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당권 구도에 ‘이이(이낙연·이광재) 연대론’이 변수로 떠올랐다. 여권 유력 대권 잠룡 이낙연 의원이 8·29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은 뒤 정책위의장으로 이광재 의원을 삼고초려한다는 게 ‘이이 연대론’의 핵심이다.
가능성은 반반이다. ‘이이 연대론’이 현실화할 경우 ‘이낙연(당 대표)·김태년(원내대표)·이광재(정책위의장)’로 이어지는 삼각 편대가 당 신주류로 부상할 전망이다. 대세론 주자와 당권파 친문(친문재인)계, 원조 친노계가 결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광재 의원이 5월 7일 의원총회에 참석한 모습. 사진=박은숙 기자
이이 연대론의 군불이 지펴진 것은 4·15 총선 직후다. 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국난극복위)는 4월 28일 포스트코로나대책본부를 신설하고 당선자 신분이던 이광재 의원을 본부장으로 임명했다. 국난극복위 위원장은 이낙연 의원이다. 비상경제회의를 직접 주재하는 문재인 대통령·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를 이끄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이이 조합’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이다. 이낙연 이광재 의원은 21대 국회 개원 전부터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정책 과제를 직접 챙겼다.
특히 4·15 총선 후 이낙연 의원의 대선주자급 행보는 연대론을 한층 밀착시켰다. 이낙연 의원은 21대 국회 보좌진을 사실상 차기 대선캠프로 꾸렸다. NY(이낙연)계인 노창훈 전 국무총리실 정무지원과장과 이제이 전 국무총리실 연설비서관은 수석 보좌관과 4급 보좌관직을 각각 부여받고 이낙연 의원실에 합류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둘은 일에 있어선 까다롭기로 유명한 이낙연 의원이 신뢰하는 최측근”이라며 “NY계 사단의 드림팀이 다시 뭉친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제 또는 국제관계 분야 전문가’ 모집으로 화제를 모았던 5급 비서관에는 하정철 미국 변호사가 채용됐다. 그는 문 대통령 당선 후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거쳐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에서 전문위원(3급 상당)으로 재직했다.
이광재 의원도 광폭 행보를 펼쳤다. 제35대 강원도지사 이후 9년 만에 제도권 정치에 복귀한 그는 4·15 총선 직후 여당 내 ‘공부모임’을 주도했다. 이광재 의원은 ‘우후죽순(가칭)’이란 모임을 주도하며, 경제·외교의 대안을 찾기에 나섰다. 특히 그는 여야 정파를 초월한 초당적 모임을 만들겠다며 연일 통합 행보를 펼쳤다. 그러자 ‘우후죽순’ 모임 초반부터 20여 명의 여야 의원들이 합류 의사를 밝혔다.
이광재 의원은 이와 관련해 “진영 논리를 깨고 협치하는 게 소망”이라며 “지긋지긋한 분열 정치를 끝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친노·친문 구분의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한 그는 ‘동북아 시대’ 등 거시적인 담론을 주창했다. 그러면서 “노무현 정신은 이어받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놓아드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광재 의원의 ‘차기 정책위의장설’이 급부상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여권 한 관계자는 “이광재 의원이 공부모임을 주도할 때부터 민주당 의원실 보좌관들 사이에선 ‘차기 정책위의장’을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많았다”며 “이낙연 의원이 8·29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오르면 이이 연대가 현실화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낙연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하지만 민주당 또 다른 관계자는 “섣부른 추측”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낙연 호가 출범해도 당 대표가 단독으로 정책위의장을 선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은 지난해 1월 21일 의원총회에서 조정식 정책위의장을 만장일치로 선출했다. 그간 당 대표가 지명하던 절차를 ‘원내대표 추천→의원총회 의결’로 절차를 바꾼 것이다. 김태년 원내대표 의중이 중요한 셈이다.
