠프 관리자는 되레 B 씨에게 조기 퇴근을 금지하고 8시까지 사무실에서 앉아 있으라고 지시했다고 B 씨는 주장했다. 사진=B 씨 제공
보복 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B 씨의 수염을 걸고넘어진 캠프 관리자 C 씨는 5월 25일 B 씨의 조기 퇴근을 금지했다. 쿠팡맨은 보통 당일 할당 받은 물량을 일찍 끝내면 캠프로 돌아와 조기 퇴근한다. 코로나19 이후엔 본사가 지침을 내려 쿠팡맨의 조기 퇴근을 권고했다.
손가락이 다친 B 씨가 회사가 정한 ‘인센티브 기준치 물량’만 하겠다고 요청했다는 이유였다. 쿠팡맨은 기준치를 넘어서는 물량에 대해선 인센티브를 받는다. B 씨가 25일 당일 받은 물량은 162가구, 304개 기프트(제품)였다. B 씨가 맡은 권역의 인센티브 기준치 물량은 136가구, 255개 기프트였다.
B 씨는 “일하다가 다친 손가락이 점점 붓길래 아파서 물량 조정을 요청했다. 갑자기 저녁 8시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으라고 했다. 정해진 일과 시간이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기준치만 할 거면 시간을 채우라는 뜻이었다. 보복이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다 가라는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느냐고 묻자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서 앉으면 된다’고 답하더라”고 주장했다.
B 씨는 결국 당일 연차를 썼고 다음 날 병원을 찾았다. 서울아산병원에서 MRI를 찍은 B 씨는 전치 12주 진단을 받았다. 진단명은 ‘중수지골 및 지골 간 관절에서 손가락 인대의 외상성 파열’이었다. 손가락의 인대가 파열된 것이다.
B 씨가 25일 당일 받은 물량인 162가구는 시간당 20가구 이상을 배송해야 감당할 수 있는 물량이다. 3분당 1가구를 해결해야 하는 셈이다. 주간조 근무 시간은 총 11시간이다. 식사 시간 1시간을 제외하면 10시간이다. 물량 상하차 시간 각각 1시간씩 2시간을 제외하면 실제 배송에 주어진 시간은 8시간 남짓이다.
B 씨는 5월 25일 인센티브 기준 가구수를 26가구 넘긴 162가구를 배정받았다. 1시간에 20가구, 3분에 1가구를 배송해야 하는 꼴이다.
전국 각지의 복수 쿠팡맨들은 입을 모아 “1시간에 20가구를 해결하려면 말 그대로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고 설명한다. 지난 3월 배송 중 사망한 쿠팡맨이 1시간에 20가구 수준의 물량을 해결해왔다. 사망한 쿠팡맨은 배송 물건을 들고 계단을 오르다가 쓰러져 사망했다.
캠프 관리자 C 씨는 2일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회사가 정해둔 기준치가 어디 있느냐, 그런 건 없다”면서도 수염을 문제 삼으며 일을 시키지 않고 집에 가라고 한 사실과 물량 조정과 관련해 조기 퇴근을 금지시킨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내가 그것에 답을 해야 하나. 본사 홍보팀을 통해 답하겠다”고 답했다.
쿠팡 홍보팀 관계자는 6월 2일 오후 2시 46분 관련 입장과 사실 확인 요청에 “확인해보겠다”고 했고 같은 날 오후 4시 45분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 마저 파악하고 연락할 텐데 조금 늦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답한 뒤 연락을 피하고 있다. 그 이후 일요신문은 여러 차례 쿠팡과 연락을 시도했지만 묵묵부답이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