다만 이낙연 의원이 당 대표에 오를 경우 ‘이심(이낙연 의중)’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새 정책위의장을 둘러싼 이낙연 의원과 김태년 원내대표의 합심 여부는 이이 연대의 파생물인 ‘NY계+당권파 친문계+원조 친노계’의 전면적 결합의 첫 번째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선자 신분이던 이광재 의원은 한 방송에서 ‘이낙연 의원이 도움을 요청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글쎄요, 세력을 만드는 정치가 아니고 국민에게 먼저 얼마나 책임감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고 정책적 능력이 있느냐, 그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관전 포인트는 ‘이이 연대의 현실화 가능성’과 ‘여권 내부 권력구도’에 미치는 영향이다. 양측 인사들은 선을 긋지만, 이낙연 김태년 이광재로 이어지는 삼각 편대가 현실화될 경우 정권 연장을 위한 최상의 조합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크다. 우선 이들의 지역구도는 ‘호남(이낙연)+수도권(김태년)+강원(이광재)’을 축으로 한다. 시너지효과만 극대화된다면, 탄탄한 지역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포스트 문재인에 가장 근접한 이낙연 의원과 당권파 친문계의 핵심인 김 원내대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린 이광재 의원의 만남은 여권 지지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카드로 꼽힌다.
범 친문계 중 당권파 친문계와 원조 친노계는 비교적 가까운 그룹에 속한다. 이들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것은 ‘금강팀’이다. 이는 부산팀과 함께 2002년 노무현 대선 캠프의 양대 산맥 중 하나였다. 이광재 의원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금강팀의 핵심 실무진이었다. 당권파 친문계의 좌장 격인 이해찬 대표도 금강팀이었다. 반면, 전재수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최인호 의원 등은 부산팀에 속해 있었다. 경우에 따라 민주당의 차기 대선 경선도 2017년 구도였던 ‘부산팀 vs 금강팀’으로 좁혀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년 전 민주당 대선 경선 구도는 ‘부산팀 문재인 vs 금강팀 안희정’의 대결이었다. 2년 후 민주당 대선 경선 구도는 ‘금강팀이 지원하는 이낙연 vs 부산팀이 미는 특정 후보‘ 간 대결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권 일각에서 한때 ‘김경수(경남도지사) 대안론’이 부상한 것도 이 같은 정치공학적 셈법과 무관치 않다. 다만 김 지사도 2002년 노무현 캠프에서 금강팀의 일원이었다.
삼각 편대가 급한 쪽은 이낙연 의원이다. 4·15 총선 후 40%대를 돌파했던 이낙연 의원의 차기 대선 지지도는 최근 한풀 꺾였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5월 25∼29일까지 조사(결과 공표 6월 3일·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한 결과에 따르면 이낙연 의원은 한 달 전보다 5.9%포인트(p) 하락한 34.3%에 그쳤다. 12주 연속 1위 자리는 지켰지만, 총선 승리의 컨벤션 효과(정치적 이벤트 후 지지도가 오르는 현상)는 사실상 끝난 셈이다. 2위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로, 같은 기간 0.2%p 내린 14.2%였다.
민주당 8·29 전당대회를 둘러싼 당내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6월 초 이낙연 의원의 맞수로 꼽히는 정세균 국무총리가 차기 당권 도전을 고심 중인 김부겸 전 의원을 우회적으로 지지할 것이란 얘기가 나돌았다. 이낙연 대세론 저지를 위한 이른바 ‘정세균·김부겸’ 연대론이다.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정 총리는 김 전 의원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이낙연 대세론을 막고 대구·경북(TK) 출신인 김 전 의원은 약한 고리인 호남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양측의 이해관계는 꼭 맞아떨어진다. 이 경우 차기 당권 경쟁은 포스트 문재인을 향한 전초전적 성격이 될 전망이다(관련기사 현 총리 띄워 전 총리 막기? ‘정세균 대안론’ 낮은 지지도의 역설).
하지만 이이 연대론과 마찬가지로 정 총리와 김 전 의원 측은 전략적 제휴설에 대해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만에 하나 정세균·김부겸 연대론이 이낙연 대세론을 제어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이 연대론의 다른 축인 ‘이광재 대안론’이 급부상할 수도 있다. 이광재 의원이 정 총리와 맞대결을 펼치는 시나리오다. 여의도 한 관계자는 “현실 가능성과는 별개로, 차기 대선주자 간 전략적 제휴설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대선판이 그려지기 마련”이라며 “이 경우 범 친문계도 이합집산을 위한 갈림길에 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지상 언론인